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역사3-2000년전 바그다드에 배터리가 있었다고?
1936년,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 쿠주트 라부 Khujut Rabu에서 고대 유물로 보이는 질항아리가 발굴됐다. 쿠주트 라부는 페르시아 파르티아 Parthia 왕조(BC150~AD223)와 사산 Sasan 왕조(AD224~650)의 수도였던 크테시폰 Ctesiphon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이 질항아리는 약 13cm 높이의 평범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심상치않은 물건들. 얇은 구리판이 돌돌 말려 들어 있고, 중앙에는 철로 만든 봉이 매달려 있었다.. 원통의 바닥과 윗부분에는 역청이 발라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납땜의 흔적도 있었다. 특히 철봉의 일부가 녹아 있는 것으로 볼 때. 항아리 안에 와인이나 식초와 같은 산성 물질이 담겨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항아리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한 남자가 이 항아리에 꽂혔다. 오스트리아 출신 고고학자이자 화가인 빌헬름 쾨니히Wilhelm König였다. 1931년부터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쾨니히는 고대 이라크의 은(銀)유물에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부 은 유물에 아주 얇은 금판이 덧씌워진 것을 보고 의문을 갖고 있던 터였다. 쾨니히는 1938년 발표한 한 논문에서 고대 이라크인들이 전류를 이용해 도금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가설을 제기하면서, 그 증거로 바로 2년전 쿠주트 라부에서 발굴된 질항아리를 지목했다. 항아리 안에 담겼던 산성 물질이 전해질 역할을 하고 구리와 철봉이 양극과 음극 역할을 해 전기를 만들어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전해질과 양극, 음극은 배터리의 기본 구성요소다. 쾨니히는 이 항아리를 ‘바그다드(또는 바빌론) 배터리 Bagdad(또는 Babylon) Battery’로 명명하면서, 도금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배터리는 1800년 이탈리아 과학자 알레산드로 볼타 Alessandro Giuseppe Antonio Anastasio Volta 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쾨니히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려 2000년 전에 인간이 마음대로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일종의 배터리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고대 중동지역에 배터리는 물론 도금기술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기록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쾨니히의 주장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바그다드 배터리가 만약 도금용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용도였을까. 일부 학자들은 의료용 전기충격기 설을 제기하고 있다. 즉 전기를 이용해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이집트인들은 전기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BC2500년경 이집트 제5왕조 때의 한 돌판에는 전기장어를 이용한 통증치료법이 새겨져 있다. 호박 등을 천으로 문지르면 정전기가 생긴다는 고대 그리스 기록도 있다.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 Claudius의 주치의 스크리보니우스 라르구스 Scribonius Largus는 황제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전기장어 등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 의사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 Pedanius Dioscorides가 탈장치료를 위한 전기장어의 유용성을 제기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종의 고문도구로 전기장어 등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바그다드 배터리’는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연구가들이 바그다드 전지와 유사한 형태의 모형을 만들고 실험을 통해 실제 전기를 만들어내는 성공하기도 했다. 쾨니히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에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 하이 볼티지 연구소 General Electric High Voltage Laboratory의 엔지니어인 윌러드 그레이 Willard Grey는 쾨니히의 논문을 근거로 ‘바그다드 배터리’를 직접 만들어 0.5V의 전기를 생산해내는데 성공했다. 1980년 영국 BBC 프로그램 ‘아서 C 클라크의 신비한 세계’에 출연한 독일의 이집트학 학자 아르네 에거브레히트 Arne Eggerbrecht는 자몽주스를 채운 항아리를 사용해 약 0.5 볼트의 전기를 만들어내, 약2시간에 걸쳐 은 조각상의 표면에 도금을 해보이기도 했다. 2005년 디스커버리채널의 ‘미스버스터스’MythBusters도 구리와 철심, 그리고 레몬주스를 넣은 10개의 질항아리들을 연결해 4볼트의 전기를 생산해냈다. 이는 작은 동전에 도금을 하고 전기충격치료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이처럼 바그다드 배터리를 둘러싼 각종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과연 도금이나 치료를 위한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구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게다가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던 바그다드 배터리가 다른 수많은 유물들과 함께 약탈 당하면서, 안타깝게도 후속 연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열흘 전,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비밀수장고에서 1만5000여점의 유물들이 깜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그다드 배터리도 사라진 유물들 중 하나였다. 이 유물들은 임박한 전쟁에 대비해 전시실이 아닌 모처의 비밀장소로 옮겨진 상황이었지만, 누군가의 소행으로 약탈 당하고 만 것이다. 이후 관계자들의 노력 덕분에 2004년 3037점이 발견됐고, 이듬해에는 추가로 2307점이 박물관으로 되돌아왔다. 2012년에는 독일 정부가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소장품이었던 것으로 확인된 45점을 이라크 정부에 되돌려줬다.2015년 2월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수천여점의 유물들은 여전히 실종상태이다. 바그다드 배터리의 행방 역시 오리무중이다.
'전지의 아버지’ 볼타
18세기는 배터리의 본격적인 발전이 이뤄진 시기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 마찰전기 등을 이용한 전기실험이 매우 인기있는 볼거리 중 하나였다. 에발트 게오르규 폰 클라이스트 Ewald Georg von Kleist 역시 전기에 큰 관심을 가진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1700년 독일 포메라니아에서 태어나 라이덴대학에서 과학을 공부한 폰 클라이스트는 언제어디서나 필요할 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라고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작은 유리병에 물을 조금 채워 코르크 마개로 막고 철사나 못을 코르크 마개에 꽂아서 물에 닿게 한 다음, 철사의 노출된 한쪽 끝을 정전기를 일으키는 마찰기구에 접촉시켜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네덜란드 라이덴의 과학자 피에터 반 뮈스헨브룩 Pieter van Musschenbroek이 1745년 전기를 만들어 유리병 안에 축적했다가 의도대로 방전시킬 수 있는 도구인 ‘라이덴 병 Leiden Jar’’을 세상에 내놓았다. 병 안쪽에 축적되는 전기가 최대 3만3000볼트에 이르렀다. 병 안에서 위쪽으로 연결된 금속막대가 물체에 닿으면 방전되는 원리이다.
미국에서도 전기실험이 태동하고 있었다.
건국의 아버지 중 한명인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은 비가 오던 어느 날, 쇠로 만든 열쇠를 매단 연을 높이 올려 번개가 치는 순간 전기가 발생되는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번개가 곧 전기현상이라는 것은 입증해낸 것. 그는 연구결과를 1750년 ‘전기에 대한 실험과 관찰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on Electricity’이란 책을 통해 세상에 발표했다.전기 용어들 중에는 프랭클린이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게 바로 배터리이다. 배터리는 원래 ‘포대’란 뜻의 군사용어이다. 그런데 프랭클린은 전기 실험을 하면서,라이덴병을 여러개 연결해 더 많은 정전기를 모을 수 있는 장치를 바로 ‘배터리’라고 불렀다.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배터리를 만들어낸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스위스 파비아 대학 교수였던 볼타이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과학적 사건은 1786년 이탈리아 동물학자 루이지 갈바니 Luigi Aloisio Galvani의 일명 ‘동물전기’ 발견이었다. 갈바니는 죽은 개구리의 발 근육에 금속을 갖다 대면 개구리 발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움찔거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볼타는 동물전기에 의문을 품었다. 같은 종류의 금속으로는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볼타는 전기의 근원은 생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류가 다른 두 금속을 접촉하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는 1799년에 아연판과 구리판을 산성 용액에 담그고, 잠기지 않은 두 끝을 연결하면 회로가 생겨 전기가 계속 흐른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원리를 이용해 최초의 화학전지를 발명했다. 단발적인 전기 방전을 만드는 데 그치던 당시의 라이덴 병과 달리 전기가 계속적으로 흐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배터리’였던 것이다
볼타는 1801년에는 파리로 가서 나폴레옹 Napoleon 황제 앞에서 배터리를 발명하게 된 실험들을 재현했고, 과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1810년 백작 작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볼타전지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지속력이 너무 짧은 것이 치명적인 한계였다. 습식전지라는 점도 불편했다. 건전지(dry-cell)는 1868년 프랑스의 과학자인 조르주 르클랑셰 Georges Leclanché에 의해 발명됐다. 그가 만든 건전지는 아연으로 원통을 만들고 한가운데에 탄소봉을 넣은 다음, 탄소봉과 아연 원통 사이에 이산화망간과 염화암모늄 수용액 그리고 탄소가루를 섞어서 반죽한 것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탄소봉이 +극, 아연 원통이 -극으로 작용하는 것. 오늘 날과 같은 알칼라인 전지는 1950년대 캐나다 학자 루이스 어리 Lewis Urry에 의해 만들어졌고, 1970년 니켈 전지의 발명에 이어 1980년대 중반에는 리튬 이온 전지가 선보이게 됐다. 2019년 일본 아사히 케미컬의 요시노 아키라 吉野 彰와 존 B. 구디너프 John B. Goodenough, 스탠리 위팅엄 Stanley Whittingham은 리튬 이온 배터리 발명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세 사람의 공로로 오늘날 휴대폰에서부터 노트북ㆍ전기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품에 들어가는 가볍고 재충전이 가능하면서 오래가는 배터리가 쓰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휴대전화와 노트북부터 전기자동차와 선박에 이르기까지 배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떼려야 떼낼 수 없는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특히 지구온난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친환경 배터리의 개발 및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2021년 2월 호주 신재생에너지기금인 CEP(Clean Energy Partnership)은 뉴사우스웨일스 헌터에 1.2기가와트(GW.1200메가와트)급 배터리 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CEP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호주 전역에 들어서게될 4개의 초대형 친환경 배터리 건설 계획의 일부이다. 4개 배터리의 총 용량은 최소 2기가와트에 이르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최대 규모이다. 지금까지 세계최대 배터리는 미국 비스트라에너지가 캘리포니아에 세운 3000메가와트급의 배터리였다.이런 초대형 배터리는 태양광 등으로 생산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전력망에 공급해주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