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팔레스타인 유엔 국가인준 가능할까

bluefox61 2011. 9. 15. 14:14
내주부터 본격화되는 제66차회 유엔 총회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번 유엔총회에서 국가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자치정부는 지난 8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66회 유엔 총회에 194번째 독립국가 회원국 승인을 신청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팔레스타인 국가인준을 둘러싸고 지금 국제사회는 둘로 갈라져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랍국가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 중 3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이 국가승인 신청서를 제출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표명했고, 이슬람권의 맹주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터키와 신흥경제대국 브라질도 찬성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허용할 수없다는 입장이다. `중동의 화약고'로 불려온 팔레스타인의 유엔 인준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알아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왜 유엔 인준을 추진하나.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1차 중동전쟁) 이후 국가없는 민족으로 60여년동안 고통을 겪고 있다.팔레스타인은 노르웨이와 미국이 적극 중재에 나섰던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1996년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헌법상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행정수도는 라말라이다. 현재 자치정부 수반은 파타당 소속의 마무드 압바스이다. 그러나 자치정부는 글자 그대로 '부분적인 자치'에 머물 뿐 '주권과 군대를 지닌 독립국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엔 인준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20여년동안 진행돼온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진척이 없으며 ,특히 지난해부터는 모든 협상이 중단돼 더이상 기대할 수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엔에서 국가인준이라는 정면돌파만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란게 자치정부의 주장이다. 팔레스타인은 10여년전에도 독립국가 선포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오는 2000년 9월 13일을 데드라인으로 삼아 건국을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아라파트는 시한을 그대로 넘겼고, 2004년 사망하면서 독립국의 꿈은 멀어지게 됐다. 현 자치정부는 유엔에서 `비회원 국가'로만 인정받아도, 종전과는 다른 막대한 권한을 누릴 수있다는 계산을 한 듯하다.  물론, 유엔 인준이란 강력한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과거보다 유리한 협상고지를 취하려는 포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주장하는 1967년 이전 국경선은 무엇인가.

자치정부는 67년 3차 중동전쟁 발발 이전의 이스라엘과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유엔의 국가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해 이집트, 시리아 , 요르단 공군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를 `3차 중동전쟁'또는 `6일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들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응징하고 자국민들을 테러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쟁 명분이었다. 이스라엘은 개전 6일만에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집트로부터는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 시리아로부터는 골란고원을 빼앗았다. 이후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어 시나이반도를 돌려줬지만, 나머지 지역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67년 전쟁 이전 국경선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이들 지역을 포기하라는 메시지이다.
 
사실 67년 이전 국경선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방안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신중동정책 관련 연설에서 "1967년 이전으로 국경을 설정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평화를 위해 너그럽게 양보할 준비가 돼있지만 1967년 이전 경계로 결단코 돌아갈 수는 없다"면서 발끈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중동정책을 발표한지 닷새뒤인 5월 24일 미국 상하원은 네타냐후 총리를 초청, 약 45분간에 걸쳐`67년 이전 국경선' 등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그를 위해 29번이나 일어나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의원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 사실상 일어서서 연설을 듣는 듯했다"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팔레스타인 국가인준 찬성국은 얼마나 되나.

자치정부 측은 최근 수개월간 적극적인 외교 노력 결과 140개국이 찬성입장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193개국 중 3분의 2의 찬성표를 얻으면 `비회원 국가'로서 인준을 받을 수있다. 
독립국가로서 정식 유엔 회원국이 되려면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 중 상임이사회 5개국 만장일치를 포함해 최소 9개국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자치정부는 20일이나 21일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결의안 형식의 인준안을 제출해 안보리가 아닌 총회에서 직접 인준을 받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국가들 중 팔레스타인 인준에 적극적인 국가는 프랑스이다. 지난 2010년부터 팔레스타인 국가인준 가능성을 거론해온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8월 31일 해외주재 프랑스대사연례총회에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엔 독립국가승인 문제에 있어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아랍의 봄으로 중동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팔레스타인 국가인준안이 안보리에 상정될 경우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영국 입장은 애매모호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영국이 기권표를 던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직접 팔레스타인에 대해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다수의 국가들이 찬성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6일 백악관은 "팔레스타인 독립국 승인안 제출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에게 생산적이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승인안 제출을 취소하도록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은 유엔이 아니라 평화협상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지역 갈등만 더 악화될 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 속내에는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있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미국은 `아랍의 봄' 으로 친미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가뜩이나 중동지역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인준을 받으면 대중동 정책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중동권의 반미정서가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해 오바마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유엔의 독립국 인준은 어떻게 이뤄지나

유엔에서 독립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국이 사무총장에게 인준안을 제출해야한다. 사무총장은 인준안을 안전보장이사회에 이송하게 된다. 안전보장이사회 15개 국가들은 이를 심사해 표결에 부치는데, 15개국가 중 최소 9개국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인준안이 통과될 수있다. 
단 미국,영국, 프랑스,러시아, 중국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거부권(비토권)을 행사하면 모든 과정은 무효화된다. 인준안이 통과되면, 유엔총회에 부쳐져 전체회원국의 3분의 2이상 찬성표를 얻어 하나의 당당한 독립국가로서 회원국의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총회의 승인은 사실상 요식행위와 다름없으며, 국가인준의 모든 권한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갖고 있다.
 
현재 유엔 회원국은 총 193개국이다. 따라서 총회에서 국가인준안이 통과되기 위한 마지노선은 129개국인 셈이다. 막내 회원국은 북부의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이다. 지난 1월 분리독립을 국민투표로 확정하고 7월 9일 신생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선포한 남수단은 불과 일주일만인 7월 14일 유엔 안보리와 총회의 승인을 받아 193번째 회원국이 됐다. 
국가인준안이 안보리와 총회의 승인을 받는데 통상적으로 이르면 한달, 늦어지면 수개월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됐던 것. 남수단 이전에 유엔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입한 국가는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한 몬테네그로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국가 인준의 사실상 전권을 가지고 있는만큼, 이들 국가들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국가는 인준안의 유엔통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경우가 코소보이다. 발칸반도의 마지막 분쟁지역인 코소보는 지난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코소보는 아직도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한 상태이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코소보의 독립과 유엔가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체첸공화국 등을 강력하게 막고 있는데다가 세르비아와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코소보가 유엔에 인준안을 제출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노리고 있는 것은 총회 승인이다. BBC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자치정부는 정식의 국가인준안이 아니라 `결의안'형태의 안건을 총회에 직접 제출할 듯하다. 통상적으로 결의안은 2주내에 표결에 부치도록 돼있다. 안보리와 달리 총회는 모든 회원국들이 동등한 1표의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최소 140개국이 찬성표를 던져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회원국으로서 완전한 권리를 누리기는 힘들다.이런 국가를 표결권없는 `비회원 국가(non-member state)'로 부른다. 유엔 역사상 `비회원 국가'는 스위스와 바티칸 2개국 뿐이다. 엄격한 중립주의를 지켜온 스위스는 1948년부터 2002년까지 `비회원 국가'였다가 2002년 9월에야 정식 회원국이 됐고, 바티칸은 현재까지도 같은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비회원 국가'가 되면 유엔 총회 연설권, 유엔 산하 단체활동, 국제사법재판소(IJC) 및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권, 비록 투표권은 없지만 각종 결의안에 서명할 권리 등을 누릴 수있다.` 비국가 옵저버(non-state observer)'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권리가 대폭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비국가 옵저버'에는 유럽연합(EU)과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해 각종 조직체(entity)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조직체'로서 `비국가 옵저버'에 머물러야했던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노리는 것은 바로 `비회원 국가'로서 유엔 내에서 확고부동한 발언권을 얻는데 있다. 이를 통해 유엔의 각종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여론을 조성하고, 나아가 IJC나 ICC에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건설 등 각종 `범죄'를 제소하겠다는게 팔레스타인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