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칼럼/독일배우기

bluefox61 2013. 3. 27. 16:39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를 타고 5시간쯤 달리면, 바이에른주의 튀링거바르테란 곳에 다다른다. 1990년 통일 전까지만해도 서독 쪽에서 분단선 너머 동독 튀링겐주 쪽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있는 장소였다. 이 곳 산 정상에는 약 26m 높이의 전망탑이 있다. 분단 시절 실향민들은 그 곳에 올라 멀리서나마 그리운 동쪽 고향땅을 바라보곤 했다.
 독일 통일 2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10년, 튀링거바르테의 전망탑에서 울창하게 검푸른 숲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연녹색 띠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울컥해졌다. 지뢰와 철조망 투성이었던 군사분계선이 사라진지 20년, 한때는 죽음의 땅이었던 그 곳에 새로 돋아난 풀과 어린 나무들이 여리디여린 연녹색의 띠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말없이 독일땅을 치유하고 있었다. 안내자였던 '지구의 친구들' 관계자가 숲을 가르키면서 "통일 독일의 푸른 심장"이라고 말했을 때, 전망탑 꼭대기에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 탓이었는지 아니면 부러움으로 속이 쓰렸던 탓인지 슬쩍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독일은 한국 사람들에겐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나라이다. 분단과 통일의 역사, 전후 경제성장 과정의 공통점 때문이기도 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돼 외화벌이를 했던 인연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특별하게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들어 정치권에서 독일 배우기 바람이 한창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통일 분야에 집중됐던 관심이 최근엔 경제정책, 환경, 정치시스템, 사회통합 등 다양해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중소기업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면서, 일찌감치 중소기업 경제를 튼튼하게 구축한 독일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등 야권인사들이 최근 잇달아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여권 일각에서도 독일식 성장복지모델을 공부 중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정치권의 선진모델 배우기에는 유행의 흐름이 있는 것같다. 한때는 영국 의회민주주의 모델, 북유럽 노르딕 모델이 각광을 받더니 이번에는 독일 차례인 모양이다.

 독일 정치,경제모델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의 영향이 크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그렇다. 요즘은 독일 경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이 경제난으로 아우성치고 있는 것과 달리 비교적 건실한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독일의 저력'을 새삼 절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스페인, 키프로스 국민들로부터 '히틀러 메르켈'이란 악담까지 들어가면서도, 방만한 국가운영으로 파산 지경이 된 유로존 회원국들을 상대로 '개혁없이 지원없다'는 원칙을 지켜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독일이 경제력을 내세워 유럽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던지, 유럽의 통합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물론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변화하는 노력을 보이라는 독일을 대놓고 비난할 수있는 유로존 국가는 사실상 없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국내의 한 독일통 언론학자는"많은 선진모델들이 연구대상이 됐지만 독일의 성장,복지, 정치, 통합 모델이 한국에 가장 잘 맞는 것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유학길에 떠난 정치인들이 어떤 배움을 가지고 귀국할지는 모르겠다. 흔히들 고집불통과 완고함을 독일 민족의 특성으로 꼽지만 단기성과에 매달리지 않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자세와 합리주의야말로 독일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부디 그런 장점까지 배워 오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