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2012년 러시아, 아르바트

bluefox61 2012. 7. 16. 16:54

아르바트의 거리에 아이들은 없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예술과 자유를 꿈꾸던 아르바트에는 관광객들과 그들을 호객하는 상인들이 넘쳐났다. 스몰렌스까야 역을 지나 아르바트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민주화와 개방경제체제가 시작되면서 들어섰다는 맥도날드햄버거의 엠(M)자 간판이다. 아랍 상인들의 장터 거리로 시작돼 2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폭 20m, 길이 약 2km의 이 거리에서 스타벅스와 던킨도넛의 익숙한 간판들을 바라보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지난 6일 아르바트를 찾았을 때, 이곳이 예술의 거리임을 느낄 수있는 것은 솔직히 푸슈킨이 잠시 살았다는 집과 동상, 소설 `아르바트의 아이들'의 작가 아나톨리 리바코프가 구부정한 자세로 어디론가 걸어가는 듯한 모습을 담은 동상, 그리고 연극 `안나 카레니나'의 포스터가 내걸린 공연장 뿐이었다. 

현지의 한 교포는 빅토르 최를 기리는 그 유명한 벽도 이제는 술과 마약에 취한 불량한 젊은이들이 널부러져 누워있는 곳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했다.그나마 빅토르 최의 흔적을 느낄 수있는 것은 벽에 그려진 작은 흑백 초상화와 그의 밴드 `키노(KINO)'라고 쓰여진 낙서뿐이다.뉴욕의 소호, 서울의 홍대앞처럼 아르바트 역시 이제는 돈없는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기엔 너무 비싼 땅이 되버린 듯했다.  




밤 11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7월, 모스크바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푸틴, 반정부 시위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개혁개방체제 20년,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과 총리로서 통치해온 지난 12년간 이뤄진 경제발전 덕분에 모스크바는 물론 러시아가 과거 어느때보다 풍요로워진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는 유럽경제 악화로 인한 수출둔화와 국제유가의 하락 때문에 `오일머니'가 예전만 못해졌다지만, 러시아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만큼은 피부로 확연히 느낄 수있었다. 더구나 논란 끝에 푸틴 3기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고, 최근 의회가 불법시위자들에게 벌금철퇴를 내리는 새로운 법을 통과한 후에는 반정부 시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하다고 현지인들은 말했다.그들에게 "지금 러시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일자리, 임금, 경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의 벽 앞의 젊은이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보다 근본적인 민주발전과 변화를 요구하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숙소 로비의 한구석에 놓여있는 영자신문 `모스크바 타임스'에는  러시아정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있는 `구원자예수그리스도 교회'에서 불경스럽게도 `펑크록 기도`를 올려 구속된 여성록밴드 `푸시라이어트(Pussy Riot)' 멤버들의 구속연장 논란을 보도하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마리아 알료키나 등 멤버 3명은 지난 2월 이 교회에서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기타를 치며 "마리아여, 우리를 제발 푸틴으로부터 구원하소서'란 노래를 불렀고, 이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동영상이 사회적 화제가 되면서 경찰이 이들의 신원을 추적해냈고, 3명은 결국 구속돼 오는  24일까지 유치장에 갇혀 조사를 받고 있다. 용감무쌍한 여성로커들은 재판에서 최대 7년형을 언도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사에 따르면, 시민들 사이에 이들의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러시아 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 장미빛 안경을 끼고 보자"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대학원생은 "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으며 긍정적인 면을 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뜻이기도 한 셈이다. 러시아 국민성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참을성'이다. 지금은 잠잠해진 듯한 변화의 바람이 언제 또다시 확 불타오를지 모를 일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금 북한의 새 리더 김정은에 대해 관찰 중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파악없이 (러시아 정부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 
 

러시아의 저명한 국제관계전문가인 콘스탄틴 후돌리(61·사진)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 부총장은  김정은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조심스런 자세를 강조했다. 지난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한반도정책 중심이 북한이 아닌 한국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증거로 지난 5월 대통령취임 후 발표된 외교강령을 꼽았다. 러시아 학계는 물론 정부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후돌리 부총장은 지난 2010년부터 양국간에 본격화된 민·관·산·학 교류프로그램인 '한-러대화'의 주요멤버이기도 하다.

 


-북한 김정은체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현재 입장은 무엇인가. 
 

" 아직까지는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입장이다. 러시아 정부 내에서는 북한 새정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주장과 김정은이 과연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가 어떤 형태로든 첫 개혁조치를 보여주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러시아가) 움직이자는 의견이 많은데, 나 역시 같은 입장이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 재개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개인적인 견해로는,솔직히 회의적이다. 북한의 6자회담 목적은 미국과 대화하는데만 있다. 중국은 미국과 힘겨루기에 관심이 있고, 러시아는 아시아에 대한 중국과의 영향력 경쟁 차원에서 회담에 참여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해 러시아 내에선 의심스럽게 보는 시선이 많다. 2006년 1차핵실험은 실제 이뤄졌던 듯하다. 3년뒤 2차핵실험에 관해선, 앞서 내가 '1차핵실험은'이라고 표현한데서 미뤄 짐작할 수있을 것이다.로켓능력에 대해서도 상당수는 전시용이란 견해가 많다."
 

-푸틴 정부의 한반도정책에서 한국 비중이 크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푸틴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하자마자 발표한 외교강령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대한민국과의 발전"이 분명히 언급돼있다. 북한에 대해선 좋은말도 나쁜말도 아예 없다.'한반도 핵문제가 아시아태평양지역과 관련돼있다'는 정도이다. 이것이 현 정부의 한ㆍ러관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오는 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푸틴 정부가 극동정책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입장에서는 극동아시아,시베리아지역의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정부에 극동개발부가 신설된 것은 이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러시아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에 걸쳐있는 국가이다. 이제 세계경제의 축은 아·태로 옮겨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아시아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횟수와 강도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APEC정상회의를 통해 러시아의 대아시아 정책이 보다 구체화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