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2003 이라크 데자뷔

bluefox61 2013. 9. 4. 11:15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태를 지켜보는 요즘, 데자뷔(기시감)에 시달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인과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03년 이라크와 2013년 시리아는 신기할 정도로 판박이이다. 화학무기가 문제가 되는 것도 그렇고, 국제사회가 사분오열되고 있는 것도 똑같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고, 오바마는 조지 W 부시이다.

 


 10년전 상황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후세인 정권이 생산한 화학무기라며 흰색 가루가 든 조그만 유리병을 치켜올리며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 안보리 승인을 받는 데 실패했고, 이라크의 어느 곳에서도 화학무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몇년 후에는 파월 장관이 화학무기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한채 안보리 연설이란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물론 10년전의 이라크와 지금의 시리아는 다른 점이 더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화학무기이다. 이번에는 화학무기가 사용된 정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500여명을 포함해 최대 약 1500명이 화학무기의 일종인 신경가스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팩트(fact)'다. 문제는 과연 누가 화학무기 사용했으며, 누가 학살을 명령했는가이다. 미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시리아 최고 군사령관인 알아사드의 허가없이는 화학무기 공격이 이뤄질 수없다고 주장하고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는 반군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유엔 조사단의 결과가 나와야 확실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양쪽 모두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는 상황이다.지난 5월 유엔 관계자는 "반군이 사린가스를 생산해 화학무기로 이용한 증거와 증언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최근 몇몇 외신들은 반군 관계자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공수받은 화학무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막대한 희생자를 초래한 것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화학무기를 둘러싼 혼선이 계속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리아 반군의 구성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자유시리아군처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공식'반군부터 알카에다와 연관된 테러조직, 정부군 인육을  먹는 동영상의 주인공인 칼리드 알하마드에 이르기까지 시리아 반군은 혼란 그 자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시리아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이다. 지중해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리비아와는 지정학적인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서쪽에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버티고 있고 , 남쪽에는 요르단, 북쪽은 터키, 동쪽은 이라크가 버티고 있다. 주변이 온통 지뢰밭 투성이인 셈이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지 2년이 넘도록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제외한 그 어떤 국가도 '결정적인 개입'을 하지 않은 것은 자칫 발을 들여놓았다가 중동전체가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균형'이 형성돼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리아 딜레마'에 빠진 오바마 대통령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능한 시리아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그의 속마음이 읽혀진다. 이런 오바마의 태도를 어떤 이는 '유약함'으로 비판하고, 어떤 이는 '2003년 이라크 학습효과'로 부를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시리아에서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국제사회의 파워게임과 독재정부의 만행에 죽어나가는 것은 언제나 죄없는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