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역사10-그림들은 어디로 갔나...세기의 박물관 도난사건들
1990년 3월 18일 일요일 오전 1시24분, 미국 보스턴 시내에 자리잡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Isabella Stewart Gardner 박물관 출입문의 벨이 울렸다. 이 날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많은 보스턴의 최대축제인 성패트릭 데이 Saint Patrick’s Day. 보스턴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전날부터 벌어진 온갖 행사와 파티들을 끝내고, 축일 당일날 열리는 화려한 퍼레이드를 기대하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이었다. 박물관의 야근 당직 경비원 중 한명인 리처드 애버스 Richard Abath는 인터폰으로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벨을 누른 사람은 경찰 정복을 입은 2명의 남자였다. 이들은 애버스에게 “박물관에서 모종의 소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문을 열 것을 요구했고, 애버스는 의심하지 않고 문을 열어줬다. 잠시 후, 이들은 애버스를 비롯한 또다른 경비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더니 “강도다”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경비원들을 지하 창고로 끌고가 기둥에 묶어놓았다.
위층 전시실로 뛰어올라간 범인들이 벽에 걸린 그림들을 떼어내 날카로운 칼로 틀에서 도려낸 다음 박물관 밖에 세워놓은 자동차를 타고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81분.
오전 9시쯤 출근한 또다른 경비원은 출입문 앞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문이 열려있는데다가 야근 당직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에 있다가 전화를 받고 급히 박물관으로 온 경비팀장은 감시카메라의 방향이 돌아가 있고 사무실 문의 일부가 부서져 있는 것을 보자마자 전시실로 달려갔다. 그곳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벽에 걸려있던 그림들이 사라져버리고 바닥에는 빈 액자들이 나뒹굴어 있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지하실에서 눈과 입에 덕테이프를 칭칭 감은 채 기둥에 묶여있는 경비원 2명을 발견했다.
사라진 6억 달러어치의 명화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회화 등 수많은 예술품을 소장한 미국의 유서깊은 박물관 중 하나이다. 저명한 예술품 컬렉터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가 1903년에 설립한 이 박물관은 초일류급 컬렉션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로도 유명하다.
이런 곳에서 벌어진 도난사건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사라진 작품은 13점.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 Storm on the Sea of Galilee’. 렘브란트가 1633년 완성한 이 그림은 그의 유일한 바다풍경화로,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얼굴 격인 작품이었다. 렘브란트의 또다른 그림 ‘검은 옷을 입은 귀부인과 신사 A Lady ang Gentlman in Black’과 우표 크기의 소품 ‘자화상 Self Portrait’도 함께 사라졌다. 요하네스 페이메이르 Johannes Vermeer의 ‘연주회 Concert’는 과작으로 유명한 페이메이르가 남긴 34점 중 하나였다.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의 ‘토르토니 카페에서 Chez Tortoni’, 에드가 드가 Edgar Degas의 작품 5점도 도난 당했다.
사건 직후 연방수사국(FBI)은 사라진 작품들의 가치를 2억달러로 추산했고, 10년 뒤인 2000년에 5억 달러로 재추산했다. 현재는 최소 6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술품 도난 사건 피해액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FBI는 수십년동안 많은 인력을 투여해 수사를 벌였지만 단 한 명의 범인도 잡지 못했으며, 사라진 13점의 작품들 중 단 한 점도 되찾지 못했다. 당초 경비원 애버스가 공범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의심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은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터리 투성이였다. 우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박물관치고는 보안이 너무 허술했던 데에다가, 범인들의 지문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덕테이프 뭉치가 범행 현장에서 없어지는 등 경찰과 FBI의 초동 수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다. 특히 렘브란트와 페이메이르의 작품들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암시장에서 조차 팔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범인들의 범행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범인들이 나폴레옹 시대의 깃대 장식과 중국산 장식 도자기를 훔쳐가져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전시실에는 그 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값어치가 나가는 작품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FBI와 보스턴 경찰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사건과 보스턴 지역 마피아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원인 로버트 과렌테 Robert Guarente, 로버트 젠틸레 Robert Gentile, 바비 도나티 Bibby Donati 등이 도난사건이 벌어지기 전후에 수상한 행동을 했다는 벌였다는 것이다. 보스턴 암흑가에서는 이들이 주변에 미술품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퍼졌다. 다른 범죄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두목을 빼내기 위해 경찰과의 협상용으로 미술품을 훔쳤다는 그럴듯한 설도 돌았다. 경찰은 관련자들의 집 안팎을 샅샅이 뒤진 것도 모자라 마당까지 파헤쳤지만 그림은커녕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번번히 허탕쳤다. 경찰은 결국 현재까지 단 한명의 용의자도 체포 또는 기소하지 못하는 치욕스런 기록을 이어나가도 있다.
오늘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전시실에 들어가면 곳곳에 빈 액자들이 걸려있다. 자신이 전시해놓은 작품들을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설립자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비록 작품은 없지만 빈 액자만이라도 그 자리를 지키도록 해놓은 것이다. 박물관은 10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고, 도난 사건과 관련된 제보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보석 공예품 도난사건
2019년 11월 25일 오전 4시, 독일의 유서깊은 도시 드레스덴의 아우구스투스 다리 근처의 전력시설물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 흔한 누전사고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일로 인해 인근지역에 정전이 발생했다. 유럽 최대 보석 공예품 컬렉션을 자랑하는 그뤼네 게뵐베 Ggrüne Gewölbe ( 녹색금고 Green Vault 란 뜻)박물관에도 전깃불이 나가면서 보안장치가 꺼졌다. 잠시 뒤, 박물관 창문을 뜯고 전시실 안으로 남자 2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도끼로 진열장들의 유리를 박살낸 다음 100여점의 보석 공예품들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피해액은 약 10억 유로.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경우와 같은 미술품이 아닌 보석 공예품 도난사건으로는 세계최대 규모이다.
같은 날 아침, 마리온 아커만 Marion Ackermann 관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사라진 공예품들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이 위치한 작센 주의 미하엘 크레치머 Michael Kretschmer 총리는 "(작센) 주 뿐만 아니라 작센 주민들 모두(의 소장품)까지 강탈당했다"며 "그뤼네 게뵐베와 작센 주가 소장한 보물들 없이는 이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1723년 작센 왕국의 아우구스트 1세에 의해 걸립된 그뤼네 게뵐베 박물관은 ‘유럽의 보석상자’란 애칭답게 10개의 방에 걸쳐 호화찬란한 보석공예품 약 3000 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일명 '드레스덴 그린(녹색)'으로 알려진 '녹색 다이아몬드 펜던트'이다. 이 녹색다이아몬드는 무려 40.7 캐럿이다. 아우구스트 2세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는 도둑들이 침입한 전시실과는 다른 전시실에 평소 전시돼있는데,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엔 마침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대여된 상태였다.
도둑들은 박물관의 10여개 전시실 중 '보석의 방 Jewel Room'으로 불리는 전시실만 털었다. 이 곳에는 수백개의 다이아몬드, 루비,에메랄드, 진주 등으로 만든 공예품 뿐만 아니라 금,은,상아, 호박으로 만든 정교한 조각상들도 전시돼있었다. 도둑들은 그 중 일명 ‘드레스덴 화이트 Dresden White’ 세트를 비롯해 총 3개의 세트를 훔쳤다. 각 세트는 40여개의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사파이어 등으로 만든 장신구들로 구성돼있으며, 작센 왕국의 국왕 및 왕족들이 착용했던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버튼, 홀(지팡이)등으로 구성돼있다. 무려 49캐럿의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드레스덴 화이트’ 펜던트 하나의 가격만 900만~1000만 유로로 추정된다.
경찰은 50만유로의 현상금을 내걸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범인들의 행적은 묘연했다. 수천명의 경찰이 은닉장소로 추정되는 18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라진 공예품들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2017년 베를린 보데 박물관에서 100kg짜리 금화가 도난당했던 사건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베를린의 악명높은 범죄조직의 용의자 4명을 체포했지만 드레스덴 박물관 도난 사건에 관한 명확한 단서를 찾는데 실패했다. 보데 박물관에서 사라진 금화도 지금까지 오리무중 상태이다. 전문가들은 도난 당한 작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공개된 시장에서 세트로 팔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도둑들이 세트에 포함된 작품들을 하나씩 나눠 암시장에서 팔아치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아커만 관장은 세트가 분리돼 각각 팔릴 가능성에 대해 "상상만해도 끔찍하다"며 절망적인 심정을 나타냈다. 2020년 1월 이스라엘의 한 보안전문회사는 드레스덴 박물관의 도난품들이 이른바 ‘다크 웹’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수사당국은 이를 일축했다.
도둑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반고흐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작품들은 유난히 도난피해를 많이 겪었다. 2020년 3월 30일 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폐쇄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싱어 라렌 Singer Laren 박물관에 걸려 있던 반 고흐의 1884년작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 Parsonage Garden at Nuenen in Spring’이 도난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 명 또는 여러명의 도둑이 망치로 유리문을 깨고 박물관에 침입했으며, 경보음에 경비원들이 전시실에 달려갔지만 작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교회탑이 멀리 보이는 정원에 한 남성이 서있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반 고흐의 비교적 초기작으로, 가치는 최소 600만 유로로 추정된다. 2021년 현재까지 작품은 사라진 상태이다.
2010년 8월 2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모하마드 마무드 칼릴 Mohammad Mahmoud Khalil Museuml 미술관에서는 반 고흐 작품 ‘꽃병과 꽃 Vase with Flowers(또는 ’양귀비 꽃)’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반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3년 전인 1887년에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이 작품의 가치는 약 5000만~5500만 달러.기막힌 사실은, 모하메드 마무드 칼릴 미술관이 반 고흐의 이 작품을 도둑맞은 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977년에도 같은 작품을 도난 당했다가 10년 뒤에야 겨우 되찾은 적이 있다. 같은 일이 반복해서 벌어진 것은 너무나도 허술한 경비 때문이었다. 범인들이 액자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도려내 가지고 도망치는 동안 알람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 . 이 사건으로 문화부 관리 11명이 사퇴하고 미술관 관계자 수명이 체포됐지만, 범인들은 물론 작품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2002년 12월 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Van Gogh Museum에 있던 작품 ‘스헤베닝겐 바다전경 View of the Sea at Scheveningen ’과 ‘뉘넌 개신교회를 떠나는 신도들 Congregation Leaving the Reformed Church in Nuenen’이 사라졌다. 범인들은 4m가 넘는 사다리를 타고 건물 벽을 올라와 유리창을 깨고 전시실에 침입해 그림 2점을 가지고 도망쳤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6년, 이탈리아 나폴리 경찰은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이탈리아 4대 마피아 중 하나로 악명높은 카모라 Camorra 마피아의 조직원을 체포했고, 그의 농장에서 반 고흐의 작품 2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감정 결과 진품으로 밝혀지면, 작품들은 무사히 박물관을 돌아오게 됐다. 반 고흐 미술관은 1991년에도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 등 20여점을 도난 당했지만, 경찰의 신속한 수사덕분에 사건 발생 수시간 만에 작품들을 되찾은 적이 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절규 Scream’ 연작 역시 도난과의 악연으로 유명하다. 1994년 2월 12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Lillehammer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수도 오슬로 Oslo의 국립미술관에 2명의 남성이 침입했다. 이들은 유화 버전 ‘절규’를 훔쳐 달아나기 전 메모 한 장을 남기는 여유를 부렸다. 메모에는 “허술한 보안에 감사합니다”라고 씌여있었다. 다행스럽게도, 3개월 뒤인 5월 7일 작품은 손상없이 발견됐다. 2004년 8월 22일,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에서는 총을 든 괴한들이 백주 대낮에 들이닥쳐 경비원들과 관람객들을 위협하면서, 템페라 버전의 ‘절규’와 ‘마돈나 Madonna’를 떼어내 가지고 달아났다. 대부분의 미술관 도난사건이 한 밤중에 일어나는 것과 달리 많은 관람객들이 있는 전시 시간에 발생한 무장강도 사건이란 점에서 매우 희귀한 경우였다. 2006년, 노르웨이 경찰은 사라진 ‘절규’와 ‘마돈나’를 되찾았다고 공식발표했다. 하지만 수사과정 공개를 거부해 의문을 남겼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난 당한 전력이 있는 작품은 렘브란트의 소품인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 Portarit of Jacob de Gheyn III’이다. 영국 런던의 덜위치 갤러리 Dulwich Picture Gallery가 소장한 이 작품은 무려 4번이나 도난 당했지만, 매번 무사히 되돌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1966년 9점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사라졌다가 나중에 한 광장에 놓여 있던 가방에서 발견됐고 1973년, 1981년, 1983년에도 도난 당했다가 무사히 되찾았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이처럼 행운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12년 10월 네덜란드 로테르담 소재 쿤스트할 미술관 Kunsthal Museum 도난 사건은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평가받을 만한다. 범인들은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의 ‘광대의 초상 Harlequin Head (1971년작)’,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의 ‘희고 노란 옷을 입은 책 읽는 소녀 Reading Girl in White and Yellow(1919년)’, 폴 고갱 Paul Gauguin의 ‘열린 창문 앞의 소녀 Girl in Front of Open Window(1898년)’,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의 ‘워털루 다리, 런던 Waterloo Bridge, London (1901년)’과 ‘채링크로스 다리,런던 Charing Cross Bridge,London(1901년)’, 마이어 드 한 Meijer Isaac de Hann 의 ‘자화상 Self-Portrait(1890년)’, 루시언 프로이드 Lucian Freud의 ‘눈감은 여자 Woman with Eyes Closed(2002년)’를 훔쳐 달아났다. 침입부터 도주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작품들의 가치는 최소 1억 유로로 추산됐다.
약 3개월 뒤인 2013년 1월 말, 네덜란드 경찰이 루마니아인 라두 도가루 Radu Dogaru를 포함해 3명을 체포하면서 사건은 쉽게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도가루가 “어머니가 사는 시골집에 숨겨놨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고 정작 주범은 따로 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 누군지는 모른다” 등으로 증언을 계속 바꾸는 바람에 네덜란드와 루마니아의 경찰 및 검찰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기에 도가루의 어머니까지 “아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내가 난로에 넣고 태워버렸다” “동생 집에 숨겼다”며 증언을 계속 바꾸더니, 최근에는 “솔직히 미술품을 태우지는 않았는데 러시아어를 쓰는 40대 남자가 집에 와서 가져갔다”고 또다시 증언을 번복했다. 도가루 측 변호사는 “어머니에게 미술품을 태웠다면 아들이 더 불리해진다고 했더니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문제는 난로 안에서 수거한 재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미술품을 불태운 흔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루마니아 과학범죄수사단과 국립역사박물관 실험실 측은 재에서 전문 화가들이 사용하는 노란색, 푸른색 등의 페인트 물감, 캔버스 천을 틀에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구리 및 쇠못, 캔버스 틀의 나무 잔해 등을 발견했다. 어떤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화가 소각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특히 구리 및 쇠못은 20세기 이전의 대장장이가 만든 수제품으로 추정됐다. 시기상으로는 고갱과 마이어 데 한의 작품이 해당될 수 있다. 모네의 작품 2점은 파스텔화이고 피카소 작품은 드로잉인데, 재에서 파스텔과 종이성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18년 또 한번의 극적인 반전을 맞이 한다.11월 18일 로이터통신 등은 익명의 제보를 받은 네덜란드 시민 2명이 하루 전날 루마니아 남동부 지역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피카소 작품 ‘광대의 초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발견해 네덜란드 대사관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그림이 진품이라면 나머지 작품들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곧 코미디로 바뀌었다. 루마니아 검찰은 ‘광대의 초상’이 벨기에의 한 극단에서 만든 가짜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작품들은 정말 불에 타 재가 되고 만 것일까. 미스터리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