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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120일', 사드의 전설적 육필원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bluefox61 2014. 4. 24. 11:30

서구 문학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꼽히는 사드 후작(본명 도나티앙 알퐁스 프랑수아· 1740년 6월 2일 ~ 1814년 12월 2일) 의 '소돔 120일' 육필원고가 오랜 방랑과 법적 다툼 끝에 결국 고국 프랑스로 돌아왔다.
 

뉴스채널 프랑스24은 사드 사망 200주년을 맞아 '소돔 120일' 육필원고가 오는 9월부터 파리에 있는 사립 '원고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고 최근 보도했다. 스위스에 있던 '소돔 120일' 원고를 700만 유로(약 100억 6000만원)에 사들여 프랑스로 가져온 제라르 레리티에르 원고박물관 관장은 인터뷰에서 " 언젠가 국립도서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디즘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사드 후작은 1785년  파리 바스티유 감옥 감방에서 37일만에 '소돔 120일'을 썼다. 루이 14세 치세 말엽을 배경으로 4명의 권력자가 46명의 미소년, 소녀들을 고성으로 납치해놓고 극단적인 성행위와 살인 등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사드는 감방 안에서 종이를 아끼기 위해 작은 종이들을 연결해가면서 깨알만한 작은 글씨로 앞뒤 면에 빽빽히 글을 써내려갔고, 그 결과 원고는 폭 11. 5cm , 길이 12m의 두루마리 형태가 됐다. 사드는 이 원고를 빼앗길까봐 돌돌 말아 감방 벽 돌 틈에 숨겼고,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 당했을 때 자신이 숨겨놓았던 원고를 누군가 가져간 것으로 믿었다. 1814년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 '소돔 120일'원고가 없어진 것을 생각만해도 피눈물이 난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소돔 120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4년이다. 이완 블로흐라는 독일 베를린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가지고있던 '소돔 120일' 원고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문제의 원고가 어떻게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격적인 소설 내용에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이후 원고는 1929년 샤를 드 노에이유 자작이 사들이면서 프랑스로 돌아왔다가 1982년 다시 깜쪽같이 사라졌고, 몇년 후  스위스의 수집가 제라르 노르트만의 손에  들어갔다. 드 노에이유 자작 후손들은 제라르 노르트만을 상대로 도난당한 '소돔 120일' 원고를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기나긴 소송전이 벌어지다가 최근 레리티에르가 정식으로 구매해 프랑스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소돔 120일'에 대한 평가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엇갈린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소설이라는 비난부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란 지적까지 극과 극이다. 프랑스 여성 소설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사드를 붙태워야 하나'란 에세이에서 '소돔 120일'을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데 중대한 기여를 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파올로 파졸리니는 1975년작 '살로 소돔 120일'에서 시대와 장소를 20세기 이탈리아 파시스트 괴뢰국가인 살로 공화국으로 바꿔 현대 사회의 권력과 개인의 관계, 욕망과 강박관념 등을 풍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브뤼노 라신 프랑스 국립도서관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소돔 120일' 육필원고를 '프랑스 국보'로 평가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데 대해 반가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