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혼자만의 싸움? ... 나홀로 싸우는 영화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보면서 '라이프 오브 파이'와 '그래비티'를 생각했습니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혼자만의 싸움을 벌인다는 점이지요.
"올 이즈 로스트'에서 레드포드가 연기하는 남자주인공은 아예 이름도 없습니다. 주인공 말고 등장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데
이름 부를 일이 뭐있겠습니다. 이 남자가 왜 홀로 배를 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그가 위급한 상황에서 열어보는 박스(구형 방향계가 들어있는 선물상자) 안에서 누군가 넣어놓은 카드가 나오는데, 남자가 그 카드를 읽어보려다 마는 장면에서
어떤 관계를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70대로 보이는 이 남자는 인도양 바다 위에서 요트를 타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느닷없이 어디선가 파도에 밀려 다가온 컨테이너와 부딪혀 배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사고를 당합니다. 망망대해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없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듯 보였던 사고였지만, 곧이어 엄청난 폭풍우가 불어닥치고 ,네이게이션과 통신수단까지 고장난 상태에서 남자가 탄 요트가 부서지면서 침몰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배를 버리고 구명 보트로 옮겨타게되는데, 또다시 몰아닥친 폭풍우와 상어떼 등 고난은 끝이 없습니다.
레드포드가 홀로 등장하는 영화인 것은 알았지만, 정말로 대사조차 없는 영화인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혼자있는데,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왜 쓸데없이 말을 하겠습니까. 1시간 반 남짓하는 영화상영 시간동안 레드포드가 하는 대사라고는 오로지 '퍽(fuck)' 과 '댐(danm)' 단 두마디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영화 속에서 레드포드가 어찌나 고생을 하는지," 노인네 고생을 저리 시켜야 직성이 풀렸나" 싶은 감독이 괜히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올 이즈 로스트'는 사실 망망대해에서 조난 당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주인공 파이가 탄 구명보트에 다리를 다친 얼룩말,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탕, 그리고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다는 점이지요 ( 나중에 얼룩말, 하이에나,오랑우탕, 호랑이는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결국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탕은 사라지고 배 안에는 파이와 호랑이만 남게 되고,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비티'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작업하던 스톤박사가 사고를 당해 우주 공간에 홀로 남았다가 사투를 벌여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역시 , 지구에서의 관계가 쉽지가 않습니다.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졌고, 아이도 잃어버린 그는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기 혼자만의 내면 속에 숨어서 지내왔겠지요. 그랬던 그가 결국에는 우주라는 절대 고독 속에 내던져지게 되는 것이지요.
'나 홀로 영화'가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나오기는 좀 드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단 2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적지 않았지만 , 오로지 혼자만 나오는 영화(하긴 '라이프 오브 파이'와 '그래비티' 초반부에는 다른 인물들이 나오기는 합니다)는 거의 없었던 것같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은 (저 혼자의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이 한몫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는 등장인물이 한명을 가지고 이야기거리와 비주얼을 만들어내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지금은 CGI로 못하는게 없기때문에
인물이 한명뿐이어도 보여줄게 많을 수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올 이즈 로스트'와 '라이프 오브 파이''그래비티'는 좋은 예라고 할 수있겠습니다.
또한가지는, 홀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을 통해 "인생은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란 메시지를 전달할 수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함이랄까, 우리 속담에 있듯이,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수있음을 보여줄 수있으니까요.그러고보면, 우리 선조들은 어찌 그리 맛깔나게 말을 만들어냈는지 , 새삼 감탄스럽습니다.
하지만, 과연 '인생은 혼자만의 싸움'일까요.
'올 이즈 로스트'와 '그래비티'의 주인공은 그토록 원했던 절대 고독에 놓이는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하게 타인을 갈구하게 되지요. '올 이즈 로스트'의 마지막 장면( 영화를 볼 분들을 위해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그래비티'에서 스톤박사가 지쳐 잠이 들어 꾸는 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겁니다)이 바로 그런 내면의 갈망을 나타내는 장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나홀로 싸우는 영화'의 결론은 '인생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