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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타는가 봅니다. 영화보기를 그리 게을리한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글쓰기에는 한없이 게을러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최근 본 몇편의 영화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내 남자의 로맨스] 

웬만해서는 영화보다가 중간에 나온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나쁜 영화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얼마나 나쁜지를 확인해볼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만큼은 끝까지 앉아서 보는데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모 일간지 기자는 이 영화를 만든 박제현 ( 울랄라 시스터스, 단적비연수)감독의 메이 필름이 '한국의 워킹 타이틀'을 지향하는 것같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상찬도 이런 상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지적이 나오게 됐는지는 알겠더군요. 
7년 사귄 커플 사이에 어느날 느닷없이 예쁘고 섹시하고 게다가 맘씨까지 착하며 진정으로 사랑을 갈망하는 특급 스타가 끼여든다는 스토리이죠. 게다가 주인공 역의 김정은과 동고동락하는 여자친구 2명, 남자친구 2명이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영화는 곳곳에서 [노팅힐]을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여자 스타가 김정은의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으며 흉금을 털어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 ( 돌아가면서 한가지씩 농담을 하는 설정은 [노팅힐]에서 친구들이 브라우니를 차지하기 위해 누가 더 불쌍한가 경쟁하는 장면의 복사판), 김정은이 비를 맞으며 남자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친구들이 봉고차를 타고 찾아가는 장면 등등... 

영화는 상큼하고, 코믹하고, 감동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엔 '짝퉁 노팅힐'임을 드러내고 맙니다. 단순히 새롭지 않다는 차원이 아니라, 남녀인물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부자연스런 상황과 감정 등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란 것이죠. 
특히 김정은은 상투적인 연기에 대한 심각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여자]와 [인어공주] 

평소 장진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꽤 발랄한 유머감각와 재주가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그의 영화엔 안그런 듯하면서, 상투적이고 유치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왔지요. 
그의 신작 [아는 여자]에 대한 느낌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화 전반부까지 이어지는 썰렁하기 짝이 없는 유머(남자주인공이 애인과 헤어지는 장면, 그리고 이나영과 본 영화 속 영화장면)에는 솔직히 실소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남자주인공 정재영과 이나영이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부분부터는 이상하게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매력이 있더군요. 뚱한 성격이면서도 은근히 다정한 구석을 지닌 두 남녀가 조심스럽게 서로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것은 상당부분 정재영과 이나영의 좋은 연기 덕분이기도 합니다. 장진의 썰렁하고 엇박자 유머가 정재영이 아니었다면 제 맛을 내기 힘들지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나영도 또래 여배우들과 확연히 다른 연기 궤적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에 소중한 연기자로 자리잡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영화에서 가장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있는 전봇대를 타고 사랑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장면보다는 , 자동차에 치여 자살한 한 낯선 여자가 몸이 공중으로 붕뜨는 순간 정재영과 눈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진에게 다시 기대를 걸어보고 싶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인어공주]는 딸의 눈으로 본 바라본 엄마,아빠의 첫사랑 시절을 잔잔하고 소박하게 그려나간 점이 마음에 듭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30여년전 섬마을 억척 해녀였던 엄마와 선한 미소를 지닌 우체부 아빠의 예쁜 사랑 묘사보다는 , 각박한 현실때문에 이미 과거가 돼버린 사랑의 그림자가 불러일으키는 씁쓸한 '상실감'이 이 영화를 더욱 깊이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마음의 풍금'에서도 그랬지만, 일자무식에다 억척스럽지만 마음만은 순진하고 따뜻한 시골 소녀에 관한한 전도연을 따라갈 여배우는 대한민국에 없는 듯합니다. 전도연의 최고 연기라 할만 합니다. 그러나 그의 연기도 고두심이 무게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돋보이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관록있는 배우란, 역시 다르더군요. 

참고로, 평단의 반응이 좋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 징크스가 [아는 여자]와 [인어공주]의 경우에도 적용되는군요. 
하긴, 여름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열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3년전인가, [엽기적인 그녀]이후 한국영화가 외국영화에 역전되기는 처음인 듯합니다. 올 봄 [실미도]와 [태극기...]의 1천만 관객 달성이후 한국영화가 기나긴 침체에 빠져들고 있죠. 
봄 시즌 이후 [바람의 전설][아라한 장풍대작전][여.친.소] [달마 2]에 이르기까지 [올드 보이]를 제외하면 다들 고만고만한 흥행성적을 올렸거나 올리고 있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범죄의 재구성]도 관객동원은 상당했지만, 손익분기점을 힘들게 겨우 넘겼다는 점에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한 [늑대의 유혹][그놈은 멋있었다]등 무한히 가벼운 로맨스 물들이 과연 여름 시장을 장악할 수있을까요. 
1천만 관객이다 떠들었던 것이 불과 몇달전인데, 이젠 상황이 매우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여름 열기가 조금 누그러들때쯤 개봉할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그 밖의 외국영화들...> 

최근 본 외국영화들 중 최고의 작품은 홍콩영화 [무간도 3]였습니다. 속편에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왔는데, [무간도 3]는 시리즈의 최종판으로서 더없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고 [무간도] 시리즈 전체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1,2편에서 건너뛰었던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꼼꼼하게 메꾸고 있는데다가, 절망과 희망, 이성과 광기를 넘나드는 인물들을 통해 
홍콩의 본질을 파고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콩 누아르의 새로운 희망이자 새출발로 평가받을만 합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블러디 선데이]도 많이 울린 작품들입니다. [블러디 선데이]는 흥행이 안되도 너무 안됐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도 거의 비슷한 처지가 되겠지요. 


[슈렉2][스파이더2]는 속편의 기대수준에 머문 작품들이었습니다. 

Posted by bluefox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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