이런저런 이야기들/여행

가을 남도 여행... 회사정과 소쇄원

bluefox61 2011. 11. 1. 14:05

모처럼 주말 이틀동안 영산강변의 영암과 담양을 여행했습니다.

서울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다는데 남쪽은 여행하기 좋은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아직 깊은 가을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들더군요.
2011년 가을을 기억하고 싶어 , 사진첩을 만들어봅니다.
 
 
윗 사진 속 정자는 전남 영암의 월출산 자락에 있는 2200년 역사의 구림마을 안에 있는 구림대동계 집회정자인 '회사정'입니다.
사람들이 가을 햇살을 쬐고있네요 . 어사 박문수가 거지꼴을 하고 대동계 집회중인 이곳에 찾아와 걸터앉았다가 , 그를 몰라본 계원들이 내쫓는 소동을 벌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도포자락에서 어패가 떨어지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 대형정자는 여러차례 수리,복원됐고 6.25로 부서져 또 대대적인 수리가 됐다고 합니다.
구림마을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준 왕인박사와 신라 도선국사의 출생지라고 하는데, 직접적인 유물이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고
다만 2200년동안 마을이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같습니다.
조금 더 옛 정취가 잘 보존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큰 곳이기도 합니다.

영산강변에서는 황포돗배도 탔습니다.
돗배는 무늬일뿐이고 실제로는 모터로 갑니다. 일인당 5천원이랍니다.
얼마전 1박2일에도 등장했던 그 돗배랍니다.
 
담양의 소쇄원입니다. 단풍이 이제 막 시작되려합니다.
(찍은 사진을 잃어버려 자료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사진출처: 광주시 시청각자료실>)

제월당으로 건너가는 돌다리 옆의 담입니다. 계곡물이 흐를 수있도록 또다른 돌다리를 만들어서 그 위에 담을 쌓았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않으면서 공간 속으로 끌어들여오는 한국 전통정원의 정신을 잘보여주지요.
(자료사진 : 광주시 시청각자료실)

참으로 허술하게도 서너개의 돌로 괴어놓았는데, 16세기 중반에 세웠으니 무려 4백년넘게 저렇게 버티고 있었네요.

 

소쇄원 제월당의 현판입니다. 우암 송시열의 힘찬 기개가 글씨에서 느껴지시나요. 하서 김인후의 한시(漢詩) '소쇄원 사십팔영'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第二影)
枕溪文房    시냇가의 글방에서

 

窓明籤軸淨   창 밝으니 방안의 첨축들 한결 깨끗하고
水石暎圖書   맑은 수석엔 책들이 비춰 보이네
精思隨偃仰   정신들여 생각하고 마음대로 기거하니
竗契入鳶魚   오묘한 계합 천지조화의 작용이라네 

(第十八影)
遍石蒼蘚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石老雲煙濕   바윗돌 오랠수록 구름 안개에 젖어
蒼蒼蘚作花   푸르고 푸르러 이끼 꽃을 이루네
一般丘壑性   언덕과 골짜기를 즐기는 은자들의 본성은
絶義向繁華   변화함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는다네


 양산보가 이곳을 만들어 기거했을 당시 아름다움을 상상해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담양 명옥헌 원림이었습니다.
그동안 몇차례 담양에 갔지만 명옥헌 원림은 처음 가봤는데, 그 유명한 배롱나무꽃(백일홍)은 다 졌지만
너무나 아늑하고 아담하고 사랑스런 곳이었습니다.
마을어귀 주차장에서 내려 나즈막한 언덕 골목길을 올라가면, 여기에 무슨 유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때
갑자기 마을 꼭대기에 나타납니다. 17세기 중반 인조때 문신 오희도의 아들 이정 오명중이 이곳에 연못을 파고
정원을 꾸며 정자를 세운 곳입니다. 많이 없어졌다가 후손들이 재현해놓은 곳이지만, 한국식 정원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 정원 바로 옆에 가정집 한채가 있는데,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때 사시사철 이곳의 비밀스런 아름다움을 만끽하시겠지요.제가 찾았을 땐 , 한 할머니가 정원 바로 옆에 벼이삭을 깔아놓고 말리고 계셨습니다. 팔려고 내놓은 감을 좀 먹어보라며 막 깎아주시더라구요. 이럴땐 서울 토박이로서 정말 고민됩니다. 서울식으로 "안 살거니까 주지 마셔요"라고 해야되나요, 아님 그냥 "감사합니다" 해야하나요. 전자처럼 하면 너무 깍정이같다고 하지 않을까요.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장 아름답다는 8월 중순쯤 가면 이런 모습이라고 하네요. 자료사진입니다. 연못을 빙둘러서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고 소박한 산책길이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 도쿄의 메이지신사에서 자연의 소박하고 고졸한 맛을 너무 완벽하게 재연해낸 일본 사람들에게 진저리가 날만큼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 명옥헌 원림에 와보면 일본과 조선의 정원 철학이 얼마나 확연히 다른가를 단번에 알수있습니다.
 
정원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소박한 명옥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송강 정철의 아들 정홍명이 '명옥헌기'에서 "옥이 부서지는 물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더러움이 씻겨져나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수량이 적어서인지 물이 졸졸 흐를 정도입니다.
 
명옥헌 연못 물에 푸르디 푸른 10월 가을 하늘과 구름이 아롱거립니다.
명옥헌 옆에 버티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의 엄숙한 위용이 감탄스럽습니다.수령이 아무리 적어도 200년은 넘어보이지요?
이런 고목은 사람으로하여금 겸손하고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같습니다.

 

담양에서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죽림원도 찾았습니다.
새로 찍은 사진이 없어서, 작년 11월에 찍은 사진을 참조적으로..
(자료사진)
 
죽림원 입구 반대쪽에 조성해놓은 한옥들에서 가을 햇볕에 나른하게 졸고 있는 백구를 만났습니다.
어찌나 순한지 쓰다듬고 뽀뽀해도 나몰라라 하며 눈을 감더군요.
너무 순해서 흰색 래브라도인줄 알았는데 진도개 같아요.
한옥 정자에 자연염색 체험코너를 차려놓은 주인께서 아가들을 배고 있어서 힘이들어한다네요.
볼록한 배 부분에 아가들이 들어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