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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기독교 신자 김구는 하나님 뜻을 어겼나

bluefox61 2014. 6. 16. 05:10

우리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의 현장을 떠난 지 10년이 훨씬 넘어서 이젠 현실 문제에 대한 의견 개진은 될 수 있으면 삼가리라 마음먹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다음의 국정자리에 오를 예정이라는 사람이 지난날의 일제강점도 민족분단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요란하다. 그 발언의 진부를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생각과 발언이 뉴스들이 떠드는 것같이 사실이라면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산 사람으로서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학 전공자의 처지로서 가능한 한 구체적 사실들을 들어 말해 보려 한다. 먼저 일제강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강제로 해산한 대한제국의 군인이 8천여명이었는데, 같은 때 일본의 우리 땅 강점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의병 전사들이 일본군 쪽의 통계만으로도 14만여명이었고 그중 전사자가 2만명 내지 3만명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우리 땅 지배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한일합방조약 체결 결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의병전쟁 실패의 결과로 볼 것인가 하는 역사인식상의 문제가 중요하다.

근 반세기에 걸친 일본제국주의의 우리 땅 지배가 의병전쟁 실패 결과가 아니고 한일합방조약 체결 결과라 하면 그것은 침략이나 강점이 아닌 합법적 지배가 되고, 따라서 그 지배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독립투쟁은 가당찮게도 합법적 지배에 저항한 ‘불법적 행위’가 되고 만다. 일본제국주의의 괴뢰만주국 장교 출신으로서 쿠데타로 민주정권을 뒤엎고 집권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1965년에 한일협정을 강행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반세기에 걸친 우리 땅 강제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한일‘합방’ 100주년인 2010년에 한·일 두 나라의 일부 양심세력들이 한일합방조약 무효를 선언했으나 한·일 두 나라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실질적 효과가 있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찮은 인간들의 무효선언이 실제적 효력을 발휘할 리 없으며, 설령 한·일 두 정부가 무효 선언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어기는 일이 되지 않는가 생각되기도 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한일협정을 강행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우리 땅 강제지배를 몇 억달러인가의 ‘청구권’과 바꾸었을지언정 그 강제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궤변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나고 세기가 바뀐 현시점에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대통령 다음의 국정자리에 오를 예정인 사람이 일본제국주의의 우리 땅 강점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생각으로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역사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일제강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면 해방 후의 민족분단과 6·25 동족상잔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 할 만하고, 해방 후 분단되지 않고 통일국가가 성립되었으면 공산주의국가로 되었겠는데 ‘다행히’ 분단되어 한쪽만이라도 공산주의국가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만도 할 것 같다. 해방 공간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배반하고 심하게 친일행위를 했던 사람들 중에는 통일국가가 되면 좌익세상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응징받으리라 겁낸 사람들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을 위해서는 천만다행히도 반쪽이나마 이승만 정부가 성립됨으로서 그 친일반민족 죄상이 면제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공간의 통일국가 건설 방향이 좌익국가냐 우익국가냐만이 아니고 좌우합작국가를 건설하려는 세력도 결코 적지 않았음을 역사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 백범 김구 하면 누가 뭐래도 우익 중의 우익 지도자였다. 그런 그도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함으로서 해방이 가깝게 전망되자 자신이 주도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좌우합작정부로 만들어 해방에 대비했다. 독립운동 전선에는 좌익전선도 있고 우익전선도 있었지만 해방 후에는 당연히 하나의 민족국가를 건설할 것이었으니까.

해방된 조국이 분단 위험에 빠지게 되자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걸출한 독립운동가였던 김구와 기독교 장로였으면서 역시 걸출한 독립운동가였던 김규식은 만난을 무릅쓰고 38경계선을 넘어 북녘 땅으로 가서, 지금의 어느 후배 기독교인이 말했다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남북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결국 두개의 분단국가가 성립되자 김구는 유엔이 하나의 국가를 만들기로 해놓고 두개의 국가가 되게 한 데 대해 계속 항의하다가 결국 마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민비를 죽인 혐의의 일본 군인을 죽일 만큼 왕당파였다가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공화주의자가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낸 김구와, 기독교 장로요 미국 대학 졸업생이면서도 누구처럼 멀고도 안전한 미국 땅에서 독립운동하지 않고 일본군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끝까지 중국 현장에서 독립운동에 몸 바친 김규식 등이, 목숨을 바쳐 광복하려 했던 조국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본제국주의의 강제지배를 받았고, 또 해방 후에는 만난을 무릅쓰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 노력한 그 조국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두 동강이가 나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후배 기독교인이 있고, 그가 국정책임의 제2인자가 되려는 상황임을 알게 되면 무어라 할까, 대단히 민망스럽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은 하나님의 그 거룩한 뜻에 거역한 사람들이 되며, 민족분단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이 풀릴 때까지 우리 민족 사회는 계속 두 동강이가 된 채 ‘극동의 화약고’요 ‘세계에서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의 하나’로 남아 있어야 하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실패한 역사도 성공한 역사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이 이 어려운 시기에 국정의 요직에 기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은 너무도 분명하다 할 것이다. 막말 같지만, 제 능력에 의해 국정을 책임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돌려버리면 될 것이니까. (강만길/한겨레 2014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