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 가는 나치 약탈미술품.. 아직도 숙제는 산더미

지난 2012년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80세 노인 아파트에서 발견됐던 ‘나치 약탈 미술품’ 약 1500점이 드디어 최후의 안식처를 찾았다. 바로 스위스 베른미술관이다. <문화일보 2013년 11월 4일자  16면 참조>
　베른 미술관이 지난 24일 "약탈된 작품은 반드시 정당한 소유권자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원래 주인이나 그 후손에게 돌아가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소유주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소유권을 정확하게 가리기가 매우 힘든만큼, 베른미술관이 작품들을 인수받아 일반에 공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될 경우, 유럽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약탈 미술품 또는 문화재를  둘러싼 논쟁을 해소하는데 ‘모범적 사례’가 될 수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조차 없는 귀한 미술품들을 기증받게 된 베른미술관 측은 ‘대박의 기쁨’ 대신 책임감과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쇼이블린 대표는 24일 독일 베를린 기자회견에서 "승리감같은건 없다"며 "길고 긴 길의 출발점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밝혔다.심지어 "우리 미술관의 명성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까지 말했다.자칫 소송전이나 구설수에 휘말릴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있기 때문이다. 뮌헨과 잘츠부르크에 있는 집에 미술품 1500점을 숨겨놓고 있다가 당국에 발각됐던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는  "모든 작품을 스위스 베른 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지난 5월 사망했다.베른미술관과 구를리트는 아무런 개인적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일한 인연은 구를리트가 어린시절 베른에서 생활하면서 이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었던 것뿐이다.
　문제의 작품들은 지난 2012년 2월 독일 세무당국과 경찰이 구를리트의 뮌헨 아파트와 잘츠부르크 집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뮌헨 아파트에서만 약 1280점,잘츠부르크 집에서 238점이 나왔다. 당초 당국은 평생 변변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던 구를리트가 많은 현금을 가지고 스위스를 오가며 여행해온 점을 주목, 탈세 또는 돈세탁 혐의를 두고 그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된 작품들 중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파울 클레, 마르크 샤갈 등 거장들의 회화가 다수 포함돼있다. 2차세계대전 후 실종 또는 도난됐던 예술품 회수로는 세계 최대규모이다. 당시 한 세무당국자는 현지언론 포쿠스와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수색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현금다발 정도를 기대했는데 문을 따고 들어가는 순간 집 전체에 수많은 회화작품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광경을 보고 기절할만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구를리트의 아버지이자 ‘나치의 미술상’으로 불렸던 힐데브란트 구글리트가 남긴 수집품이다.힐데브란트 구를리트는 나치체제 때 유대인 피가 절반 흐른다는 이유로 박물관장에서 쫓겨났지만, 곧 나치와 손잡고 유대인들의 미술품을 약탈하는데 협력했다. 약탈한 작품 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차지했거나, 급히 피난길에 오른 유대인 수집가와 화상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을 직접 수집 또는 헐값에 사들이기도 했다.약탈이나 다름없는 ‘구매’였던 셈이다. 독일 패전 후 연합군의 조사를 받은 그는 자신이 은밀하게 유대인들의 도피를 도왔으며, 드레스덴 폭격으로 인해 소장품 전체가 불타버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1500점 중 나치정권 차원에서 약탈한 작품을 400~500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24일 베른미술관, 독일 연방정부, 바이예른주정부가 공개한 합의서에 따르면,약탈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혀진 작품은 원소유주나 그 후손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반환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독일 정부가 부담한다. 가장 까다로운 경우는,약탈된 정황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일단 독일에 그대로 남아,정부의 후속 조사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따라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작품들만 베른 미술관으로 갈 예정이다.
　작품들이 발견된지 2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내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사람은 3명뿐이다. 그나마도 원소유주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 중 한 작품인 마티스의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의 저명한 화상인 폴 로젠버그의 소유였던 것으로, 로젠버그의 손녀인 유명 언론인 안 싱클레어(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 총재 전 부인)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4일 가디언은 베른미술관이 장고 끝에 구를리트 컬렉션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을 ‘독이 든 선물’로 표현하면서도 "수많은 걸작들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사라져버렸던 것과 달리  이 작품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분명 기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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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월 21일>

독일 뮌헨의 한 아파트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10억 유로(약 1조 4000억원) 규모의 나치 약탈 미술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법적인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가장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앙겔라 메르켈 정부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나치정권의 범죄를 사죄하며 쌓아올린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가'이미지가 이번 사건으로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2월(당초 보도됐던 2011년 봄 시점은 오보) 문제의 미술품들을 압수해놓고도 공개하지 않고 2년 가까이 입을 다물었던 메르켈 정부의 태도에 국제사회는 분노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나치 정권의 직접적 피해자인 유대계 사회에서는 '전형적 이중 태도'란 비난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귀도 베스터벨레 외교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사안의 민감성을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수년간 쌓은 신뢰가 무너지게 생겼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지난 4일 시사주간지 포쿠스의 첫 보도 이후  "최대한 신속한 처리"" 철저한 투명성"을 약속하고 있지만, 베스터벨레 장관의 말처럼 워낙 민감한 문제라 미술품들의 운명을 예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슈피겔, 뉴욕타임스 등이 최근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1998년 44개국, 13개 비정부기관(NGO)과 맺은 이른바 '워싱턴 협약'에 따라,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를 원 소유 국가 또는 기관에 반환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미술품 경우, 현행법 상으로는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무당국과 검찰이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80)의 미술품을 압수한 법적 근거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이 구글리트에게 다시 반환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당국이 구를리트의 집에 대한 수색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미술품을  압수하는 권한까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미술품은 회화와 드로잉 등 1280점이다. 당초 포쿠스가 보도했던 약 1400점 보다는 다소 줄어든 규모이지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오토 딕스 등 20세기 거장 현대화가들의 작품은 물론 18∼19세기 작품도 다수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정부는 저명한 예술사학자 우베 하르트만을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10여명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태스크포스팀은 각 미술품이 언제 어떻게 구를리트의 소유가 됐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1280점을 법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나치 정권이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의 아버지 힐데브란트(1956년 사망)에게 판매대행한 작품들이다. 1930년대 중반, 나치 정권은 게르만 정서와 이념에 맞지 않은 작품들을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몰수한 후, 전쟁이 치열해지자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힐데브란트 구를리트 등 소수의 친정부 미술품 거래상들에게 판매를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가 그 중 일부를 빼돌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은 1280점 중 약 380점이다.
　

두번째는 유대인 부호 및 미술수집가, 거래상들로부터 빼앗아온 '약탈 미술품'이다. 약 590점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번째는 합법적 소유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다. 힐데브란트 구글리트가 워낙 저명한 미술관 관장이자 거래상이었던만큼, 그가  직접 구매한 작품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약 310점이 세번째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원소유자들이 나치 정권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어쩔수없이 헐 값에 작품을 넘긴 경우 합법적 거래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사실상 '강탈'로 봐야하는지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수사권을 가진 바이에른 아우스부르크 검찰은 20일 "구를리트의 소유권이 확실한 작품은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작품들을 철저히 가려내기 위해선, 우선 소유권이 명확한 작품들부터 먼저 정리하고 가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슈피겔에 따르면, 미술품 원소유주 가족의 법적 대리인 자격으로 독일 정부와 접촉 중인 변호사는 1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원소유주들은 대부분 2차세계대전 중에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고령으로 사망한 상태이지만, 그들의 유산 상속자인 후손들은 80여년전 나치에 빼앗겼던 소중한 재산을 하루속히 되찾기를 희망하고 있다.그러나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는 18일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검찰이 불법적으로 개인재산을 압수했다"며 "자발적으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경대응 자세를 나타냈다. 

 

▶힐데브란트 구를리트(1895∼1956)는 누구

 

20세기 초중반 독일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미술품 거래상이자 박물관장이다. 드레스덴의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920년대에 케테 콜비츠,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에드바르 뭉크 등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독일에 소개해 명성을 얻었다. 나치 체제가 들어서면서 유대인 피가 섞여있다는 이유로 한때 탄압 당한 적도 있지만, 곧 요제프 괴벨스 등 권력자들과 손잡고 미술품 거래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1945년 연합군에 체포된 그는 나치 부역자로 조사를 받았으나 , 오히려 자신이 많은 유대인들을 도왔으며 강제로 미술품을 약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구를리트는 1948년 뒤셀도르프 박물관 관장을 역임하는 등 미술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다가 195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부인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지만, 현재 생존 가족은 아들 코르넬리우스가 유일하다. 

지난 2011년 초 코르넬리우스의 뮌헨 아파트에서 1280점이 발견되기 전까지 지난 80여년동안 구를리트가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은 2차세계대전 말 연합군의 폭격을 맞아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