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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불치병이 아니다... 20년내 정복 가능해

bluefox61 2014. 6. 10. 15:17

 한국이 급속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치매 발병율이 급증하면서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와 관리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전남 장선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치매 노인에 의한 방화로 무려 21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통해 치매 환자를 위한 요양 시설의 열악한 실태가 여실히 드러나 충격을 줬다. 올해 초에는 한류 스타 아이돌 가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목졸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비율은 2008년 8.4%에서 2012년 9.1%로 해마다 치솟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치매 인구는 2030년 127만 명, 2050년에는 271만 명으로 20년마다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있다는 이야기이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치매 연구자 피터 세인트 조지 히슬롭(60) 영국 캠브리대 의대 신경과학과 교수와 케이 조(49·한국명 조광욱) 영국 브리스톨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를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치매의 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뇌단백질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학자이다. 특히 히슬롭 교수는 지난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한국·영국 알츠하이머 공동연구 콘소시엄의 대표를 맡아 양국 학계 간의 교류에도 헌신해오고 있다. '한·영 연구중심병원 서울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두 학자로부터 치매 연구 현황,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환자 관리와 연구 활성화를 위해 국가가 해야할 역할 등에 대해 들었다. 

 

 -한국에서는 최근 요양병원 화재사건으로 많은 노인 환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알고 있나.
 "(히슬롭·이하 히) 물론 알고 있다. 솔직히 놀라지는 않았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크고 작은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불을 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지를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인식했으면 좋겠다. 환자의 상태를 빨리 파악하고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치료하는 과정과, 치매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케이 조·이하 조) 우선, 많이 놀랐다.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도 했다. 한국의 요양시설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영국의 치매환자 요양시설의 실태는 어떤가.
 "(조) 영국과 한국을 나란히 비교하기는 사실 어렵다. 왜냐면 영국은 국가가 국민의 보건을 100% 책임지는 국가보건서비스(NHS)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장성 요양병원 경우처럼 1명의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히)영국에서도 국가요양시설이나 민간요양시설마다 시설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만큼, 정부차원에서 치매환자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영국은 국가차원에서 '치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이다. 지난 2012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치매 정복을 위한 연구와 환자 관리를 국가의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선포했고,이에 따라 NHS는 연간 230억 파운드(약 40조 원)를 치매 환자 치료 요양비로 사용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느 정도인가.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치매에 걸린 사실이 알려져 영국 내에서도 이 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히) 영국에서도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게 비교적 최근들어와서 이다. 불과 5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매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관심이 많아지고 있고,사회적으로도 이슈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치매와의 전쟁' 선언이 나왔다고 본다. "
 "(조)앞서 언급했듯이 영국은 NHS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치매 경우에도 환자 자신과 가족들의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환자 가족이 사실상 100%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가 아닌가. 그러니 사회적 심각성은 영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들어서는 한국 국민과 정부도 치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몇 해 전에 젊은 여성 치매환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송돼 화제가 됐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치매 환자가 급증할텐데, 환자 관리 시설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비용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을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치매 증세를 가지고도 가능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

 

●치매연구에 1150억원 쏟아붓는 영국 정부 

  영국 정부가 치매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치매 연구에 착수하기로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6월 19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치매회의(Global Dementia Legacy Event)에서 "진실은 이제 치매가 암과 함께 인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라는 것"이라며 이같은 계획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50세 이상 영국 국민 200만명 이상의 병력과 생활방식 정보를 수집한 뒤 인지연구, 뇌 영상법, 유전학 등을 통해 치매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가려내고치매 유발 원인 및 위험요소를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캐머런 총리는 전 세계적으로 치매 연구 비용이 암 연구 비용의 5분의 1 수준에불과하고 지난 15년간 시장에 나온 치매 치료제는 3종에 불과하다며 "시장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에는 몇 년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다른 질병이 (해결책 마련에) 진전을 이루는 것을 봐왔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각국 정부의 치매 연구 장려, 빠른신약 실험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치매 연구 예산을 2009년 2800만 파운드(약 490억원)에서 내년 6600만 파운드(1150억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와 관련,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소'(Alzheimer's Research UK)는 앞으로 5년간 줄기세포 연구소 개설, 치료제 개발을 위한 대학 간 네트워크 구축 등에 1억 파운드(173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영국의 치매 환자는 80만명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4천만명에 이른다.영국을 포함한 주요 8개국(G8)은 지난해 12월 런던에서 치매관련 회의를 열고 오는 2025년까지 치매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도록 협력키로 했다.


 히슬롭 교수와 조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알츠하이머는 기억력의 점진적인 퇴행을 초래하는 뇌 이상에서 오는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지적 기능의 상실을 가져오는 치매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6년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처음으로 이 질병을 학계에 보고했을 당시만 해도 극소수에 불과했던 환자는 현재 65세 이상의 약 10%, 85세 이상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노인에게 영향을 주는 치매증의 가장 일반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치매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나.
 "(히)1970년대에 병원에서 의사 초년생으로 일하던 당시 치매 환자를 처음으로 접했다.이상한 환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교수님께서 치매 환자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때부터 이 병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연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
 "(조) 내 경우에는, 원래 기억력의 생성 매커니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시작하려고 보니, 기억력 생성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반대로 기억력이 없어지는 원인 쪽으로 연구 방향을 틀게 됐다. 당시만해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초반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 상실을 연구했고, 계속하다보니 치매 연구까지 오게 됐다."
 -치매에 대한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와있나.
 "(히)사실 이제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연구자가 너무 적다. 암에 비하면 치매 분야 연구자는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3년전 한·영 알츠하이머 공동연구 콘소시엄를 만들어 연구자 간 교류를 시작한 것도 연구인력을 더 양성하기 위해서이다. 두 나라 학자들 간의 공동 연구 관심사를 정해서 인력을 양성하는게 콘소시엄의 목표이다. 현재 5명의 한국 연구자들이 캠브리지대와 브리스톨대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암 경우, 195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기초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환자 치료에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 시작단계에 있는 치매 분야 경우 투자가 부족하니까 연구자가 적고, 연구가 잘 안되니까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치매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무엇이라고 보나.
 "(히) 가장 큰 오해는 치매를 유전적인 질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가 치매환자였다는 이유로 본인이 치매에 걸릴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다. 유전보다는 뇌경색, 파킨슨 병 등 다른 원인들이 훨씬 많다. 두 번째 오해는 치매를 평생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으로 생각해 절망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많이 있다. 따라서 조기진단이 매우 중요하고, 절대 치료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가.
 "(조) 생활습관으로 치매 발병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높아지지 않도록 식생활과 체중을 잘 관리하고, 당뇨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동을 충분히 해서 대사작용을 활발하게 만들어 주면 치매 발병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치매 환자 관리 문제가 시한폭탄처럼 돼가고 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나.
 "(조)우선 정부차원에서 치매 환자 현황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연구 인력 양성을 위한 국가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히) 치매에 대한 연구, 환자 치료와 관리, 그리고 치료약 개발 이 세가지가 균형있게 발전해야 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약이 있어야 하는데, 치매 관련 신약 개발을 민간 제약회사에게만 맡겨두면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 치료, 신약 개발이 고르게 이뤄질 수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서 실행에 옮기는게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본다."
 -치매를 정복할 수 있는 질병으로 보는가.
 "(히) 물론이다. 치매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불치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암처럼 치매도 20년 내에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  

 

▶히슬롭, 케이조 교수는 누구.
 피터 세인트 조지 히슬롭(60) 영국 캠브리대 의대 신경과 교수는 분자유전학과 치매의 한 원인인 알츠하이머 연구 분야의 세계최고 권위자이다. 알츠하이머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1순위로 꼽히는 학자이다. 히슬롭 교수는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 펩티브(Abeta)를 억제하는 뇌단백질을 발견해냈고, 신경세포 퇴화를 일으키는 핵심 단백질을 규명해내는 등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알츠하이머 연구 분야에서 잇달아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 30여년동안 약 200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의 국제학술상,알로이스 알츠하이머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1953년 영국에서 태어난 히슬롭 교수는 캐나다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토론토대,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지난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캠브리지대 의대에 몸담고 있다.영국 왕립학회 회원이며 미국 과학한림원 의학분야의 외국인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011년부터는 한국-영국 알츠하이머 공동연구 콘소시엄의 대표를 맡아, 양국 간의 학술교류에도 헌신해오고 있다.
 케이 조(49·한국명 조광욱) 교수 역시 알츠하이머 연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한 세계적인 학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독일 등에서 연구활동을 거쳐 브리스톨대 의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적은 영국. 지난 2001년 장거리 비행과 뇌크기 감소의 연관성을 규명한 연구로 주목을 받은 조 교수는 뇌 세포의 괴사를 일으키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규명해냄으로써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논문을 2010년 셀(Cell)지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2011년에는 영국 왕립학회가 신경과학분야 최우수 연구자에게 주는 울프슨연구업적 상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한국-영국 알츠하이머 공동연구 콘소시엄이 발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설립한 '런던헬스포럼(LHF·회장 존 우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과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자들 간의 교류와 한국의 연구중심병원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