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영화 속 대처, 대처리즘, 대처시대

bluefox61 2013. 4. 11. 11:09

영국 영화 속에서 대처와 대처시대에 대한 묘사는 대체적으로 비판적입니다.

문화계 종사자들의 성향이 일반적으로 진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국 사회에 대처시대가 남긴 상처가 워낙 깊고 크기 때문이기도 한 듯합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시선을 보내는 영화치고 대처시대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개봉된 메릴 스트립 주연의 '철의 여인'이 현대사의 거인 대처를 치매노인으로 그렸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대처와 대처시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에 비한다면 인간적이라고 할 수있을 정도입니다.

대처의 죽음을 계기로 , 대처 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최근작인 '철의 여인(Iron Lady)'입니다.

 

 

 

영국 여성감독 필리다 로이드의 2011년도 작품입니다. 뮤지컬,연극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연출했던 로이드는 영화 '맘마미아'의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있지요.

사실, '철의 여인'이 제작됐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때는 , 과연 이게 영화적 소재가 될까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대처가 정치적으로는 분명 중요한 인물이긴하지만 영화의 소재로 적절한지는 좀 의문이었거든요. 메릴 스트립의 연기야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요.

영화는 치매로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는 노년의 대처가 남편 데니스의 환상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편년체로 대처 일생을 정리하기보다는,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나 이제는 죽음을 앞둔 노인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는 서술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대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두번째는, 대처시대 영화를 말할때 1순위로 꼽히곤 하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입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2000년도 작품입니다. 작은 탄광촌에서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황당무게'한 꿈을 꾸는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발레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소년의 뒷 배경으로 1980년대 대처의 혹독한 경제정책으로 위기에 빠진 탄광마을과 가난한 탄광노조원들의 고단한 삶을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빌리가 무용교습소를 기웃거리는 동안 아버지와 형은 탄광조업거부 파업을 벌이고 있지요.

강경노조원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을 런던에 있는 왕립무용학교에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눈물을 머금고 동료들을 배신해 조업에 참여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입니다.

 

세번째는 '브래스드 오프(Brassed Off)'입니다.

 

이완 맥그리거의 풋풋했던 모습과 피터 포스틀스웨이트의 선굵은 연기가 돋보이는 마크 허먼감독의 1996년작입니다.

'브래스트 오프'란 영국 속어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란 뜻인데, 영화 속에서 아마추어 브래스밴드가 등장하는 것과 잘 어울어진 제목이라고 하겠습니다.

1996년에 제작,개봉됐던 만큼 대처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는 아닌데다가, 영화 속 시대배경도 1992년인만큼 대처의 총리 재직 시기는 아닙니다. 가상의 북부 탄광촌에서 일자리를 잃게된 광부들이 밴드를 통해 공동체의식과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요. 이를 통해 대처리즘이 대처 퇴임 이후에도 얼마나 강력하게 보통영국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있게 하는 작품입니다.

 

네번째는 웃다가 눈물이 나는 코미디 '풀 몬티(Full Monty)'입니다.

 

 

피터 카타네오 감독의 1997년작입니다. 카타네오 감독은 이 작품 이후 '오펄 드림' 등 몇편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풀몬티'는 영국 속어로 '홀딱 벗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영국 남부 요크셔주의 한 제철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실직자 신세가 된 아저씨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스트립쇼 무대에 서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린 작품이죠. 배불뚝이, 말라깽이 아저씨들이 스트립쇼를 준비하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눈물납니다.  '브래스드오프'와 마찬가지로 대처 재임기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처리즘에 희생된 서민들의 아픔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대처리즘의 폭압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우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 His Wife and Her Lover)'입니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전설적인 1989년도 작품이죠. 화려한 비주얼과 도발적인 표현, 특이한 구성방식으로도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바로크풍 호화 레스토랑 '르 올랑데'를 배경으로 목요일부터 다음주 금요일까지 벌어지는 기괴한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지요. 제목 그대로 요리사 리처드, 식당 주인이자 도둑 알버트, 그의 아내 조지나, 그리고 그녀의 정부인 고서점주인 마이클과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대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팀 로스는 알버트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출연하며 , 헬렌 미렌이 도둑의 정부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요. 특히 헬렌 미렌이 정부 마이클을 살해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식당주인에게 부탁해 마이클의 시신으로 화려한 바베큐 요리를 만들어내는 장면!!!!!  이 요리가 왜 도둑에게 가해지는 고문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지않고는 설명하기 어렵지요 ^^

영화는 표면적으론 식욕과 성욕의 억압과 해방을 그리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대처시대에 영국사회를 질식시킬 정도로 극성이었던 자본주의의 탐욕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음은 '브 포 벤데타(V for Vendetta)'입니다.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이 연출하고 와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2005년작품입니다. 디스토피아 사회가 된 근미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브이(v)란 혁명가를 중심으로 한 체제전복 움직임을 그린 SF 영화이지요.

이 영화가 대처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원작이 1982년부터 80년대말까지 순차적으로 발표된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의 동명 그래픽 노블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작품에서 대처시대의 숨막히는 분위기와 폭압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해킹그룹 어나니머스가 내세우고 있는 가이포크스 가면이 등장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