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토고를 다시 생각한다

bluefox61 2006. 6. 16. 14:01

지난해 월드컵 조추첨에서 한국대표팀의 첫 상대국으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토고가 선정됐을 당시, 주변의 공통된 반응은 “토고가 도대체 어떤 나라냐”는 것이었다. 수년동안 국제부 기자로 일해온 필자에게도 토고란 국명은 낯설었다. 토고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지난해 토고를 현지취재했던 문화일보 기사와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의 아이들이었다. 옷차림은 비록 허름해도 잘 닦아놓은 검은색 보석처럼 반짝이던 아이들의 눈망울과, 축구공을 들고 환하게 웃던 얼굴표정에서 축구를 통해 희망을 찾고 있는 토고국민들의 고달픔과 희망이 동시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하면 으레 끔찍한 종족분쟁과 소년병, 기아와 에이즈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검은 얼굴들을 떠올렸던 편견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한국대표팀이 토고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어느새 우리에게서 토고란 존재가 잊어지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열광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그동안 국내언론을 통해 토고가 비쳐진 방식, 나아가 스포츠를 통한 낯선 외국과의 만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진하다보니 스포츠는 전쟁, 선수는 전사(戰士)로 으레 묘사된다. 상대편의 약점을 들춰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태도도 나타나게 된다. 토고 대표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한국전을 앞두고 돈문제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월드컵 첫출전, 첫경기를 앞두고 보상금 문제로 선수들이 사실상 연습을 보이콧하고 감독이 사퇴했다 복귀한 파행은 솔직히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 때문에 국내 언론들을 통해 토고팀의 자중지란이 끊임없이 중계방송됐고,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토고 선수들을 넘어 아프리카인 전체를 매도하는 험한 말들도 쏟아져나왔다. 

이제 온나라의 관심은 온통 19일 치러지는 프랑스전에 쏠려 있다. 이번에도 프랑스 대표팀의 자중지란이 화제다. 일부 신문에서는 프랑스 선수 23명의 출신배경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알제리, 모로코, 과들루프, 카메룬, 콩고민주공화국 등 이른바 과거의 식민지 출신 이민 2세들이 절반을 넘는 16명이란 점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80년대 초반까지는 순수 프랑스 출신이 주축을 이뤄 팀단합이 잘 됐지만, 지금은 유색인종이 많다보니 과거와 같은 조직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순수 프랑스 선수가 거의 없는데 무슨 국가대표팀이냐”란 프랑스 극우주의자들의 주장까지 덧붙였다. 

축구를 통해 분열된 정치를 통합하고 뿌리깊은 인종갈등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온 유럽 축구애호가들이 한국의 이 기사를 봤다면 분명 경악했을 것이다. 프랑스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한다는 국민적 열망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처럼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것은 유럽에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 사회가 아랍계 청년들의 폭력시위로 몸살을 겪었을 당시 과거 식민체제의 유산극복에 실패하고 모래알처럼 분열된 프랑스의 문제점을 따갑게 비판했던 국내언론들이, 이제 스포츠로 국가통합을 이뤄보려는 프랑스의 고민을 비아냥대는 듯한 모순이 솔직히 적잖게 당혹스럽다. 

우리도 과거엔 토고였고, 프랑스 속의 알제리였다. 월드컵이 정말로 소중한 것은 아마도 우리 아닌 타인, 타국을 이해하고 알아나가는 좋은 계기가 될 수있다는 점이 아닐까. 

[[오애리 / 국제부장]]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