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케이트 블란쳇-욕심꾸러기 카멜레온

bluefox61 2006. 8. 17. 14:26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중 한 에피소드에는 두 명의 케이트 블란쳇(37·사진)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세계적인 영화배우인 금발머리의 케이트 자신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록가수 애인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거칠게 살아온 검은 머리의 셸리입니다. 사촌 자매간인 두 사람은 영화배우로 성공한 케이트가 신작 홍보차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호텔 커피숍에서 오랫만에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서로 다정한’척‘하던 두사람이 이내 서로를 지겨워하면서 배배꼬인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묘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천사같은 케이트는 홍보용으로 받은 공짜화장품들을 사촌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선물인 양 생색을 내고, 성공한 사촌을 애써 깔보는 듯했던 셸리는 상대방이 커피숍을 나가자마자 혼자남아 아예 공짜밥까지 시켜 먹으려들며 빈곤함을 드러내고 맙니다. 



언뜻보면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다른 두 명의 캐릭터를 예리하게 연기해내는 케이트 블란쳇을 바라보면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애비에이터)’를 괜히 받은게 아니로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케이트 블란쳇과의 첫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많은 이들이 블란쳇의 출세작으로 ‘엘리자베스’(1998)를 꼽지만, 제 경우엔  국내의 한 소규모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오스카와 루신다(1997)’란 작품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됐습니다. 

19세기 중반 남성중심적이고 답답한 호주사회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사업가 루신다로 출연한 신인 배우 블란쳇의 연기는 ‘쉰들러 리스트’로 급부상 중이던 남자주인공 오스카역의 랠프 파인즈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지요. 유리로 만든 아름다운 교회당을 거대한 바지선 위에 싣고 오스카와 함께 강줄기를 타고 호주 오지 속으로 향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호주태생의 이 배우는 데뷔 10년만에 세계적인 스타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동안 그녀는 미국남부의 주부(‘에어콘트롤’)과  점장이(‘기프트’), 못말리는 바람둥이(‘쉬핑뉴스’) 은행강도(‘밴디트’) 암살당하는 신문기자 (‘베로니카 게린’)였는가 하면 , 요정여왕 (‘반지의 제왕’)에 이어 대선배 캐서린 헵번( ‘애비에이터’)로 정신없이 변신을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또다른 ‘케이트’(헵번)을 연기했을 당시 할리우드 안팎에서 그녀의 연기에 대해 비판과 질시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했지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잊기 힘든 강하고 이색적인 마스크와 수시로 바뀌는 머리색깔을 가진 블란쳇은 진정 카멜레온같은 배우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지나친 다작으로 재능을 소비하지말고  이제는 쉬어갈 줄도 아는 배우가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