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여행

통독 20년, 현장을 가다 (상)

bluefox61 2010. 9. 15. 20:58

 

10월3일 독일 통일 20주년을 앞두고 다시 찾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 지난 12일 베를린 국제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면서 받은 강렬한 첫 인상은 베를린이 통일 20년 만에 독일의 수도로 제 모습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통일 10주년이었던 지난 2000년, 베를린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옛 동베를린 지역은 역사적 건축물을 비롯해 낙후된 사무실, 주요 건물을 재건축하고 도로를 새로 포장하는 공사들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장벽으로 나뉜 동독과 서독 사이의 이른바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놓였던 포츠담광장 역시 최신식 소니센터 건물을 제외하곤, 이곳에 들어설 건물과 공공시설들을 위한 터닦기 공사로 온통 북새통이었다. 


동베를린 지역에도 현대식 건물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동쪽으로 곧게 뻗은 구 베를린지역의 중심가 운터 데 린덴가(街) 양쪽으로 옛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10년 전까지만해도 흉물에 가까웠던 공산체제하 시설물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베를린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을 끌어모으는 인기 관광도시가 됐다.


시 정부의 리하르트 멩 홍보국장은 “오는 2011년 최첨단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BBI)이 개항하면 국제 비즈니스 도시로서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베를린은 통일 20년의 성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인 셈이다.


분단의 현장들은 관광 명소로


14일 찾은 분단 독일의 옛 국경지역이었던 포츠담의 글리에니케 다리 역시 통일 독일의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자동차들만 한가롭게 지나가는 모습은 여느 소도시의 다리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20년 전만해도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분단의 장소였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국경선이 사실상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이 다리의 동쪽과 서쪽 끝에는 검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다리는 1962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과 옛 소련 간의 대규모 스파이교환이 이뤄졌던 곳이다. 글리에니케 다리에서 벌어졌던 스파이 교환은 숱한 스파이 영화에서 재연되기도 했다. 


분단과 비극의 현장이었던 이곳이 독일 통일 20주년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글리에니케 다리 옆에 위치한 아담한 옛 건물 ‘빌라 쇼닌겐’이 최근 냉전박물관으로 변모해 일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구 동독의 마지막 외교장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메켈은 “통일은 강한 어느 한쪽 정부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동독 국민들의 평화시위가 장벽붕괴로 이어졌다”면서 “베를린 장벽붕괴는 동독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2010년 10월3일 독일 통일 20주년을 앞두고 독일에서는 통일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동·서간 경제 격차 해소 등 ‘실질적 통합’을 위한 작업이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에서 본 독일 통일 20년의 성과는 상당했다. 공산체제하의 건물이나 낙후된 시설물 대신 현대적 건물들이 들어선 통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의 대표 도시로 활기차게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관공서나 거리에서 만난 독일인들에게서는 통일로 경제 부국에서 국제사회의 발언권이 강화된 외교적 강대국으로 거듭난 자신감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는 1세대 안에 통일이 완성될 것이라는 당초의 전망과 달리 앞으로 최소한 1 ~ 2세대가 더 필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독일이 동독지역에 최소 1조4000억 ~ 1조5000억 유로를 투입해 동독의 국내총생산(GDP)이 통일 이전 서독의 30% 수준에서 71%로, 생산성은 과거 20 ~ 25%에서 79%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격차가 존재하는 가운데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의 2배에 이른다. 또 서독인의 손실감과 동독인의 모멸감은 봉합되지 않은 상태이다. 


◆ 좁혀지지 않는 경제격차 = 동독 내에서도 지역마다 경제상황은 극심하게 갈리고 있다. 베를린을 비롯해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예나 등 일부 대도시 경제는 비교적 안정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외의 동독지역은 서독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실업률을 나타내고 있다. 


본에 위치한 노동연구소(IZA)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08년을 기준으로 서독지역의 실업률은 약 10%인 데 비해, 동독 지역은 20%를 기록했다. 이처럼 실업률이 높은 이유로는 젊은 취업연령층이 산업기반시설이 없는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연금생활자 등 비노동인구 비중이 크게 높아진 점을 꼽을 수 있다. 


권위있는 경제연구소인 독일경제연구소(DIW)의 칼 브렌케 박사는 “통일 후 동쪽에서 서쪽으로 노동인구의 대규모 이주가 구 동독의 경제기반에 심각한 위협이 됐다”고 지적했다. 


구 동독에 대기업을 유치해 경제활성화를 이룩하겠다는 연방정부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본사를 옮긴 대기업은 한 곳도 없다. 이처럼 당초 예상보다 부진한 경제통합으로 인해 구 동독주민 대부분이 ‘2등 국민’이란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 동독인 브란덴부르크주의 마티아스 플라체크 주지사는 최근 슈피겔지와 인터뷰에서 “통일이 위대한 성취인 것은 사실이지만 20년이 된 지금 현재 과연 축하할 만한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냉소적인 자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 멀리 보며 한 걸음씩 = 통일의 경제효과가 고조됐던 지난 10주년 때와 달리 20주년을 맞은 독일은 차분한 분위기이다. 거리에선 기념조형물이나 포스터 한 장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9월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 때 대중의 관심을 끄는 대형 축하행사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면, 공식통일 20주년은 정부 및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간의 성과를 차분하게 재평가해 보고 실책의 원인을 찾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내무부의 유럽·국제개발·신연방(구동독) 책임자인 슈테판 베멜만스 국장은 “동·서독 경제가 여전히 불평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이 곧 평등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구 서독 지역에도 가난한 곳과 부유한 곳이 공존하고 있다”는 말로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하면서, 진정한 독일 통합을 위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