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게리 올드먼

bluefox61 2008. 2. 18. 15:40
드디어 나왔습니다. 아니, 너무 늦게 나왔나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의 첫머리는 당연히 게리 올드먼이어야 했습니다.
너무 아끼는 나머지(솔직히 멋있게 써보리라는 욕심때문에),
이렇게 순서가 뒤로 쳐지고 말았네요.

게리 올드먼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는 이미 1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시드와 낸시]에서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 역으로 단박에 마음을 빼앗아갔던
그는, [JFK]의 저격범 오스월드를 거쳐 [드라큐라]의 영원히 잊지 못할
드라큐라로 다시 찾아왔지요. [로미오 이즈 블리딩]에서 레나 올린과 파괴적인
사랑을 나누던 그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사실 게리 올드먼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연기들은
거의 영화사에 기리 남을만한 강렬한 것들이라 할 수있지요.
[레옹]에서 레옹이 숨어있는 아파트를 습격하기 직전,
코카인에 취한 들뜬 눈으로 온몸을 떨던 모습( 위에서 아래쪽으로 잡은 그 부감샷!)
[드라큐라]에서 새하얀 분장을 하고서 새빨간 피를 햩아먹던 모습,
[한니발]에서 온 얼굴이 개에 물어뜯겨 형체조차 알아볼수없는 상태에서
사악한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던 눈동자 ,
[컨덴더]에서 여성 부통령 후보를 청문회 증언대에 앉혀놓고
가차없이 밀어부치던 이중인격자의 상원의원 등등.
여기서 게리 올드먼이 아닌 다른 배우의 연기를 상상할 수가 있을까요.

그가 했던 배역 중 기존의 이미지와 가장 먼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을 들 수있을 겁니다.
이 영화를 처음보았을땐 도대체 왜 그가 베토벤 역을 수락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죠.
그러나 베토벤 역시, 인생에서 광기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인물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들면서, 그제서야 올드먼의 출연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있었죠.
어쩌면, 올드먼을 너무나 사랑한 그의 영화 모두를 옹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올드먼은 한마디로 광기의 배우입니다. 흔히들 악역전문배우라고도 하죠.
그가 연기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사람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쓰레기같은 인간말종들입니다. 어둡고, 자기 파괴적이죠.
원래는 착한 인간인데 어찌하다보니 세상이 각박해 나쁜 놈이 되고 말았다는 식으로
동정심을 은근히 부추기는 듯한 , 그런 어정쩡한 캐릭터를 게리 올드먼의 인물 속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드라큐라는 예외)
뼛속까지 악으로 가득차있는 ,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악인들인거죠.

올드먼이 영화 속에서 악을 쓰면서 세상을 조롱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니네들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정의로우면 또 얼마나 정의롭냐″고
대놓고 비웃는 것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두눈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같은
공허감이 가득하지요. 사악한 미소와 어울리지않는 이런 깊고 깊은 절망감이
올드먼을 그저 단순한 악역배우가 아니라, 걸출한 명연기자가 되게 한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눈빛은 그 자신의 불행했던 성장과정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일찍 가족을 버렸던 알콜중독자 아버지에 대해 그는 평생 애증을 간직해 왔다지요.
97년 그가 연출한 [텅빈 입(Nil by Mouth)]는 알콜중독자를 가장으로 둔
빈민 가정의 이야기로, 바로 올드만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괴로웠고, 시사회 후에도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지요.
그런 고통이 한사람의 배우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런 그에게 무한한 애정과 환호를 보내고 있으니
세상사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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