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와 사이언톨로지
'젊은 거장(43)'이라 불려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는 폴 토머스 앤더슨이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 5년만에 내놓은 '마스터'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는 2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미국을 배경으로, 알콜중독자이자 성에 퇴행적으로 집착하는 남자 프레디 퀠(호아킨 피닉스)이란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사회부적응자인 퀠이 우연히 찾아들어간 요트에서 랭카스터란 미스터리한 '마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를 만나게 되고, 랭카스터는 곧 퀠의 마스터가 된다. 둘은 '유사 부자관계'이다. 하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끝나게 되는데, 이후 퀠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않은채 엔딩타이틀이 올라가면, 관객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퀠은 이제 '마스터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피닉스와 호프먼, 여기에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 앙상블은 진정 명불허전이다.
<영화 '마스터'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듯 등장하는 엘리베이터장면. 중앙에 서있는 랭카스터부터 오른쪽 끝의 퀠 ,
앞줄 왼쪽의 랭카스터 부인, 그리고 그 옆 랭카스터의 딸까지 하나같이 불안에 사로잡힌 표정들이다.
이 짧은 순간에 캐릭터의 내면을 신랄하게 드러내는 것은 , 진정 탁월한 감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연출 솜씨이다.>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주인공은 퀠인가 랭카스터인가, 랭카스터는 사기꾼인가 아니면 인간이란 존재의 비밀을 풀어낸 위대한 학자인가, 랭카스터와 보낸 한 시절로 퀠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이 모든 것에 대해 영화는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란 모두가 결핍된 존재이며, 자신을 인도하고 채워줄 마스터를 처절하게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 속에서 2차세계대전 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왠지 모든 것이 불안하고 혼란스런 미국사회 속에서 저마다 부유하는 인간군도를 펼쳐보이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하는 '마스터' 랭카스터이다.
영화 속 랭카스터는 매력적인 화술과 매너를 가진 인물이다. 최면요법과 비슷한 상담과정(영화에서는 프로세싱이라고 표현된다)을 통해 인간의 전생을 들여다보고 윤회를 파악함으로써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있다고 설파한다. 이미 한권의 책을 펴내 상당한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고, 게중에는 뉴욕의 부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를 사이비 교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 속 랭카스터와 사이언톨로지교 창설자 론 허버드>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는 L. 론 허버드가 1954년에 창시한 신흥 종교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라고 믿으며, 과학기술을 통한 정신치료와 윤회도 믿고 있는 종교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사이언톨로지’의 뜻은 ‘진리탐구’이다. ‘라틴어: scio 스키오(깨달음)’과 ‘그리스어: λόγος logos(로고스)[*]’ (신의 계시 혹은 ‘이성’)를 모티브로 한 종교라고 서술돼 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적이고 심령학적인 8단계 과정을 거치면 우주 속 '그리스어: Thetan 테탄[*]'(영혼, 상징으로 표현하면 ‘∞’)에 이르며 죽음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한다. 현존하는 우주는 메스트(Mest)로부터 왔으며, 그것은 물질, 에너지, 공간 그리고 시간으로 구성돼 있어 테탄(Thetan)의 도움을 얻어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테탄은 사람에 붙어 살며, 죽지 않는 존재이고 온갖 악으로부터 육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이렇듯 ‘사이언톨로지’ 이론에 따르면, 세 가지 객체가 사람 속에 존재하는데 하나는 테탄(불멸의 영혼), 또 하나는 마인드(Mind, 사고력),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육신(죽음을 앞둔 유한적인 몸체)이다.
론 허버드는 "육신이 죽음을 피하려면 그가 개발한 E-머신을 활용해 정신분석을 하고 이를 통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언톨로지의 목표는 사람들을 청명한 상태로 만들어 전쟁, 범죄, 마약 등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교리는 영화 속에서 랭카스터가 주장하는 '코즈(Cause)'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에이미 애덤스가 연기하는 랭카스터의 세번째 부인 페기 캐릭터 역시 실제 허바드의 세번째 부인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후반부에서 퀠이 랭카스터의 영국 저택으로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허바드가 사이언톨로지의 국제본부를 영국에 뒀던 것과 공통된다.
허버드가 해군이 아버지를 따라 괌 등 남태평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2차세계대전때는 해군으로 참전했다가 '통제불능'병사로 찍혀 부대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냈던 에피소드는 영화 속 퀠의 캐릭터에 투영돼있다 .실제로 허버드는 퀠처럼 젊은시절 심각한 알콜중독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스터'는 제작되기 전부터, 사이언톨로지의 창설자이자 교주인 L. 론 허바드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작품이다. 영화는 예상과 달리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이언톨로지가 1950년대 미국인들을 어떻게 매료시켰는가를 이해하는데는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앤더슨은 '마스터'가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전후 한시대를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라고 강조한바있다. 하지만 허바드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고 흥미로워서 언젠가는 꼭 영화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밝힌바있다.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전 대표적인 사이언톨로지 신자이자 자신의 작 '마그놀리아'의 주인공이었던 톰 크루즈에게 보여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