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공리 -카리스마와 상실의 두얼굴

bluefox61 2006. 8. 18. 14:24

“국수 이래 중국으로부터 온 최고의 수입품!”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출연한 중국의 국민배우 공리(41)를 최근 이렇게 격찬했다.

뉘늦게 공리를 발견한 미국 영화계가 그의 탁월한 연기력에 매료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말 ‘연기를 살아있는 예술로 승화시킨 배우 6명’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유일한 동양배우로 공리를 꼽기도 했다. 타임지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게이샤의 추억>에서 공리가 보여준 하츠모모 연기를 “베티 데이비스 이후 최고의 악녀”로 극찬했다.




지난 96년 싱가폴 담배재벌과 결혼한 이후 전성기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던 공리가 최근들어 할리우드 화제작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마흔에 접어들면서 그의 연기는 <붉은 수수밭(88)><국두(90)><홍등(91)><귀주이야기(92)><패왕별희(93)> 때보다도 오히려 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선이 살아나는 연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LA타임스는 “얼굴에 복잡한 감정을 드러낼 줄 안다는 점에서 공리는 메릴 스트립을 연상케 하는 배우”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80년대 후반 <붉은 수수밭> 이후, 중국 여성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공리였다. 아름다우면서도 거칠고 , 연약한 듯하면서도 질기디 질긴 생명력을 지닌 공리는 수천년 거대한 땅덩어리를 지켜온 중국여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당나귀 한마리에 양조장 노인에게 팔려가다가 수수밭에서 가마꾼과 사랑을 나누던 공리의 현기증나던 얼굴 표정은 영화 팬들의 기억에 잊기 힘든 명연기로 각인됐다. <국두>에서 염색공장 주인인 남편 몰래 시조카와 파멸적인 사랑을 나누거나, <홍등>에서 부호집에 팔려간 여대생이 성의 노예로 점점 전락해버렸을 때에도 언제나 그녀는 시대의 비극과 한계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중국의 에너지였으며,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가는 양쯔강이었다.  

 

확실히 배우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감독의 손길에 따라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는 존재이다. <샹하이 트라이어드(95)>의 대실패 이후 자신의 멘토(스승)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장예모와 결별한 공리는 배우로서 한때 침체기를 맞는 듯했으나, 2000년대 들어 왕자웨이 감독의 만남을 계기로 연기자로서 더욱 풍부한 색깔을 갖게 된다. 

<2046(2004)>과 <에로스 - 그녀의 손길(2004)>에서 공리는 마흔넘은 여자의 ’농염‘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실과 고통을 가슴깊이 품은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과 눈물샘을 자극했다. 마치 밤이면 더욱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자스민꽃처럼 세월은 그녀를 퇴색하게 만들기는커녕 한층 더 완숙한 배우로 다듬어놓았다.


<게이샤의 추억(2005)>에서 아름다운 일본 게이샤 인형같았던 장쯔이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배우는 역시 하츠모모를 열연한 공리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하츠모모는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게이샤이지만 사유리처럼 어린시절 모진 고난을 겪으며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나는 하츠모모가 불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태우고 태워, 그녀 자신까지 태워버리는.”배우 공리도 하츠모모처럼 그렇게 “태우고 태워”자신까지 태워버리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지금의 연기자로서 우뚝서게 됐을 것이다.


공리의 영어연기는 웨인왕감독의 <차이니즈 박스(97)>이후 <마이애미 바이스>가 세번째이다. <차이니즈 박스>에서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된 영어대사가 거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녀는 쿠바 액센트가 은근히 섞여들어간 영어를 자유롭게 구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공리는 매일 두세시간씩 영어특별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마이클 만 감독은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공리에게 제대로된 쿠바식 영어를 구사하게 만드는게 매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붉은 수수밭>과 <홍등>을 통해 공리에게 매료당했던 만감독은 90년대 중반 <히트>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아내역을 그에게 제안했었다. 공리는 드니로,알 파치노와 연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영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10여년만에 공리와 함께 일하는 꿈을 이룬 만 감독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여자 배우 다섯명 중 한 명”으로 아낌없이 극찬하면서 “강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흔치않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공리의 할리우드 행보는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올해안에 개봉될 <영한니발>에서 젊은 시절 한니발 렉터를 탐미와 악의 세계로 이끄는 ‘레이디 무라사키’를 연기했고, <옐로우 M>과 2009년 개봉될 팀 버튼감독의 <믿거나 말거나>의 출연도 예정돼있다.

더구나 공리는 옛 연인 장예모와 10년만에 다시 손잡고 20세기초 중국의 불륜으로 뒤얽힌 두 가문의 비극을 그린 <만성진대황금갑>에 찍고 있어 두 사람의 팬들을 벌써부터 흥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