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유럽 분노의 세대...

bluefox61 2011. 6. 10. 14:39
재정위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에서 이른바 `분노의 청년세대'가 형성되고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부터 스페인 마드리드, 프랑스 파리, 그리스 아테네 등 유럽 각국에서 실업난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광장을 점거하고 경제와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68학생혁명' 이후 유럽 젊은이들이 이번처럼 조직적으로 행동하기는 처음이란 점에서 각국 정부는 물론 언론들은 주시하고 있다. 독일 슈피겔지는 지난 7일자 기사에서 "유럽의 잃어버린 세대가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분석했다. 과연 이들이 `아랍민주화'처럼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있을 것인지, 아니면 일회성 행동으로 끝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페인판 타흐리르 광장, 푸에르타 델 솔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은 `스페인판 타흐리르 광장'이 된 지 오래다. 지난 5월 15일 광장에 수백명이 텐트를 치고 정부의 경제개혁과 보수적인 정치구조 타파를 외치기 시작한 이래 매일 시위 참가자가 늘어났고, 10일 현재까지 텐트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한때 3만명까지 늘어났던 시위참가자가 지금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젊은이들은 매일 저녁 `총회'를 통해 아젠다를 모으고 시위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직접 표결로 결정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8일 의회 앞 도로까지 진출해, 혹독한 긴축재정으로 국민들의 허리띠를 무작정 졸라대는 정부와 의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엘문도, 엘 파이스 등 언론들이 시위 참가자들을 부르는 명칭은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 선진 산업국 최악의 실업률로 인해 미래를 기약할조차 없게 된 젊은이들이 자신의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표현이다.
이들은 이미 정치적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지난 5월 22일 지방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에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혹독한 긴축재정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정부를 긴장하게 만든 것. 8일 의회 시위에 참가한 한 젊은이는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고용주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그들은 (고용시장)유연성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고용주의 의무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며 비판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점거시위는 일단 12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난 8일 총회에서 참가자들이 격론끝에 표결을 한 결과, 시위를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일단 광장 점거시위를 끝내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주 이곳에서 집회를 이어나가기로 결정해, 청년 시위의 중심지로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의 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리스본부터 아테네까지 = 유럽 청년시위가 맨처음 일어난 곳은 구제금융을 받은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지난 3월 12일 약 20만명의 젊은이들이 `자유로'를 행진하면서, 경제파탄을 초래한 집권 사회당과 기득권 세력을 성토했다. 

포르투갈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1974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규모였다. 코임브라대 학생들이 트위터, 페이스북등을 통해 "쓰레기 취급 당하고 있는 세대여 일어나라"라고 촉구하자, 동병상련격의 젊은이들이 열화같이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유럽언론들은 일제히 " 아랍 민주화 시위가 드디어 유럽에 상륙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이날 이후 수도 리스본을 비롯해 주요도시에서 젊은이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지난 5일 총선에서 조세 소크라트스 정부가 패배하고 중도우파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
리스본에 시작된 시위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쳐 프랑스 파리와 그리스 아테네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인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이달 초부터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슈피겔지는 시위 참가자들이 토론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는 등 현장이 마치 교실 분위기를 연상케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프랑스 주요도시를 휩쓸었던 청년폭동 때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 

이들 중 일부는 바스티유 오페라 입구까지 점거하면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액션'이란 단체 소속원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22세 대학생 쥘리앙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문제란 소리만 들어왔다"면서 "하지만 이제 시스템에 저항하는 범유럽 운동을 형성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신타그마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텐트를 친채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유럽 청년시위와 아랍 민주화 시위= 유럽 시위와 아랍 시위의 공통점은 교육수준이 높으면서도 실업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중앙 조직없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시위가 시작됐고, 단순히 경제난 해결 차원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랍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했듯이, 스페인과 프랑스 등의 시위참가자들도 `진정한 민주주의, 바로 지금'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민주주의가 정착돼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시위는 중동,북아프리카 시위보다 목표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많다. 스페인, 포르투갈 시위 경우 집권당에게 선거패배를 안겨주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보다 시장친화적인 중도우파 정부를 출범시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사회학자 라파엘 디아스 살라자르는 지난 6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 청년시위는 이미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서 "스페인 경우 이들이 약 200만명의 유권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빈곤세대의 문제점이 사회 이슈화됨으로써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택 및 고용조건 등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성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번 달 말쯤에는 각국 시위 핵심세력들이 `범유럽 분노의 날'을 선포하고 동시다발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어서 치안당국이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럽의 `분노하는 청년세대'는 과연 누구일까. 그들이 직면한 경제현실은 얼마나 암울한 것일까. 
지난 8일 스페인 마드리드 의회 앞 도로점거 시위 때 젊은이들은 일제히 열쇄꾸러미를 흔들어댔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부모님 집 열쇄"였다. 한마디로 "나는 아직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경제난으로 30대 초중반 젊은이들 중 절반이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서 살면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1∼3월) 스페인 실업률은 21.29%. 선진 산업국들 중 최고치이다. 문제는 20∼24세층의 실업률이 무려 4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초중반 젊은이두명 중 한명은 실직자란 이야기이다. 취업을 해도 임시직에 그치거나, 적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페인 청년실직자들을 지난 10여년에 걸친 팽창경제 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건설분야 등에 쉽게 취업했다가 일자리를 잃어버린 낮은 교육계층과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후에도 취업하지 못한 고학력층이 나눈다. 고학력자가 취직을 해도 6개월 임시직이 대부분이다.

`진짜 민주주의, 바로 지금'이란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26세 변호사 리디아 포사다 가르시아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자질을 갖춘 세대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할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노(No) 직장, 노 주택, 노 연금, 노 두려움"이다. 지난 3년간 취업에 실패한 루스 마르티네스는 "이 나라를 바꾸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면서 시위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상황은 포르투갈도 비슷하다. 최근 유럽연합(EU)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포르투갈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에서 네번째로 가난한 국가이다. 실업률은 12.6%. 25세 이하 실업률은 27%이며, 취업자 절반 이상이 임시직이다.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은 25세 카르발료는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 석사학위가 있어도 임시직 밖에는 일자리가 없다"면서 " 아프리카로나 가야만 취직할 수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역시 청년층 실업률이 약 20%를 기록하고 있다. 
슈피겔지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분노하는 청년세대'는 2차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부모보다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88만원세대,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와 비슷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결국 시위사태를 촉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라고 슈피겔지는 지적했다.


<청년세대를 가르키는 신조어들>
 

경제난 속에서 일자리가 없거나 일을 해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년세대들을 가르키는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럽에서 청년세대를 가르키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분노의 세대'이다. 스페인 언론들은 수개월째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며 경제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청년시위자들에게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란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 이 용어는 스페인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청년 시위자들을 가르키는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분노의 세대'는 지난해말 프랑스에서 발간돼 유럽전역에서 큰 인기를 끈 스테판 에셀의 저서 `분노하라(Indignez vous!)'란 저서에서 따온 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93세 할아버지가 쓴 불과 30여쪽의 이 책은 그리스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로 침체와 좌절에 빠진 유럽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는 책에서 "분노할만한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일부가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경제위기의 책임을 힘없는 일반시민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고, 돈과 시장의 무례한 힘에 맞서 싸워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자는 그의 호소는 많은 유럽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실제 마드리드 광장시위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에셀의 책을 돌려읽으며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있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가디언지 등은 `분노한 세대'는 거리로 뛰쳐나와 분노를 표출하고 사회개혁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잃어버린 세대'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에서는 미래가 암울한 청년세대를 `592유로( 91만2367원)세대'로 표현한다. 지난해말부터 최근까지 그리스의 한 TV방송사를 통해 방영됐던 시트콤의 제목이다. 592유로는 25세 이하 근로자에 대한 법정최저 한달임금이다.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셈이다.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힘든 생활을 코믹한 시선으로 그린 이 시트콤은 14∼24세층 시청자들 사이에서 무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재미있는 것은 시트콤 제작진이 원래는 `700유로 세대'`라는 제목으로 시트콤을 방송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법정최저임금이 700유로였지만, 같은해 9월 정부가 최저임금기준을 낮춰 592유로로 정하는 바람에 제목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불안정(Insecure)'하고 `압력을 받으며(Pressed)' `과중한 세금부담(Overtaxed)'에 시달리고 `빚에 쪼들리는(Debt-ridden)'는 청년세대를 가르켜 `아이팟(IPOD)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고도경제난때문에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은 `부메랑 키즈'로 부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기불황으로 인해 경제성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를 `잃어버린세대'로 칭하며,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청년들을 `후리타 세대'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