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암살문건 기밀해제..그리고 영화 '파크랜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에 관한 기밀문건들이 반세기만인 26일(현지시간) 드디어 일반에 공개된다고 합니다. 과연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4년초 국내 개봉됐던 영화 '파크랜드'가 생각났습니다. 숱하게 많은 케네디 영화들 중 가장 신선하고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있었구나"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영화 '파크랜드'가 제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 기밀해제된 문건들에서 숨겨졌던 중요한 정보들을 찾아낼 수있을까요. 당시에는 무심히 넘어갔던 정보들 속에 중요한 팩트들이 숨어있을지 모를일입니다.
예전에 '파크랜드'에 대해 썼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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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도 기구한 운명이 있다면, 미국 텍사스주의 댈러스에 있는 파크랜드라는 병원만큼 기구하고 기막힌 운명에 휘말린 곳도 없을 것이다. 1963년 11월, 이 병원 응급실의 의사들은 미국의 역사를 바꿔놓고, 자기 자신의 인생도 바꿔놓을 사건을 연이어 겪게 된다.
텍사스 특유의 화장하고도 더운 날씨였던 11월 22일 오후 1시를 조금 넘은 시각, 1호 응급실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두개골이 박살난 채 실려들어온 것이었다. 당시만해도 그리 큰 병원이 아니었던 파크랜드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별다른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암살이란 역사 속에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초특급 환자였지만, 사실 응급실 의사들로서는 그리 까다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이미 살릴 수없는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의사들은 최선을 다했고 , 그 결과는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케네디의 죽음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홈비디오'인 일명 '자푸르더 필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
<자푸르더가 넘긴 필름을 독접 보도했던 라이프지. 오른쪽의 라이프지는 공식조사위원회였던 워렌 보고서의 내용을 다루면서 자푸르더 필름의 장면을 표지에 게재했다. 케네디 사망후 라이프지가 자푸르더 필름을 보도했을 당시에는, 케네디 머리에 총알이 명중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충격적'이란 이유로 삭제됐었다>
하지만 파크랜드 의사들의 시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케네디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낸지 불과 2일 뒤인 11월 24일 이번에도 총상을 입은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들어왔다. 환자의 이름은 이미 전 미국인들의 뇌리에 새겨진, 리 하비 오스왈드였다. 오스왈드는 다른 곳으로 이송되던 중 댈러스의 나이트클럽 종업원이었던 잭 루비가 쏜 총알을 배에 맞았다. 이번에도 파크랜드 의사들이 제대로 손을 써보기도 전에 오스왈드는 자신이 죽였던(음모론이 아니라면) 케네디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오스왈드가 죽은 곳은 정확히 응급 수술실 제5호)
<케네디가 사망한 파크랜드 병원의 응급실 1호. 입구에 1963년 11월 22일 , 그 역사적인 날을 기념한 현판이 붙어있다>
역사의 여신 미네르바의 장난기는 이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을까. 파크랜드는 케네디 암살사건과 세번째로 인연을 맺는다. 1967년, 오스왈드 살해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잭 루비가 폐암에 의한 폐색증으로 쓰러져 파크랜드 병원 응급실로 실려온 것이었다. 루비는 앞서 사형선거를 받았지만 항소했고, 쓰러졌을 당시에는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루비 역시 파크랜드 병원에서 최후를 맞았다.
최근 국내개봉한 영화 <파크랜드>는 1963년 11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의 일을 다루고 있다. 오래전 국내에 개봉돼 신선한 반향을 불어일으켰던 폴 그린글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처럼, 극영화라기보다는 다큐드라마라고 할 정도로 '팩트' 그 자체에 충실한 독특한 작품이다. 케네디가 카퍼레이드 중 총을 맞고 쓰러진 22일부터 오스왈드가 매장된 25일까지 4일간의 일을 기록했기때문에, 그로부터 4년후 잭 루비가 파크랜드 병원에서 사망한 사실을 영화 속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독특하고도 신선하며,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정교한 작품을 연출한 사람은 피터 랜즈먼. 전직을 알게된다면, 그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있다. 랜즈먼은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9.11테러와 아프간 전쟁, 파키스탄 전쟁 등을 보도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위키에 따르면, 섹스산업에 관한 탐사보도물이 조작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11월의 4일 ㅡ존F 케네디의 암살>이란 방대한 저서를 읽고 완전히 빠져들었으며, 이 책의 내용과 자신이 약 4년동안 조사한 케네디 암살사건을 토대로 영화 대본을 썼고 연출까지 했다.
<영화 '파크랜드'에서 케네디 카퍼레이드를 찍었다가 그 스스로 역사적 인물이 돼버린 에이브러햄 자프루더. 폴 지아매티가 실감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자푸르더는 그 날 이후, 평생 다시는 홈비디오 촬영 카메라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올리버 스톤의 <JFK> 등 숱한 케네디 암살 소재 영화들과 <파크랜드>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매우 명확하다. 첫째, 음모론을 비롯해 그 어떤 해석도 배제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는 케네디 암살의 실체를 파고들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랜즈먼 감독에 따르면 영화는 100퍼센트 실제 있었던일을 다루고있댜 ㆍ지난50여년동안 지겨울만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던 케네디 암살사건을 그대로 재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진정으로 새롭다. 그 이유는 바로 두번째에 있다. 시점을 대통령이 암살 사건 자체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하고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던 그 현장에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끔찍했던 며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쁜 간호사랑 장난질 치기를 좋아하던 젊은 인턴과 레지던트들, 책임감이 강한 수간호사, 당시로선 특이한 취미였던 홈비디오 촬영광인 유대계 의류상 에이브러햄 자푸르더,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게된 경호원들, 찬란하게 젊고 아름다웠던 대통령이 순식간에 피투성이 시체가 된 모습을 지켜보게된 늙은 대통령 주치의,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자를 동생으로 두게 된 형.. 그들은 그 끔찍했던 4일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고 , 겪어야했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 많은 케네디 관련 영화들 중 <파크랜드>같은 영화는 단연코 없었다. 그래선지 랜즈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 세상사람 다 아는 이야기를 또 한다는게 어렵거나 걱정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고 "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영화를 본 미국 국민들조차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해 아직도 몰랐던 사실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이 영화에 담긴 정보 중 상당수가 미국국민들에게도 생소한 것들이던 모양이다. 랜즈먼 감독은 "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11월 22일부터 3일간은 내겐 (2001년) 9월 11일, 9월 12일, 9월 13일과 같았다"고 말했다. 9.11테러 때처럼 , 50여년전 그 날 미국 국민들이 경험한 공포와 충격, 상실감과 절망감을 보여주려 했다는 이야기이다.
<11월 25일 오스왈드의 장례식 모습.. 관을 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장례식을 취재하러 나왔던 기자들이 나섰다. 한 기자의 손에는 수첩과 볼펜이 들려있다 .. 영화 '파크랜드'에서도 이 장면이 그대로 재연된다>
<파크랜드>를 보면서, 어쩔 수없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상수의 <그 때 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팩트 그 자체보다는, 되돌아보면 황당하기 짝이없는 한국 현대사의 한 시대와 한 사건을 조롱하고 풍자한 블랙코미디이다. 한국 현대사와 국민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던 박정희 살해사건을 있는 그대로 다뤄볼수는 없을까.
노무현은 또 어떤가. 한나라의 대통령이 절벽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생애를 마감한 이 극적인 사건을 있는 그대로, 감정이나 평가없이 냉정하게 그려볼 수는 없을까.
어쩌면, 미국 국민들도 그 날로부터 50년의 세월이 지난 이제서야 <파크랜드>같은 객관적인 시선의 케네디 암살영화를 볼 수있게 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도 박정희와 노무현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반세기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출처: http://bluemovie.tistory.com/555 [푸른여우가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