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스위스는 왜 '1 대 12' 발의안을 거부했나

bluefox61 2013. 11. 25. 11:30

지난 3월 스위스 국민들은 기업 경영진에 대한 보수를  정할 때 반드시 주총의 승인을 받도록 규제한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찬성률이 70%에 가까울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였다.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 승인을 거쳐 정하도록 한 주민발의안의 통과로 스위스 기업 임원들은 거액의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됐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에도 적용된다. 기업 인수·합병(M&A)이나 매각이 성사됐을 때와 임원이 퇴직할 때 지급되는 특별 보너스(이른바 ‘황금 낙하산’)도 금지된다. 보수 규정을 위반하면 최대 6년치 보수에 상당하는 벌금형과 징역 3년의 실형에 처할 수 있다.

 

 

그랬던 스위스 국민이 약 9개월이 지난 11월에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기업 최고경영진의 보수를 최저임금의 12배 이내로 규제하자는 발의안은 부결시킨 것이다.

스위스 전국 23개 칸톤(주)에서 실시된 이날 국민투표에서 발의안은 반대 65.3%, 찬성 34.7%로 부결됐다.지난 2011년 총선 때보다 높은 53.6%의 투표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이번 국민투표는 스위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졌지만, 23개 칸톤 중 과반 찬성표가 나온 곳은 단 한곳도 없다고 SRF 방송 등은 전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왜 스위스 국민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일까.

하지만 ,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 수긍할만한 논리가 있다.

단순히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고만은 볼 수없는, 직접민주주의 국가 스위스의 오랜 전통이자 국민기질인 자율성 존중 , 합리주의 등이 이번 투표 결과라는 이야기이다.

 

우선,  이번 발의안은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다니엘 바셀라 전 회장이 퇴임시 무려 7200만 스위스프랑(약837억원)를 받아 같은 회사 최저임금의 219배를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분노가 폭발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UBS의 최고임금과 최저임금의 격차는 194배로 드러났다. 앞서 지난 2009년에는 크레딧스위스 은행의 당시 최고경영자(CEO) 브레이디 두건이 5년전 7000만 스위스프랑어치의 주식을 받은데 이어 한해 급여로 1920만 스위스 프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브레이디 두건의 이같은 수입은 크레딧스위스 내 최저임금의 무려 1182배에 이르는 액수이다. 스위스 연방정부가 최근 자국의 은행 비밀주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고,내년 초 최저임금제 도입 발의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유로존 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탐욕,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스위스 국민들의 비판적인 인식은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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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의안에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이유는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할 수있다고 본 국민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3월 국민투표에서 70%에 가까운 찬성률로 기업 경영진 보수에 대한 주주총회 승인 의무화 발의안이 통과됐던 것과 이번 투표 결과가 언뜻 모순된 듯해도 ,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 문제는 주주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스위스 특유의 자율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물론, 반론은 있을 수있다. 기업들의 '공포심 조장' 홍보가 워낙 치열했기때문이다.

일각에서 '1대 12'가 아니라 '1 대 40'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친기업 진영의 대국민 홍보비가 발의안 지지진영보다 40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친기업 진영은 마치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의 탈 스위스 행렬이 이어지고 ,

스위스가 몰락이라도 하는 양 공포심을 부추긴게 사실이다.

 

 

요한 슈나이더 아만 경제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스위스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있게 돼 기쁘다"며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기업유치와 일자리 공고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네슬레의 로빈 티클 대변인도 "스위스 국민들이 경쟁력있는 경제시스템과 오픈된 사회를 원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반면, 법안을 주도한 사회민주당 내 소장파 그룹의 지도자 다비드 로트는 " 결과에 실망했지만 불평등 문제에 대한 공공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에 성과가 있었다"면서 "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만 경제 장관 역시 " 기업 경영진은  국민들의 분노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지나치게 과도한 보수 문제에 대한 기업 내부의 자발적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헤들리 메이의 파트너 데보라 워버튼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경영진 보수 규제는 아직도 살아있는 이슈"라면서 "영국과 스위스에 이어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주주총회에 경영진 보수 규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어 주목된다"고 말했다.

 

한편, 스위스는 내년 초 최저 임금(시간당 22 스위스프랑, 월 4000 스위스프랑) 발의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