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지하디즘과 민주주의의 위기

김모 군이 실종된 터키 킬리스는 시리아와의 국경으로부터 불과 4~5km 떨어진 인구 약 9만 명의 소도시이다.이슬람국가(IS)에 들어가려는 터키와 유럽 젊은이들이 최근 국경 넘어 시리아 쪽으로 넘어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끌어온 곳이다. 지난해 14세 터키 소년이 킬리스를 거쳐 시리아로 넘어가 IS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킬리스 주와 맞닿은 시리아 북부 지역은 IS와 알카에다 연계 반군인 알누스라전선, 이슬람주의 반군인 이슬람전선 등 반군들이 점령하고 있다. 킬리스 주의 주도이지만 대중적인 관광지가 아닌 만큼, 김모 군이 킬리스를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약 900km에 걸쳐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 남부..

교황에게 배우는 '정치의 기술'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수도인 바티칸에서 오늘(8일) 듣도보도 못했던 이색 행사가 열린다. 바로 복권 추첨이다.복권 가격은 10유로(1만3000원). 일반 복권과 바티칸 복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당첨자가 거액의 복권 배당금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품으로 내놓은 물건을 받는다는 점이다. 복권 판매금은 전액 교황이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1등 경품은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소형차 ‘판다’다. 교황이 선물로 받은 자전거,카메라, 에스프레소 머신, 가죽가방,시계,중절모도 경품으로 나와있다. 교황 입장에서는 복권행사를 통해 ‘나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자선단체를 도울 수있으니 일거 양득인 셈이다. 참가자 입장에서도 교황의 자선활동에 동참하고, 운이 좋다면 그의 손길을 거쳤던 물품..

CIA 고문보고서가 부러운 이유

캐슬린 비글로 감독의 2013년작 ‘제로다크서티’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요원들이 해외 모처에 마련된 비밀감옥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쇠사슬에 묶어 고문하는 장면이 꽤 길게 등장한다.발가벗긴채 매달려있는 남성 테러용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서 일부러 여성 요원을 배석시키는 정신적 고문도 가해진다. 영화가 고문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을 때 비글로 감독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로다크서티’가 힘의 사용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 매우 도덕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상원보고서가 공개되면 보다 명확한 사실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문제의 보고서, 즉 상원의 CIA 고문보고서가 지난 10일 공개된 이후 미국 사회와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CIA의 격렬한 반박은 이미..

스푸트니크.. 라는 이름의 국영언론

러시아가 스푸트니크를 또 쏘아 올렸다. 인공위성이 아니라 ,이번에는 국영 뉴스 매체다. 스푸트니크는 지난 10일부터 웹사이트(http://sputniknews.com)를 통해 영문 텍스트 기사와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본사 격인 로시야 세고드냐의 드미트리 키셀료프 대표에 따르면, 스푸트니크는 "전 세계가 요구하고 있는 대안의 시각과 해석을 제공"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만든 언론이다. 그는 " 세계가 단극(uni-polar)의 관점에 피곤해하고 있다"면서 다채롭고 다양한 관점의 뉴스를 글로벌 독자와 청취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단극의 관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온 세상이 다 안다. 러시아 정부가 새 매체의 이름을 굳이 스푸트니크로 택한 데에는, 57년전..

의료진 파견만 하면 다인가...한국의 '에볼라 3無'

최근 미국 언론들이 동태를 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메인주에 사는 30대 간호사 케이시 히콕스이다. 국제의료봉사단체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들을 치료하다 귀국한 그는 음성반응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강제로 격리됐다가 퇴원한 후, 주 정부의 21일간(잠복기) 격리명령에 강하게 저항해 주법원으로부터 ‘의무격리’불허 명령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히콕스의 행동은 언뜻 매우 이기적으로 보이지만,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체액접촉으로만 감염되는 에볼라의 특성을 무시하고 음성판정을 받은 사람까지 강제적으로 격리할 경우 ‘피어볼라( 공포란 의미의 ’피어(fear)‘와 에볼라의 합성어)’만 부추기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의사기를 꺽을 뿐이란 것이 히콕스 뿐만 아..

말랄라,마이,실종소녀들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수프자이가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발표를 지켜보면서, 또 한 명의 파키스탄 여성 이름을 떠올렸다. 무크타르 마이. 지난 2002년 6월,그 날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해도 마이는 파키스탄 시골마을에서 사는 평범한 여성이었다.문제는 남동생이 한 마을의 다른 부족 소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생겼다.소녀가 속한 부족회의는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라며 마이에게 집단 성폭행 형을 선고했고,마이는 동네사람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소녀의 오빠 등 14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파키스탄에서 성폭행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마이는 달랐다.14명을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고발, 2011년까지 무려 9년동안 법정투쟁을 벌인 것.대법원이 피고 1명에게만 종신형을 ..

스코틀랜드, 그 후 ...

오래 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놀랬던 것은 스코틀랜드만의 화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1999년 영국이 스코틀랜드에 자치의회와 자치정부를 허용하기도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물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를 넘나들 때 환전할 필요는 없다. 단 잉글랜드 파운드는 스코틀랜드에서도 통용되지만 스코틀랜드 파운드화는 잉글랜드 지역에서 쓸 수 없다. 에든버러의 상점에서 잉글랜드 파운드를 내고 거슬러 받은 스코틀랜드 지폐를 들여다보면서, " 영국 돈을 그냥 쓰지 번거롭게 왜 따로 화폐를 찍어낼까" 하고 궁금해했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늬만 자치권'을 인정받아온 스코틀랜드인의 오랜 불만과 자존심이 이번 분리독립 주민투표로 이어진게 아닌가 싶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에볼라와 윤리적 딜레마

할리우드 영화 '딥임팩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른바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대상자를 선별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가 내놓은 기준은 이렇다. 우선 전국민 중 80만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단, 50세 이상은 아예 추첨대상에서 제외된다. 20만명은 인류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학자, 군인, 행정가 중에서 뽑는다. 이 두 가지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생명은 평등하다는 진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선 힘이 없다. 서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에볼라 확산사태는 역대 최대 사망자 규모로 뿐만 아니라, 전례없이 난해한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는 ..

가자의 비극

이스라엘 군이 16일째 맹공을 퍼붓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지붕없는 감옥'으로 불린다. 지난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 표현을 입에 올렸다가 이스라엘로부터 맹공격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가자 지구는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덫'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폭탄과 총알이 쏟아져도 몸을 숨길 곳이 없다는 점에서 가자 주민들은 덫에 걸린 짐승의 신세와 다를 것이 없다. 국경넘어 피난이라도 갈 수있는 이라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난민들은 가자 주민들에 비하면 그나마도 나은 편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동쪽의 '서안 지구'와 서남쪽 귀퉁이의 '가자 지구'로 나뉘어 있다. 가자는 '지구(strip)'란 영어 단어에서 보듯, 좁고 긴 사각형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세로 길이는 약 4..

1894년과 2014년

1894년 7월 25일, 아산만 풍도 앞바다가 대포소리로 요동쳤다. 일본 순양함 부대가 청(淸)의 군함을 향해 대포를 쏜 것이었다. 일명 '풍도해전'에서 일방적으로 청을 제패한 일본은 8월 1일 청을 상대로 정식의 선전포고를 한 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9월 15일 평양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하루 뒤 청군은 결국 평양을 포기하고 압록강 건너 후퇴했다. 한 해 전 갑오농민전쟁이 발생하자 당황한 조선의 요청을 받고 한반도에 들어온 청군이 일본군에 쫓겨나가는 순간이었다. 9월 17일 일본군은 압록강 하구에서 청의 북양함대를 격파한 기세를 몰아 중국 본토로 진격한지 약 두 달만인 11월 2일 뤼순(旅順)을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