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역사5-샴푸, 식민주의의 그늘
여성의 윤기나는 머릿결이 미의 척도 중 하나로 여겨진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년 전부터이다. 우리나라 옛 여성들이 창포로 머리를 감았던 것처럼, 바빌로니아 Babylonia에서는 BC 3000년 경부터 동물의 지방과 재를 섞어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알칼리’는 바로 아랍어로 ‘재’를 뜻하는 ‘칼리(kali)’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집트에서는 BC 1500년 경부터 연꽃잎 등에서 추출한 기름과 동물 지방, 그리고 알칼리성 소금을 섞어 세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체 비누는 800년 경 시리아 알레포 Alleppo에서 처음 등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올리브유, 월계수유, 잿물을 함께 끓인 다음 식혀 덩어리를 만든 다음 이를 잘라내 세제로 사용한 것. 11~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알레포에서 ‘신문물’ 비누를 대량으로 유럽으로 가져왔고, 이후 비누는 유럽의 귀족층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중동으로부터 건너온 비누업자들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정착해 비누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스페인 카스티야 Castilla에서 주로 만들어진 올리브유 비누는 지금도 꾸준히 생산되면서 사랑받고 있다.
오늘날 헤어 관리의 필수품이 된 ‘향기나는 물비누’ 샴푸는 언제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샴푸는 유럽 식민주의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샴푸의 어원은 인도 힌두어 ‘참포 champo(또는 campo)’로 추정된다. 참포는 ‘누르기’ 또는 ‘완화’란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차파티 capati (또는 campna)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 국왕을 사로잡은 ‘인도식 샴푸 치료’
인도에서는 고대로부터 다양한 허브와 추출물을 섞어서 피부와 모발 관리에 사용해왔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사핀두스(sapindus)나무의 열매와 말린 구스베리, 그리고 여러 허브를 넣어 끓여 만든 추출물로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사핀두스 열매는 소프넛 soapnut 또는 소프베리 soapberry란 이름으로도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천연세제로 사용되고 있다.
주머니나 그릇에 이 열매들을 넣은 다음 비비거나 강하게 흔들면 거품이 일어난다. 천연 계면활성제인 사포닌이 함유돼있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 기록에 따르면, 사핀두스 열매의 거품에 아카시아꽃 추출물인 시카카이 shikakai, 히비스커스 꽃 등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16세기 시크 Sikh 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나크 Guru Nanak가 사핀두스 열매를 언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인도에서 ‘참포’란 위와같은 천연세제를 사용해 몸의 아픈 부위를 마사지하고, 정결하게 씻어내는 행위를 가르킨다. 식민지 시대 초기에 인도를 방문한 유럽의 무역상들은 인도인들의 참포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참포라는 발음이 훗날 샴푸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다.
영국에 참포 또는 샴푸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인도의 여행가이자 의사, 기업인이었던 딘 마호메드 Dean Mahomed이다. 그는 세계 미용의 역사는 물론이고 유럽 식민시대 역사를 말할 때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8세기 유럽으로 건너온 인도 이민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도의 요리와 의약품 등 문화를 유럽에 전파했고, 영어로 책을 펴낸 최초의 인도인이기 때문이다.
마호메드는 1759년 인도 벵갈 Bengal 지역의 파트나 Patna의 이슬람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의 아시아 독점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 소속 벵갈군의 군인으로 활동하다 마호메드가 11살 되던 해에 전투에 참전해 사망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인도회사 군대에 입대한 그는 1782년 상관으로 모시던 고드프리 에반 베이커 Godfrey Evan Baker 대령이 퇴직을 하자 그와 함께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1784년 아일랜드 코크 Cork로 이주한 마호메드는 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다가 제인 댈리 Jane Daly란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슬람에서 영국 국교로 개종한 그는 1786년 댈리와 결혼했고, 이후 런던으로 이주한다.
마호메드가 영국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794년이었다. 군복무시절 인도 곳곳을 여행했던 경험을 담은 여행경험을 담은 ‘딘 마호메드의 여행기The Travels of Dean Mahomed ’를 출간한 것이다. 인도인이 쓴 최초의 영어책인 이 여행기는 당시 영국은 물론 유럽인들에겐 생소했던 인도 문화를 소개하고, 서구 문화와의 차이점 등을 지적해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이후 마호메드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1810년 런던에 ‘힌두스탄 커피 하우스 Hindoostane Coffee House’를 열었는데 영국 역사상 최초의 인도 식당이었다. 이곳에는 커리 등 다양한 인도 음식 뿐만 아니라 인도산 담배 등을 팔았다.
1814년 마호메드는 가족과 함께 영국의 대표적 해변 휴양도시 중 하나인 브라이튼으로 이주해 인도식 목욕탕을 열었다. 그는 당시 신문에 낸 광고에서 “인도의 약용 증기탕(터키탕과 비슷),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통증을 없애줌. 특히 류마티스와 마비, 통풍, 굳은 관절통,골절 등에 직효 The Indian Medicated Vapour Bath (type of Turkish bath), a cure to many diseases and giving full relief when every thing fails; particularly Rheumatic and paralytic, gout, stiff joints, old sprains, lame legs, aches and pains in the joints”라고 주장했다. 1826년에 그려진 마호메드의 목욕탕 건물 그림을 보면, 건물 외벽에 ‘마호멧의 오리지널 약용 샴푸잉 목욕(Mahomed’s original medicated shampooing bath)’라고 커다랗게 쓰여져 있다.즉 ‘샴푸잉’이란 단어는 인도식으로 만든 천연오일과 세제로 몸의 아픈 곳을 마사지하고 허브를 이용한 증기 찜질, 더운 물 목욕 등으로 몸의 통증과 긴장을 풀어주는 과정 전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스파’와 비슷했던 마호메드의 목욕탕은 브라이튼 상류층 인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인도식 목욕의 통증 치료효과까지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의 병원들이 환자들을 그의 목욕탕으로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마호메드는 1820년 ‘샴푸 외과의사이자 인도식 약용 증기 및 바다소금 목욕 발명가 셰이크 딘 마호메드가 치료한 케이스들 Cases Cured by Sake Deen Mahomed, Shampooing Surgeon,and Inventor oh the Indian Medicated Vapour and Sea-water Bath’이란 책을 펴내 3판까지 인쇄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국왕 조지 4세 George IV에게 헌정된 이 책에서 그는 영국인들이 인도식 마사지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결국 인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1822년엔 ‘샴푸잉: 또는 인도 약용 증기 목욕의 이점들( Shampooing; or Benefits resulting from the use of the Indian medicated vapour bath)’이란 또다른 저서도 발표했다.‘닥터 브라이튼’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진 마호메드는 국왕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 William IV의 ‘샴푸외과의사(shampoo surgeon)’로 임명되기까지 하면서 영국 상류사회의 유명인사가 됐다
샴푸의 대중화와 환경오염
유럽에서 초기 헤어용 샴푸는 면도용 비누와 허브를 끓여 만든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샴푸의 본격적인 제품화는 20세기에 들어서 이뤄진다. 독일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 약국 겸 향수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약사이자 발명가 한스 슈바르츠코프 Hans Schwarzkopf가 1903년 고객들을 위해 분말형태의 헤어전용 비누를 내놓은 것. 물에 비교적 잘 녹는 이 분말 비누가 좋은 반응을 얻자 슈바르츠코프는 회사를 세워 1927년에 사상 최초로 병에 든 액체 샴푸를 출시했다. 1933년 세계최초로 비(非)알칼리 샴푸를 개발한 슈바르츠코프는 유럽 최초의 미용사 교육시설을 세우는 등 헤어 미용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슈바르츠코프 회사는 1995년 독일 뒤셀도르프 소재 헹켈 Henkel에 인수돼 다양한 미용 제품들을 생산하며 120여년의 역사를 지금도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샴푸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국가이다. 1909년 미국 시카고 소재의 H S 피터슨 앤드 컴퍼니가 캔스록스 알갱이 샴푸 Canthrox Granular Shampoo란 이름의 분말형 샴푸 제품을 대량생산 해 시장에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것. 합성 계면활성제 샴푸는 1930년대에 미국 비누회사 프록터앤드갬블(P&G)에 의해 탄생했다. ‘아이보리 Ivory’란 이름의 고체 비누로 대히트를 친 P&G가 1934년에 출시한 ‘드린(Drene)’이 바로 사상 첫 합성계면활성제 샴푸이다. 경수에 잘녹지 않고, 칼슘과 마그네슘에 반응해 흰색 찌꺼기를 남기는 천연세제와 달리 합성 계면활성제는 어떤 물에서나 풍부한 거품을 만들어내 때를 잘 씻어내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에는 샴푸 뿐만 아니라 비누,치약, 샴푸, 세안제, 바디워시, 주방세제, 세탁세제 등 생활 전반에 합성 계면활성제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계면활성제는 오래 사용하면 피부 및 건강에 나쁘고, 무엇보다 자연적으로 잘 분해되지 않아 심각한 환경오염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지난 2019년 7월 멕시코 푸에블라주에서는 주민들의 과도한 세제사용으로 오염된 생활하수가 하천에 흘러들면서 무려 5m가 넘는 거품 산이 만들어져 국제사회에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샴푸와 함께 사용하는 컨디셔너(린스) 제품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우리의 옛 여성들이 머릿결에 부드러움과 윤기를 더하기 위해 동백기름을 사용했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머리카락과 수염을 관리하는데 다양한 천연 기름을 사용했다. 특히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통치기에 영국 남성들 사이에서는 일명 ‘마카사르(Macassar) 오일’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마카사르 오일’은 18세기말~19세기 초 런던에서 활동했던 유명 이발사 알렉산더 롤랜드 Alexander Roland가 1783년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던 머리카락과 수염 관리용 기름으로, 코코넛이나 야자유 등에 일랑일랑과 같은 꽃에서 채취한 향긋한 기름을 섞어 만들었다. ‘마카사르’란 이름자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있던 인도 마카사르 항구를 통해 수입한 각종 천연재료들을 사용한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마카사르 오일 등과 같은 천연 컨디셔너는 자칫 많이 발랐을 때 머리카락이 달라붙고 번들거리는 데다가 옷이나 바닥에 떨어지기 쉬워 세탁을 하거나 청소를 해야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마카사르 오일와 같은 천연 헤어관리용 오일을 제품화한 사람은 프랑스 향수업자 에두아르 피노Édouard Pinaud였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내놓은 천연오일과 향수를 섞은 헤어 및 수염용 컨디셔너 ‘브릴리앙틴 Brilliantine’을 내놓은 것. 피노와 브릴리앙틴이란 이름은 ‘클럽맨 피노 브릴리앙틴 포마드 Clubman Brilliantine Pomade’란 제품을 통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