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 110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1. 고흐&국립박물관&마우리츠하위스...

2023년 초봄, 오랫동안 계획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름동안 두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고색창연한 문화유적들은 물론이고 교과서와 화집에서만 보던 수많은 거장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있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 루벤스와 안토니 반다이크, 얀 판 에이크, 브뤼헐 부자,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등.... 제가 격하게 사랑하는 페르메이르 작품들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특별전 티겟이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고, 르네 마그리트 작품들은 브뤼셀 국립미술관의 해당 전시관이 업그레이드를 위해 폐쇄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아쉽기 짝이 없었지요. 하지만, 두 화가 말고도 만나야 할 화가들은 너무너무 많아서 발길이 바빴네요. 암스테르담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 대부분이 첫 일..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윤선도의 보길도

보길도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멀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화순-구례-고흥-벌교-보성-완도를 거쳐 마지막이 보길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길도는 심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작은 섬의 느낌이 더 강했던 듯합니다. 그 곳에 가면 아름다운 해변과 윤선도의 원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갈 수는 없는 곳,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곳으로 상상하게 되는 섬이 바로 보길도인 듯합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들었지만 보길도를 이제사 찾은 이유입니다. 보길도는 누가 뭐라해도 '윤선도의 섬'이지요. 학교에서 윤선도를 어떻게 배웠던가...떠올려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국어시간에 배운 '어부사시사'이지요. 요즘도 학교에서 '어부사시사'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비들이 한자로 시조를 지을 때, 이 분은 보통사람..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벌교 보성 고흥

오래 전부터 벌교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꼬막 때문은 아니고, 벌교를 찾는 타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소설 때문이었지요(오래전 완독을 하지 못하고 숙제처럼 미뤄뒀던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워낙 늦되는 사람이어서인지, 핑계거리를 찾고 싶은 건지, 이제야 이 소설을 읽기에 적당한 나이가 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제게 벌교는 매우 낯선 이름이었는데, 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벌교는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 이었습니다. 벌교 출신의 천연염색가 한광석 씨가 서울에서 염색전시회를 열었을 때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만들어낸 쪽빛과 함께 사투리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출판과 언론, 그리고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뿌리깊은 나무'를 펴낸 한창기 발행인의 조카인 ..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화엄사 운주사 화순

구례 화엄사와 화순 운주사를 다시 찾아가고픈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만 있다가, 2022년 4월 봄날에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이 두 곳은 제 기억 속에서 유난히 감동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 이 곳을 찾았었는지 정확한 연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엄사 각황전의 그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아름다움과 운주사의 말로는 표현할 수없는 특별한 기운을 느꼈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서 위를 올려다 봤을 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각황전의 자태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운주사 대웅전 뒤편의 산길을 올라다가 문득 뒤돌아 보니, 마치 비를 피하려는 듯 커다란 바위 밑에 오종종 서있던 석불들의 모습! 이 두 장면은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제 머리 속에 사진처..

영국 할레오케스트라의 유쾌한 실험

"일단 음악회에 와서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세요. 입장료는 공연이 끝난 후 내고 싶은 만큼 내세요." 15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할레 오케스트라가 오는 9월 6일 공연에 ‘입장료 후불제’란 파격적인 방식을 시도할 예정이어서 문화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공연의 주제자체도 ‘돈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없는(Priceless) 클래식’이다. 1858년 창단한 할레 오케스트라는 존 바비롤리 등 걸출한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관현악단이다. 존 서머스 단장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클래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북돋우기 위해"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원하는 만큼 입장료를 지불하는 이벤트를 시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클래식 음악이라면 무조건 지루해하는 사람, 클래식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혼돈의 그리스를 가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굽듯이 , 느닷없이 4박 5일 그리스를 다녀왔습니다. 첫 인상은? 물론 국민투표를 앞두고 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래도 평온해 보였습니다.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온갖 물건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떨이판매하던, 우리의 IMF 체제 때와는 분명히 다르더군요. 그게 그리스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GREEK LIFE'는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아테네에 왔으니 문화재 구경은 좀 하고 가야지요. 할 수밖에 없는게, 눈돌리면 사방이 고대 그리스 문화재더군요. 호텔에서 슬렁슬렁 걸어가면 파르테논 신전, 시장 거리 걷다 보면 나오는게 아고라, 택시타고 지나가다 보면 제우스 신전 ...뭐, 이러니까요. 참, 지나가다 뜩 나오는..

'100년의 기록' -중동사가 버나드 루이스 자서전

중동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결코 피해갈 수없는 이름이 바로 버나드 루이스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역사가이자 저술가이며,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 유명한 ‘오리엔탈리즘’논쟁을 벌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이미 국내에도 여러권 번역 출간돼있다. 오래전 출간돼 지금은 절판된 ‘이슬람 문명사’와‘중동의 역사’, 9·11테러 이후 출간돼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비롯해, 비교적 최근에 나온 ‘암살단’ ‘이슬람 1400년’ 등이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이다. 이슬람에서의 암살 전통이란 주제 하나만을 깊이있게 파고든 ‘암살단’은 11세기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의 폭력투쟁 조직인 ‘아사신(assassin)’과 21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폭탄 테러가 겹쳐지면서 마치 소설처럼 ..

'알제의 여인들'을 통해 본 미술품 경매의 이모저모

지난 5월 11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대 미술품 경매의 새로운 역사가 작성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 1954~55년작)’이 1억7936만5000달러(약 2010억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날 경매에서는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상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1947년작)’도 1억4128만5000달러에 낙찰돼 조각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역대 최고가 경매 미술품은 ‘알제의 여인들’이 아니라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1892년작)’이다. 지난 2월 뉴욕타임스(NYT)등 외신들은 스위스 바젤에서 진행됐던 비공개 경매에서 이 작품이 무려 3억달러(약 3361억원)에 팔렸다고 보도했다.시장에서는 경매가가 3억 달러를 넘는다는..

서울 촌것, 제주 올레를 가다(10)- 올레 5코스

유명한 제주의 해안 명소인 남원큰엉과 쇠소깍을 품고 있는 올레 5코스는 대중적인 인기가 참 많은 곳이지요. 위미의 그 유명한 '건축학개론 -서연의 집' 카페가 있는 곳도 이곳이고, 쇠소깍이 있는 곳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위미 주변의 풍경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에 묵은 게스트하우스 '소이연가'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더 특별한 코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원포구는 4코스의 종착점이자 5코스의 출발점이죠.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멋진 바다 산책로인 남원큰엉 길이 나옵니다. 남원큰엉 산책로는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바다 산책로로, 바닷가에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현무암 바위가 멋진 절경을 이룹니다. 산책로 주변은 숲이 우거져 있는데 군데군데 숲이 열린 곳으로 나가 큰엉의 해변 경관을 볼 수 있죠. ‘엉’이란 말은 ‘..

서울 촌것, 제주 올레를 가다(9)- 4.3의 비극을 간직한 18코스

올레 18코스, 산지천-조천’ 구간을 걸었습니다. 원래는 산지천부터 걸어야하지만 시간관계상 제주시내에 있는 사라봉부터 걸었습니다. 사라봉은 오르기 어렵지 않은 높이의 오름이지만 제주 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사라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오름의 옆 모습, 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냅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사라봉 산책길 걷다가 만난 너무 예쁜 아기들... 나도 한 입만 줄래? 그 절경을 따라 가노라면 돌담들만 남아 있는 텅 빈 땅이 나타납니다. 4.3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곤을동 마을 터이죠 . 흔적만 남은 집터들을 보며,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 하루 아침에 가족과 이웃 대부분이 죽고 집마저 불타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 제주의 아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