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의 굿나잇'과 '독수리 먹잇감 기아소녀' 사진 논란
<*주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프랑스 중견배우 줄리엣 비노슈 주연의 '천번의 굿나잇(A Million times Goodnight)'은 포스터 사진의 달달한 모녀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묵직한 주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감독은 노르웨이, 자본은 스웨덴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 촬영은 아일랜드에서 이뤄진 다국적 영화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세계최고 분쟁지역 보도사진가인 여주인공 레베카가 직업정신과 윤리, 그리고 남편과 어린 두 딸을 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겪는 극심한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갈등을 겪는 것은 모든 직장여성들의 공통적인 문제이지만, 레베카가 겪는 갈등은 훨씬 더 치열합니다. 살인과 강간, 기아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그녀의 일인만큼 , 언제나 생과 사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작업 속에서 짜릿한 쾌감도 얻었을 겁니다. 그 순간만큼은 가족도, 명예도, 두려움도 잊고 오로지 '베스트 샷'을 얻겠다는 욕망에 불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저널리스트'라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바로 저널리스트의 직업정신이기도 한 것이고요.
<오리지날 포스터. 직업인으로서 여주인공의 딜레마보다는 달달한 모녀관계를 주제로 한 가정 드라마의 분위기를 낸 한국 개봉 포스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아마도 영화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던 것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심하게 괴로워하는 가족을 지켜보는 레베카 역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레베카의 가족은 언제나 아내, 그리고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까봐 두려움에 떱니다.(사실 영화 속에서 레베카의 남편이, 그래도 자랑스러운 아내의 직업적 성취를 인정해주지 않고 혹독하게 밀어부치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어쨋거나 , 오랜세월 아내 때문에 겪어온 고통이 컸던 탓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그녀의 죽음이 두렵다는 것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고, 그렇다면 사랑으로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실제 현실은 꼭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너무 두렵고 괴로우면, 외면하고픈게 나약한 존재인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그리고, 격렬한 분쟁현장에서 죽다살아온 레베카는 그런 가족들과 섞이지 못하고 자꾸만 멀어지는게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그 죽일 놈의 직업정신이 시시때때로 치밀어 올라온다는게 문제입니다.(레베카는 아프리카 난민 캠프 취재때 모처럼 맏딸과 화해하려고 동행했다가, 총격사건이 터지자 딸을 급히 구호단체 자동차에 밀어넣고 안전지대로 대피하란 말만 남겨놓은채 홀로 현장으로 뛰어가지요. 엄마를 찾으며 울부짓는 딸을 내버려 두고요.)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것은 그 유명한 '독수리와 아프리카 기아소녀'의 사진입니다.
1994년 퓰리처 상 수상작이지요.
20년이 된 사진이지만, 당시 워낙 논란이 뜨거웠던만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수단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입니다.
너무 굶어서 더이상 움직일 기운도 없이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앉아있는 앙상한 소녀를 독수리가 노려보고 있는...
이 사진이 뉴욕타임스에 처음 실렸을때, 소녀가 어떻게 됐느냐는 문의가 쏟아져들어왔고
편집장은 이례적으로 "소녀는 독수리에게 먹히지 않고 살았다. 이후 배급센터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 소식은 모른다"는 해명글을 지면에 싣기까지 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카터는 당시 33세였습니다. 고국 남아공의 흑백분리 폭력현실에 매우 예민했던 저널리스트였고, 한때 남아공 흑-흑 갈등의 대표사례였던 '타이어 분신살해(타이어를 목에 두르게 한 다음 불을 질러 태워죽이는)' 사건을 가장 처음 카메라에 담은 기자였지요. 아프리카 곳곳의 분쟁과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목숨을 걸고 보도했고요.
문제의 '독수리와 기아소녀' 사진은 그런 그의 작업 맥락에서 나왔던 사진이었고, 그는 이 사진으로 수단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로로 최고영예인 퓰리처 보도사진 상을 수상했지요.
하지만, 그 이후 카터는 독수리 먹이감이 될 처지에 놓인 소녀를 구하는 대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판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 특종욕심 때문에 인도주의고 나발이고 없었다는거죠. 왜 아이를 구해서 직접 캠프로 데려가 돌봐주지 않고 사진만 찍고 현장을 떠났느냐는 겁니다. 어떤 신문에서는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 바로 당신이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와 다름없다"고 공격을 퍼붓기도 했고요.
카터가 사진을 찍었을 당시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니 조금 혼란스런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이는 독수리밥이 될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카터가 난민캠프 인근에서 소녀를 발견하고 약 20분동안 독수리가 날개를 펴는 순간을 잡으려고 기다렸고, 독수리가 움직이지 않자 결국 사진을 찍은 다음 독수리를 쫓아버렸다는 설명이 있는가하면, 카터가 20분씩이나 기다린게 아니라 금방 찍고 독수리를 쫓아버렸다는 설명도 있더군요. 어차피 장소가 급식소가 있는 난민캠프 바로 옆이었고, 카터 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기자들과 캠프 관계자들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에 소녀가 죽기 직전의 위기는 아니었다는 설도 있고요.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카터는 사진을 찍은 후 나무아래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카메라를 부둥켜안은채로...
어쨌거나, 카터는 퓰리처 상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자택에서 자동차 배기관을 내부로 연결한다음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여섯살난 딸을 남겨둔채로..그가 남긴 유서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했지요. " "절망적이다. 전화가 끊어졌다...집세도 없고...양육비...빚갚을 돈...돈!!이 없다...나는 살육과 시체들과 분노와 고통에 쫓기고 있다. 굶주리거나 상처를 입은 아이들, 권총을 마구쏘는 미친 사람, 경찰, 살인자, 처형자등의 환상을 본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운이 좋다면 나도 켄 곁에 가고 싶다." 그의 절친 켄은 얼마전 남아공에서 흑백갈등 시위현장을 취재하다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사망했지요. 케빈 카터는 동료 2명과 일종의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총알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무모할정도로 열정적인 취재를 벌여 '뱅뱅(bang bang ) 그룹'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워낙 우울증이 있었던 케빈 카터가 기아소녀에 대한 극심한 죄책감에다 사진기자로서 회의감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동료 켄의 죽음으로 결정타를 맞아 자살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케빈 카터의 이야기는 최근 어떤 재난현장에서 호주방송기자가 취재 마이크를 내던지고 아기부터 구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요. 그만큼 그 사건은 언론계에 큰 충격과 딜레마를 안겼지요.
케빈 카터의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천번의 굿나이트'에서 사진기자 레베카 역시 보도윤리 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베카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자살폭탄 작전에 투입될 여성이 은밀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단독으로 취재하지요. 아마도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 모르게 탈레반 측의 취재허가를 받았겠지요. 레베카는 비장하고도 비극적인 자살폭탄 테러범의 모든 준비과정(그리고 최후까지)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합니다. 같은 여성으로 괴로웠겠지요. 하지만 , 마음 한 구석에는 남들이 못한 특종을 했다는 자부심과 쾌감도 있었을 겁니다.
그녀의 사진이 보도된다면, 자살폭탄테러를 미화하는거냐는 논란이 불거질테지요. 왜 그런 취재를 거부하지 못했느냐. 폭탄이 터지는 걸 왜 그대로 뒀느냐,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다 등등 수많은 비난을 받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 어떤 기자(사진기자)가 이런 취재 기회를 외면할 수있을까요. ( 결국 이 사진들은 신문에 실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영화에서 확인하시길.^^)
영화의 말미로 갈수록, 어쩌면 레베카의 최후가 케빈 카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케빈 카터와 레베카가 분쟁지역을 누비고 있겠지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가정과 직업 사이에서 '영웅적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든 '직장 맘'들에게 경배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