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미셸 파이퍼-나의 영원한 수지

bluefox61 2006. 6. 26. 23:58

로잔나 아퀘트 감독의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한마디로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영화입니다. 

어느덧 마흔고개를 넘어선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인 아퀘트가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은퇴선언조차 없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선배 배우 데브라 윙거(‘사관과 신사블랙위도우’)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요. 

그렇다고해서 윙거의 뒤를 좇는 스릴러 형식은 아닙니다. 아퀘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수많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여성이자 배우로서 겪는 불안감과 좌절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상하게도(?) 미셸 파이퍼(49)를 떠올렸습니다. 

약 5년전에 출연한 ‘아이 엠 샘 (2001)’이후 그녀를 스크린에서 언제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이퍼가 은퇴를 한 것은 아닙니다. 팬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2007년 개봉될 판타지물 ‘스타더스트’ 등 그의 출연스케줄은 지금도 빽빽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많은 영화에 얼굴을 내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상적인 캐릭터와 연기를 팬들에게 보여주느냐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들이 침이 마르게 격찬했던 영화 ‘아이 엠 샘’이 저는 너무 못마땅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딸에 대한 부성애야 물론 감동적이었지요. 하지만 다코타 패닝의 지나치게 어른스러웠던 연기가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데다가, 반항기 넘치는 반골배우 숀 펜의 착한 아버지 연기와 섹시함과 순수의 양날을 가진 미셸 파이퍼의 변호사 캐릭터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아이들’의 선생님과 ‘어느 멋진 날’의 직장인 엄마에 이어, 착한 아버지를 돕는 착한 변호사라니요. 차라리 ,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원초적 본능2’에서 여전히 얼음송곳으로 뭇남성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노출연기를 마다않는 샤론 스톤의 용기와 무모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어쨋거나, 미셸 파이퍼는 한때 여자인 저에게까지도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80년대∼90년대 초반 제 주변의 남자들을 딱 둘로 나누라면, 킴 베이싱어 파와 미셸 파이퍼파로 구분될겁니다. 베이싱거가 웬지 풀어질대로 풀어진 섹시함  그자체였다먼, 파이퍼의 매력은 그것보다 훨씬더 복잡한 것이었지요.

‘그리스2(1982)’와 ‘스카페이스(1983)’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레이디 호크’(1985)를 거쳐, ‘붙타는 태양(1988)’과‘위험한 관계(1988)’에 이어 ‘사랑의 행로(1989)’로 할리우드 정상에 오르게 되지요 . 특히 ‘사랑의 행로’에서 옆선이 깊게 찢어진 붉은 드레스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에 비스듬히 누워 허스키 보이스로 유혹적인 노래를 부르던 ‘수지’의 그 모습! ‘위험한 관계’의 순수한 투르벨 부인이나 , ‘배트맨2(1992)’의 캣우먼같은 정반대의 캐릭터로 변신할 수있다는 점이 배우로서 파이퍼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있을 겁니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파이퍼의 필모그래피는 나이탓인지 과거에 비해 어쩔수없이 다소 평범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오십이 돼도 여전히 아름다울 파이퍼를 상상해보며 그의 새 영화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