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여행

통독 20년, 현장을 가다(하)

bluefox61 2010. 9. 20. 14:45

 

독일 베를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를 타고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튀링거바르테. 행정구역상으로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이곳은 1990년 통일 전까지만 해도 서독쪽에서 국경선 너머 동독 튀링겐주 쪽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산 정상부분에 세워진 약 26m 높이의 전망탑에는 그리운 고향 땅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려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울창한 숲 한가운데를 동서로 가르며 지나는 국경선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철조망의 동쪽 군사지역은 동독 군인들이 시야 확보를 위해 나무를 몽땅 베어내고 지뢰 등을 매설한 ‘불모의 땅’이었다. 

 

 


▲ 독일 바이에른주 튀링거바르테의 전망탑에서 지난 16일 바라본 옛 동서독 국경지대의 모습.
가운데 옅은 녹색의 띠가 철조망이 설치돼 있던 국경선이다. 녹색 띠의 오른쪽이 옛 동독,
왼쪽이 옛 서독 지역이다.

 

 

지난 16일 튀링거바르테의 전망탑에 올라 바라본 옛 국경선은 2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살벌했던 군사분계선 대신 옅은 녹색의 띠가 놓여있다. 동서독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자연은 갈라졌던 땅을 지난 20년동안 말없이 치유하고 하나로 연결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의 친구들 독일지부(BUND)’의 리아나 가이데지스(생물학자·중부유럽 그린벨트 프로젝트 매니저) 박사는 “통일독일의 푸른 심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옛 동서독 군사분계선은 한국의 38선이나 비무장지대(DMZ)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선 폭이 약 50~200m로, 한국의 DMZ보다 훨씬 좁다. 특히 서쪽에서는 민간인 접근이 비교적 용이했던데 비해 동쪽에서는 서독으로의 탈출을 꾀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24시간 동독 군인들의 철통경비가 이뤄졌다. 나무는 물론이고 제초제를 뿌려 잡풀조차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지뢰를 비롯해 온갖 군사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지난날 ‘죽음의 벨트(Death Belt)’로 불렸던 독일내 동서 국경선 1393㎞는 이제 ‘생명의 벨트(Life Belt)’로 바뀌고 있다. BUND 등 환경운동단체들과 연방정부의 노력 덕분이다. 특히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직후 작센주(구동독), 체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이에른주(구서독)의 도시 호프에서 열린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의 회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분단이후 사상처음으로 얼싸안으며 감격을 나눈 400여명의 환경운동가들은 국경지역의 환경을 어떻게 복원, 보존할 것인가를 첫 과제로 삼았다. 군사분계선 지역은 심각하게 훼손된 반면, 주변 숲은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되면서 온갖 희귀동식물의 천국이 됐기 때문이다. 

 

 

분단시절 국경지역에 매설된 지뢰만도 약 150만개에 이르렀지만 환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연방정부의 협조 덕분에 전체 국경지역의 약 28%가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됐고, 약 38%가 특별보호지역으로 추진 중이다. 국경지역의 47%는 연방정부, 약 30%는 개인, 18% 지방정부, 약 5%는 BUND 등 NGO들이 소유하고 있다. 개인소유지는 지난 1996년 서독정부가 제정한 ‘국경토지법’을 근거로 통일후 옛 소유주들이 되찾은 것이다. 

 

한국의 DMZ 자연보호와 관련해 여러 번 내한한 적이 있는 가이데지스 박사는 “프로젝트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차 정부의 인식이 넓어지고 대중도 공감하면서 현재는 기대보다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면서 “우리의 경험이 언젠가 통일 한국의 것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서독 국경선이 ‘그린벨트’로 변모한 데는 BUND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제환경운동단체 ‘지구의 친구들’의 독일지부인 BUND는 연방정부 소유의 국경지역을 사들여 자연보호구역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재원은 각종 기부금으로 마련한다.
BUND는 독일뿐만 아니라 위로는 북유럽부터 아래로는 발칸반도 지역까지 약 8500㎞에 걸쳐 그린벨트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동시에 펼치고 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옛 소련연방에 속했던 국가들의 국경선이 여기에 포함된다. ‘죽음의 철의 장막’을 ‘녹색의 생명 벨트’로 바꾸는 것이 BUND 등 유럽 환경운동가들의 목표다. 

 

 

BUND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물학자 스테판 바이어(사진 오른쪽) 박사는 지난 17일 “구 동독군인들이 24시간 순찰했던 군사지역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면서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초제 때문에 풀 한 포기 없던 곳에 이제는 염소 등 초식동물들이 좋아하는 풀들이 빼곡히 자라났다는 것. “일부 구간에는 다량의 지뢰가 매설됐으나 이제는 대부분 철거된 상태”란 말도 덧붙였다. 

 

BUND는 옛 국경지역의 자연을 단순히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녹색관광’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독일 및 중부유럽의 ‘그린벨트’를 따라 하이킹 코스를 개발함으로써 민간인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이에른 북쪽과 튀링겐 남쪽지역에 펼쳐진 드넓은 산림지역인 프랑켄발트투어리즘 서비스센터의 마르쿠스 프란츠(왼쪽)는 “곳곳에 오디오가이드 시설을 설치해 하이커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그린벨트의 역사와 자연에 대해 들으면서 걸을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독일 동베를린 출신인 엔지니어 발터 브로커만(53)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당시의 감동과 희열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7일 베를린 거리에서 만난 그는 통일로 달라진 삶을 “태양과 달이 다른 만큼이나 엄청난 차이”로 표현했다. 하지만 “내적통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점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라이프치히대와 드레스덴공대의 연구진이 장기간(1987~2009년)에 걸쳐 연구해 최근 발표한 구동독 주민의식변화 보고서의 결론도 브로커만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구동독인은 통일 자체에 대해선 강한 지지 의사를 나타내면서도 임금, 일자리, 사회보장, 교육 등 실제 현실생활과 관련해서는 20년전 통일 당시보다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첫 조사가 실시된 1987년 당시 14세 전후였던 남녀 조사대상자가 2009년 현재 36세 전후의 나이가 되기까지 어떤 의식변화를 겪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동독체제 하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나’란 질문의 경우, 1987년에는 ‘절대적으로 확신’이란 응답이 무려 77%, ‘확신’은 20% 였던데 비해 2009년에는 ‘절대적으로 확신’이 4%, ‘확신’은 16%로 뚝 떨어졌다.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란 질문에 대해선 1990년 당시 ‘크게 찬성한다’가 39%, ‘찬성한다’가 35%였다. 2009년에는 각각 41%, 49%로 늘었다. 그러나 ‘동서독이 경제적으로 언제쯤 완전히 통합될 것으로 예상하나’란 질문에 1990년에는 응답자 대다수가 ‘1996년’으로 전망한 반면, 2009년에는 ‘2024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두 대학 연구진은 구 서독인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전국적인 통일 의식조사(조사시점 2009년)도 최근 발표했다. 총 2512명(서독 76.7%, 동독 28.2%)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14~24세 연령층의 통일에 대한 지지도는 구 동독의 경우 64%, 서독은 49%였다.
44~54세 연령층의 경우 구동독은 41.9% 서독은 39.8%, 75~94세 연령층은 47.6%와 46.2%를 각각 기록했다. 즉, 구 서독 출신 중년층의 통일지지도가 가장 낮게 나타난 것이다. 이 조사에서는 통합달성 기간을 묻는 항목에 대해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응답이 구동독 주민 중 33.3%, 서독주민 중 27.2%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이브 스토벨 리히터(라이프치히대), 헨드릭 베르트(드레스덴공대) 박사는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지지의식은 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 동독주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통일 직후 가졌던 높은 기대감과 환상으로부터 깨어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

<뉴스와 시각>독일 배우기

문화일보입력 2013-03-27 13:58
 
오애리/국제부 선임기자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를 타고 5시간쯤 달리면, 바이에른주의 튀링거바르테란 곳에 다다른다. 1990년 통일 전까지만 해도 서독 쪽에서 분단선 너머 동독 튀링겐주 쪽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였다. 이곳 산 정상에는 약 26m 높이의 전망탑이 있다. 분단 시절 실향민들은 그 곳에 올라 멀리서나마 그리운 동쪽 고향땅을 바라보곤 했다.

독일 통일 2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10년, 튀링거바르테의 전망탑에서 울창하게 검푸른 숲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연녹색 띠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울컥해졌다. 지뢰와 철조망 투성이였던 군사분계선이 사라진 지 20년, 한때는 죽음의 땅이었던 그곳에 새로 돋아난 풀과 어린 나무들이 여리디여린 연녹색의 띠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말없이 독일땅을 치유하고 있었다. 안내자였던 ‘지구의 친구들’ 관계자가 숲을 가리키면서 “통일 독일의 푸른 심장”이라고 말했을 때, 전망탑 꼭대기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 탓이었는지 아니면 부러움으로 속이 쓰렸던 탓인지 슬쩍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독일은 한국 사람들에겐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라다. 분단과 통일의 역사, 전후 경제성장 과정의 공통점 때문이기도 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돼 외화벌이를 했던 인연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특별하게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 들어 정치권에서 독일 배우기 바람이 한창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통일 분야에 집중됐던 관심이 최근엔 경제정책, 환경, 정치시스템, 사회통합 등 다양해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면서, 일찌감치 중소기업 경제를 튼튼하게 구축한 독일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야권인사들이 최근 잇달아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여권 일각에서도 독일식 성장복지 모델을 공부하는 중이라고 한다.

독일 정치·경제 모델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의 영향이 크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그렇다. 요즘은 독일 경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이 경제난으로 아우성치고 있는 것과 달리 비교적 건실한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독일의 저력’을 새삼 절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스페인, 키프로스 국민들로부터 ‘히틀러 메르켈’이란 악담까지 들어가면서도, 방만한 국가운영으로 파산 지경이 된 유로존 회원국들을 상대로 ‘개혁없이 지원없다’는 원칙을 지켜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독일이 경제력을 내세워 유럽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든지, 유럽의 통합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물론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변화하는 노력을 보이라는 독일을 대놓고 비난할 수 있는 유로존 국가는 사실상 없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국내의 한 독일통 언론학자는 “많은 선진 모델들이 연구 대상이 됐지만 독일의 성장·복지·정치·통합 모델이 한국에 가장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유학길에 떠난 정치인들이 어떤 배움을 가지고 귀국할지는 모르겠다. 흔히들 고집불통과 완고함을 독일 민족의 특성으로 꼽지만 단기성과에 매달리지 않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자세와 합리주의야말로 독일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부디 그런 장점까지 배워 오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