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인터뷰/배철수

bluefox61 2009. 5. 23. 14:50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1970년대말~80년대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라고 부르짖으며 ‘청년문화’의 코드가 됐던 한 남자가 있다. 마른 몸매는 20대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지 이미 오래다. 


50줄의 나이에 들어선 지도 벌써 6년째. 그런 시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청년정신’을 잃지 않은 채 음악과 함께, 마이크 앞에서, 20대 전후의 젊은 청취자들과 교감하며 19년의 세월을 보내왔다면 그는 진정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배철수(56). 이제는 록가수라기보다는 디스크자키, 방송인으로 더 익숙해진 이름이다. 그가 1990년 3월19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MBC 라디오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오후 6~8시)가 7000회를 맞았다. 

매일 2시간씩 7000회면 총 1만4000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에서도 20여년 동안 매일 일정시간에 어떤 장소에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일은 웬만한 성실함과 끈기, 엄격한 자기관리가 없다면 이뤄내기 힘든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M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앞두고 있는 배철수씨를 만났다. 지난 18일 7000회 특집방송을 마친 후 특별한 축하이벤트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느 날과 똑같이 방송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잤다”고 말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데, 지난 19년동안 저녁 약속을 잡은 적이 거의 없어요. 그 대신 점심은 반드시 밖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특히 젊은 친구들과 하지요. 그래야만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술은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식사때 와인 한두잔을 제외하고는.”


의도적인 ‘자기관리’냐고 물었더니 그는 “보기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어요. 군대 시절 이후엔 술에 취해본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이유는, 밤에 술 취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필름이 끊겼다’는 등의 말을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해두죠. 담배는 예전에 음악작업할 때는 진짜 많이 피웠는데, 2002년도에 목관리를 위해서 끊었고요. 방송 펑크를 낸다든가, 늦은 적도 전혀 없습니다. 7000회 동안 방송 중 잠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몇초 동안 음악을 틀지 못한 일이 있었던 적을 빼놓고는 특별히 생각 나는 방송사고도 없네요.”


알고 보니, 그는 자신에게 엄격한 ‘자유인’이었다. ‘예능 늦둥이’로 부쩍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부활’의 김태원씨가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음악계의 ‘욱사마’는 배철수다. 그에게 찍히는 후배는 끝”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정말 ‘욱’하는 성질로 후배들에게 호통 치는 선배인지 궁금해졌다.


“방송에서 재미 있으라고 한 이야기겠지요. 제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설마 대놓고 호통이야 치겠습니까.(웃음) 다만 음악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겉멋이나 들린 후배들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다 싶네요. 언젠가 포크그룹 ‘동물원’ 멤버들이 농 반으로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긴 합니다. “형님은 록음악 후배만 너무 챙기시는 것 같아요”라고. 아무리 방송이라도 전 실력 없는 가수들에게 칭찬은 절대 못합니다. 출연자가 방송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못부르면 “연습 안 하고 나온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창의력이 없는 데다가, 성실하게 준비조차 하지 않는 후배가수에겐 제가 곧바로 탐탁지 않아하는 표정을 짓는다고들 하더군요.” 



‘방송하는 음악인’인가, 아니면 ‘방송인’인가란 질문에 그는 바로 ‘후자쪽’이라고 답했다. 1990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인기 록그룹 ‘송골매’의 멤버로 분주하게 활동하던 중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그의 거친 보이스는 리드 보컬 구창모의 매끈한 음색과는 또다른 매력이었다. 

‘음악캠프’ 전에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고. 그 자신도 처음엔 이렇게 오랫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는 생각은, 아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음악캠프’는 ‘배철수’와 동의어가 됐다. 맨처음 함께 일했던 PD(박혜영씨)와는 결혼까지 했으니, ‘음악캠프’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인연인 셈이다. 


“사실 음악을 우연히 시작하게 됐고, 가요제를 통해서 뜻하지 않게 데뷔까지 했지요.‘음악캠프’를 처음 시작했을 땐 음악을 병행하고 있었던 만큼 ‘나는 음악인으로서 방송을 하는 것’이란 의식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나고 나서는 음악 대신 방송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업 제안을 받은 적도 여러번 있는데, 큰 욕심이 없어서인지 방송 한 우물만 파는 게 제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음악캠프’는 라디오 방송에서 가요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팝음악 전문으로서의 명맥과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흔치 않은 프로그램이다. 딥퍼플, 리키 마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등 수많은 전설적인 해외 아티스트들이 내한 때는 반드시 들러가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해외 팝음악을 국내 청취자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해외에는 한국의 팝문화 수준을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프로그램 성격상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어나 쓴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 그는 지난해 ‘언어상’을 두차례나 받기도 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또박또박 낭독을 잘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요. 서울 토박이로 표준어를 쓰기도 하지만, 방송에서 바른말을 사용하려고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지요. 프로그램을 통해 두세번 만난 외국 가수와는 서로 ‘친구’로 부르는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색소폰 연주자 케니지가 그런 경우죠. 인터뷰는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음악에 관한 한 충실한 인터뷰를 하는 게 제 자존심이기도 하죠. 가끔 TV에서 리포터라는 사람이 전설적인 아티스트에게 ‘사랑해요’란 한국말이나 시키는 것을 보면 못참겠어요. 그래도 제 프로그램을 찾는 해외 아티스트를 스튜디오 밖에 나가서 맞이한다거나 먼저 알은체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기싸움이죠. 상대의 기에 눌리면 제대로 된 인터뷰가 어렵거든요. 제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딥퍼플은 예외였습니다. 한국식으로 깍듯하게 고개와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드리니까 좋아하시데요.(웃음)”


그가 19년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비결로 꼽는 것은 바로 ‘청취자들과의 교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 못지않게 20, 30대 젊은 청취자들과 늘 새로운 감각으로 대화를 나눠왔다는 데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보였다. 


“방송은, 방송진행자는 청취자로부터 외면 받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물론 대중이 100% 옳은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청취자를 계몽하거나 가르치려하기보다는 서로 교감하고 공존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전 ‘음악캠프’의 주청취층인 20, 30대의 감각을 함께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10년쯤 진행했을 땐 솔직히 내가 잘나서 방송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봄―가을 편성에서 잘리지 않으면, 청취자들 덕분에 또 6개월간 재미나게 방송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죠.”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함께해온 라디오란 과연 그에게 무엇일까. 배철수씨는 한참 생각하더니 “직업이자 놀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잘 놀았던 만큼 언젠가 떠나는 뒷모습을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 요즘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추억을 파먹으며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는 말에서 방송인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10년전쯤 방송사의 한 간부가 제게 팝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중·장년층 프로그램을 해보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받아들이지 않길 잘 했던 것 같아요. 거창한 생각 같은 건 잘 안하는 편인데, 언젠가 마무리를 짓는다면 그 타이밍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중에게 좋은 방송진행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이죠.”


aeri@munhwa.com


배철수는…


▲1953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출생 

▲경희고, 한국항공대 졸업 

▲대학 재학 중인 1978년, 동양방송(TBC)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그룹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 수상. 같은 해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은상 수상 

▲1979년 ‘송골매’ 결성, 그 해 ‘송골매 1집’ 발표 

▲1982년 구창모 등 ‘블랙테트라’ 멤버들을 영입, ‘모두 다 사랑하리’ 등 빅히트곡들이 수록된 2집 앨범 출간

▲1990년 ‘모여라’가 수록된 ‘송골매 9집’ 발표. 이 앨범이 ‘송골매’의 마지막 앨범이 됨. 이듬해인 1991년 가수 활동 중단 

▲1990년 3월19일부터 현재까지 MBC 라디오 FM4U(91.9㎒)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 

▲수상 : 2004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최우수상, 2008년 KBS 연예대상 특별상, 2008년 한국여성민우회 ‘푸른미디어상 언어상’ 및 한글날 큰잔치 조직위원회 선정 ‘아름다운 방송언어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