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죽음, 세가지 이야기...'아무르' '심플라이프' '터치'

bluefox61 2013. 11. 26. 11:00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죽음의 문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20세기가 '생명연장', 즉 어떻게하면 더 오래 건강하게 살 것인가가 화두인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인류 모두의 숙제가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죽음은 이미 영화계에서도 중대한 소재가 되고 있다. 언제나 몸서리칠만큼 예리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유럽은 물론 미국,한국 등 전세계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홍콩 감독 허안화의 '심플라이프'도 어떻게 죽음에 직면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영화계의 고질적인 개봉관 불균형 문제로 인해 제대로 관객들의 평가를 받지 못했던 민병훈 감독의 '터치'도 죽음을 통해 우리사회의 불평등, 소외, 병자에 대한 처우 문제 등을 드러낸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모두 2012년 말 개봉된 영화는 제작된 나라도 다르고, 시선도 다르지만 인류의 과제인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하네케의 '아무르'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70세 감독(하네케)이 85세 여배우(에마뉘엘 리바)와 81세(장 루이 트렝티냥)과 함께 찍어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5개부문(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아무르'는 하네케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좀 특이한 작품이다. '퍼니게임''히든''하얀리본''피아니스트' 등 갑작스런 폭력과 죽음, 또는 폭력적인 격정에 노출된 인간의 모습을 관찰해온 전작들과 달리 '아무르'는 일상속에서 매우 천천히 , 그러나 끈질기게 한걸음씩 다가오는 죽음의 잔인함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파리 시내의 전형적인 한 중산층 아파트의 닫힌 문을 경찰이 강제로 열고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관리인의 말에따르면 한참동안 아파트를 드나드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이것은 영화의 맨마지막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문을 열자마자 역겨운 악취가 풍기는 통에 경찰들은 창문을 열고 코를 막는다. 그리고 테이트로 틈을 막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위에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곱게 뉘어져있는 노파의 시신이 보인다. 노파의 머리 둘레에는 작은 꽃들이 마치 후광처럼 놓여져있다. 

화면은 이제 은퇴한 피아노교사로 추정되는 조르주와 안이 제자인듯한 남자의 연주회에 참석했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누군가 아파트 문을 억지로 열려했던 듯 자물쇠부분에 손상이 가해져있는 것을 보고 도둑침입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바뀐다. 함께 늙어가는, 아무 힘도 없는 노인들에게 낯선 이의 침입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이내 더 큰 두려움이 찾아온다. 어쩌면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혈관이 막혀 수술을 받은 안이 반신불수가 돼버린 것. 이후 영화는 병세가 날로 악화되는 안과, 그를 돌보는 조르쥬의 일상을 관찰한다. 모든 것을 혼자 돌보다가 힘에 부친 조르쥬는 간호사를 고용하고, 한번에 800유로씩 나가는 엄청난 지출을 감당하면서도, 아무말 못하는 아내를 막대하는 간호사의 행태에 분노한다. 죽음이 이미 닥쳐왔지만 죽어지지 않는 생명,  자식들은 제각각 바쁘고  병든 노인이 병든 노인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진정 잔인하다. 

거의 두 노인 중심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존재 중 하나가 바로 비둘기이다. 죽어가는 두 노인의 집에 어느날 비둘기가 창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온다. 조르쥬는 처음에는 비둘기를 내쫓지만, 두번째 비둘기가 들어왔을때는 잡아보려고 애쓰고 , 결국에는 잡는데 성공한다. 비둘기는 생명의 상징이자, 영혼의 상징이 아닐까. 조르쥬는 담뇨에 싼 비둘기를 품에 안고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생명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아무르'는 두 노인의 죽음( 영화에 조르쥬의 최후가 나오지는 않지만)을 통해 인간존재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이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의지하는, 또는 의지할 수밖에 없는 두 노인의 지극한 '사랑'이 이 영화에 담겨있는 동시에,  그 사랑의 결과로서 맞이하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심플라이프' 역시 중풍으로 쓰러진 한 노파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아무르'와 같지만, 훨씬 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그것은 동서양의 시선차이라기 보다는 '심플라이프'가 죽음에 이르는 잔인한 과정보다는 인간의 삶에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서 오는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60년 넘게 한 집안의 하녀로 일해온 노파 아타오(엽덕한)과 50대 '도련님' 로저(유덕화)이다. 로저는 홍콩과 중국을 오가며 일하는 영화프로듀서이다. 로저의 부모 등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한때 미국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로저만 홍콩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아타오는 주인집이 미국으로 떠난뒤에도 홀로 아파트에 남아 도련님을 위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장을 본다. 

도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아타오는 매일 까다롭게 장을 보고, 그런 아타오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명물이 되다시피했다. 로저는 아타오가 쓰러지기 전까지만해도 그의 존재를 거의 신경쓰지 않고 지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타오가 저녁때 아파트 베란다에서 로저가 돌아오는 것을 내려다보고는 얼른 자기 방(사실은 작은 세탁실)으로 들어가 불을 끄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랜 세월 아타오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주인집 식구들의 식사 등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챙겨놓고 자신은 마치 집안에 없는 존재로 지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아타오가 쓰러지면서 로저의 일상과 내면에 큰 변화가 생긴다. 단지 일상이 불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아타오가 사실은 자신과 평생 함께 해왔으며 친어머니보다 더 자신을 챙겨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는 로저가  요양원에 입주한 아타오를 매주 병문안하고, 가짜 아들노릇을 하다가 진짜 양아들이 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하네케였다면 결코 이렇게 따뜻한 해피엔딩으로 그리지는 않았겠지만, '심플라이프'는 죽음을 통해 배우게 되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란 사랑과 배려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도 고령화 사회에서 병들고 소외된 노인 , 부양을 꺼리는 자식들, 부실한 노인 복지 문제 등이 나타나있다. 




유준상, 김지영 주연의 '터치'는 가난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젊은 부부를 통해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전 국가대표 사격선수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모든 것을 잃고 중학교 사격코치를 하고 있는 남편 동식(유준상), 간병인 일을 하며 병원 몰래 돈을 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환자들을 무연고자로 속여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아내 수원(김지영). 

두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버거운 투쟁이다. 동식은 음주운전으로 학생을 쳤다가 뺑소니로 체포되고, 수원은 합의금 마련을 위해 자신이 돌보는 노인환자의 성적요구를 들어주다가 병원에 발각돼 쫓겨난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데, 수원은 어느날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고 죽어가는, 자신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의 여자를 알게된다.

 이 영화에는 죽음과 관련된 우리사회의 여러 단면들이 파편적으로 나온다.  무연고 말기환자를 받아주는 가톨릭 요양원,  검은 거래를 묵인하는 신부,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없는 가난한 환자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고통, 안락사 등을 비추고 있는 것. 그런가하면 계약직 근로자(영화에서는 계약직 교사)를 착취하는 고용주(이사장) 도 있다. 

민병훈 감독은 '감독의 변'에서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소시민의 간절함을 얘기하고 싶었다. 커다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인물들이 느끼게 될 두려움과 소외감. 결국 이것이 극대화 되고 폭발할 때 우리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신의 숨결과 손짓으로 이들을 어루만져 주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의미로 제목을 '터치'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르'의 비둘기처럼, '터치'에도 중요한 상징으로 동물이 등장한다. 바로 사슴이다.  영화 속에서 사슴은 생명, 순수를 의미하는 존재이자 , 동식과 수원의 죄의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슴을 만나고, 자신보다 더 절망적인 생명(사슴과 환자)을 돌보고자하는 갈망을 통해 일말의 구원, 자신의 내면을 회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