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쿨 가이, 조지 클루니

bluefox61 2006. 6. 5. 20:42

미국 영화계에서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로버트 레드포드, <용서받지 못할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레즈>의 워렌 비티 등이 대표적인 감독 및 제작자 겸업 배우들. 비록 아카데미 상은 받지 못했지만 조디 포스터, 드류 배리모어 등도 할리우드의 파워 여성들로 꼽힌다.

그러나 조지 클루니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세계 영화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스타배우로서 그의 독특한 행보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오락물이 사실상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클루니는 진보적인 정치메시지 영화의 부활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할리우드의 진보주의자, 즉 80년대 초반 <레즈>를 만들었던 워렌 비티, 그리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를 제작하는 등 인디영화의 대부로 존경받고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정신적인 계승자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 5,6년간 클루니의 활동을 눈여겨보면 금방 수긍된다. 지난 1998년 <표적>을 인연으로 서로 배짱이 맞은 스티븐 소더버그감독과 '섹션 8'란 영화사를 만든 그는 마약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문제작 <트래픽>을 비롯해 <인섬니아>, <파 프롬 헤븐>, <웰컴 투 콜린우드>, <솔라리스> 등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잇달아 제작했다. 그런가하면 <오션스 일레븐> 같은 오락영화들도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자신도 2002년 <컨페션 오브 데인저러스 마인드>로 감독 데뷔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클루니의 두번째 연출작인 <굿 나잇, 앤 굿 럭>은 미국 언론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CBS의 에드워드 머로 기자와 매카시광풍을 몰고왔던 매카시 상원의원 간의 충돌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과 이데올로기의 강박증을 고발하고 있다. 지금 이 때, 왜 클루니가 50여년 전의 매카시와 머로를 다시 이 세상에 불러냈는가란 의문을 든다면, 부시 행정부 하에서 테러리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사회를 떠돌리면 바로 해답이 나온다.

더구나 <굿 나잇, 앤 굿 럭>은 8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흑백영화다. 클루니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연출료와 시나리오 집필료는 물론 조연 출연료까지 전액 반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미국 저널리즘에 실망했다. 기자들은 권력자들에게 좀더 호된 질문을 퍼부어야한다"고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트래픽>의 시나리오를 쓴 스티븐 게이건의 감독 데뷔작인 <시리아나>도 보기 드물게 정치적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이다. 여기서 클루니는 중동 석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음모와 탐욕 한가운데 뛰어든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 역을 맡아 체중을 불리면서까지 열연했다. 클루니는 <트래픽>으로 인연을 맺은 게이건의 시나리오를 읽어본 후 홀딱 반했고, '섹션 8'이 직접 만들 여력이 없다고 판단되자 메이저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를 직접 설득해 제작 결정을 얻어냈다.

클루니가 1990년 중반 TV드라마 로 인기를 얻었을 당시만 해도 그는 그저 잘생기고 섹시한 배우였다. 다정다감하고 약간은 느믈거리는 드라마 속 이미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가져온 로맨틱 코미디 <어느 멋진날>을 거쳐 <표적>, <배트맨과 로빈>, <피스메이커>, <퍼펙트 스톰> 등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느 성공한 할리우드 배우들과 같은 길을 걷는 듯했다.

이 배우의 취향이 범상치않음을 드러낸 것은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쓰리 킹스>와 코언 형제감독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서부터였다. <쓰리 킹즈>에서 그는 1차 이라크 전쟁(걸프전) 중 전쟁 대신 후세인이 숨긴 금괴를 찾아나선 시니컬한 미군으로 등장했고,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에서는 잘 생긴 외모를 죄수복에 숨긴 구질구질한 탈옥수로 변신했다.

클루니의 특별함은 어쩌면 블록버스터와 인디영화를 종횡무진 오가는 자유주의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한 편당 천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으면서도 할리우드에서 비주류의 감성을 잃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전성기를 요즘 누리고 있는 듯하다. 클라크 게이블 이후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로 무수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됐으면서도 (아직까지는) 추문에 휘말린 적이 없고, 사업가와 자선활동가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아카데미 후보작이 발표된 다음날, 조지 클루니는 프랑스 커피광고와 이탈리아의 한 기업 CF를 찍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그는 "아카데미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기분이 어떤가?"란 미국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1년 동안 내 영화로는 돈을 별로 벌지 못했었는데, 요 며칠 동안 CF로 수입 좀 올렸다." 이 남자, 정말 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