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수상작으로 본 20세기 현대사
제 86회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에는 유난히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이 많았습니다. 작품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은 <노예 12>,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이 대표적이지요.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아메리칸 허슬><<필로메나> <캡틴 필립스> 등도 실화에 토대를 둔 작품입니다.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9편 중 실화 소재 작품이 6편이었으니, 아무리 실화 영화가 요즘 강세라하지만 올해 특히나 많았던게 사실이죠. 할리우드가 실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우선, 실화가 가진 힘이 대단한데다가, 둘째 새로운 소재 발굴에 실화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란 물론 오락이지만, 그만한 교과서도 없다는 것을 늘 실감하곤 합니다. 영화만으로 역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 그것을 계기로 그 시대, 그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있게 되기 때문이죠. 거창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어도, 동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 역사상 첫 흑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상을 탄생시킨 <노예 12년>은. 알려진대로 미국 노예제도의 잔학상을 고발한 작품입니다.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요.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노예 12년'또한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뉴욕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던 흑인이었는데, 어느날 여행길에 떠났다가 남부 루이지애나로 끌려가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농장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농장에서 12년간 비참하게 노예로서 일하게 되지요. 영화는 자유인이었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노예로 팔려가 무려 12년동안 처참한 삶을 살아야했던 노섭의 삶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지요. 그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된 후 1853년 이 자서전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의 실제 주인공 론 우드러프(왼쪽)와 영화 속 주인공 역의 매튜 매커너히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은 1980년대 중반 텍사스에 사는 남성인 론 우드러프가 의사로부터 에이즈에 걸려 앞으로 30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후, 국경 넘어 멕시코로 들어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지 못한 신약을 들여와 건강이 다소 회복되자 아예 약장사에 나서며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그립니다.
1980년대 에이즈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공포였는지, 록 허드슨의 충격적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당시 패닉 상태에 빠진 미국 사회를 볼 수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지요. 론 우드러프는 400달러 회원비를 받고 , 회원들에게 FDA 비승인 해외 신약을 가져다가 파는,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공동구매 클럽'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벌기도 했지만, FDA와 정면 충돌하기도 했고요. 당시 미국에는 이런 식의 클럽이 많았다고 하니, 에이즈 환자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심정이었는지 알 수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매튜 매커너히의 열연입니다. 그는 에이즈에 걸려 바싹 마른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무려 20KG을 뺐다고 합니다. 근육질의 , 느끼할 정도로 잘 생긴 외모를 자랑했던 매코너히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외모를 보여줍니다. 타임지는 매커너히가 외모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고 극찬을 했더군요. 실제로 그는 최근 들어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깐 몇장면에만 나오지만 <울프 오브 스트리트>에서도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자레드 레토의 연기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보통 , 여장을 한 남자 배우의 연기는 어딘지 과장되고 어색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레토의 연기는 그야말로 여성 그자체이더군요. 절망에 빠진 표정, 몸짓에서는 전혀 남성을 느낄 수없을 정도였습니다. 남자 주연상과 남자 조연상은 정말이지 ,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울프 오브 스트리트>는 1980년대말~90년대 초반 월스트리트의 악명높은 '페니본드' 브로커 조단 벨포트의 자서전을 토대로 한 작품입니다. 사실 , 돈이 쏟아졌던 이 시기 월가는 영화 소재로 많이 다뤄졌지요. 올리버 스톤의 1987년작 <월스트리트>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픽션이었고, 이번에 마틴 스코세지가 만든 <울프 오브 스트리트>는 돈과 섹스, 마약에 미쳐 돌아갔던 실제 월가 인물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실제 인물 조단 벨포트와 함께 지내고 나서 " 현대판 칼리큘라"라고 했답니다. 그만큼 극도로 타락한 삶을 살았다는 거죠. 벨포트 자신도 당시 자신이 운영했던 회사를 '소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영화가 다소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미국 자본주의의 극단적 일면을 들여다 볼 수있는 작품입니다.
<필로메나>는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필로메나 리 라는 여성이 혼외임신을 했다가 수녀원에 보내진 뒤 아이를 낳게 되지만, 강제로 빼았겨 오랜 세월 자신의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게 되면서 겪는 고통과 투쟁을 그린 작품입니다. 리는 이후 정부와 교회를 상대로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식의 인권침해가 교회에 의해 자행됐고, 성추행도 많이 저질러졌다가 은폐됐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리는 최근 바티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직접 알현했고, 교황의 위로와 조사약속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밖에 <캡틴 필립스>는 소말리아 해적과 맞서 싸운 미국판 석해균 선장이야기이고, <아메리칸 허슬>도 실제 벌어졌던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86회 아카데미상 수상자·수상작 명단
▲ 작품상 = 노예 12년(스티브 맥퀸)
▲ 감독상 =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
▲ 남우주연상 = 매튜 맥커너히(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여우주연상 = 케이트 블란쳇(블루 재스민)
▲ 각본상 = 허(스파이크 존즈)
▲ 각색상 = 노예 12년
▲ 남우조연상 = 자레드 레토(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여우조연상 = 루피타 니옹(노예 12년)
▲ 편집상 = 그래비티
▲ 촬영상 = 그래비티
▲ 미술상 = 위대한 개츠비
▲ 의상상 = 위대한 개츠비(캐서린 마틴)
▲ 분장상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시각효과상 = 그래비티
▲ 음악상 = 그래비티
▲ 주제가상 = 겨울왕국
▲ 음향편집상 = 그래비티
▲ 음향효과상 = 그래비티
▲ 외국어영화상 = 더 그레이트 뷰티(파울로 소렌티노)
▲ 장편애니메이션상 = 겨울왕국
▲ 단편애니메이션상 = 미스터 허블롯
▲ 단편영화상 = 헬륨
▲ 장편다큐멘터리상 = 20 피트 프롬 스타돔
▲ 단편다큐멘터리상 = 더 레이디 인 넘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