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역사없이 미래없다

bluefox61 2006. 9. 8. 14:06

백두산의 중국이름은 창바이산(長白山)이다. 지난 6일 중국은 백두산에서 내년 1월 28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개막되는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의 성화를 채화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AP 통신은 푸르디 푸른 천지를 배경으로 흰옷을 입은 소녀들이 성화를 채화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세계에 보도하면서 “중국 창바이산 자연보호지구의 텐츠(천지의 중국명)호수 앞에서 여성들이 채화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짧은 글이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창바이산이 한국에서는 백두산으로 불리고 있다거나 한·중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란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사진을 받아본 전세계 언론사 관계자들이나 지면을 통해 사진을 접한 독자들은 한국민족 영혼의 뿌리인 백두산과 천지를 아무런 의심없이 중국 영토로 인식했을 것이다. 사진설명을 읽으면서, 백두산을 둘러싼 중국과 한국 간의 신경전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승리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닌가란 우려와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요즘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온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邊彊史地) 연구중심(센터)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논문들이 중국의 체계적인 한반도 역사왜곡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역사의식은 충격적이다 못해 한심한 수준이다. 


외교통상부가 7일 “외국 학술기관의 연구는 우리 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밝힌 입장은 원칙적으로 옳다. 국민도 정부가 타국 연구단체의 학술활동에 대해 국제적 관례를 무시한 채 안하무인격으로 간섭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수준이 낮지는 않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며 국민이 정부에 대해 불신과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일이 터졌을 때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일관성 없는 태도다. 


사회과학원의 연구활동이 중국 정부의 공식적 외교정책과는 무관한 것이라면, 우리 정부가 역사연구와 현실 정책을 연계시킬 목적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든 모순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해에는 사회과학원 연구가 연구를 빙자한 중국 정부의 전략이라더니, 올해는 일개 연구기관의 주장일 뿐이라고 입장을 바꾼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을 거부할 정도로 강경 대응하면서, 중국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수년째 착착 진행해오고 있는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이중성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동북공정’ 논란을 계기로 대화를 나눠본 고등학교 일선 교사와 대학 역사전공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냉소적이었다. 교과과정에서 역사교육의 비중을 꾸준히 줄여온 지금의 기성세대가 동북공정이니, 야스쿠니신사참배니 하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중국과 일본을 맹비난하면서 발끈하고 나서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코미디란 이야기이다. 


대학 1, 2학년들을 대상으로 인문교양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 교수는 요즘 학생들의 ‘역사적 무식’수준이 가히 경악스러울 정도라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역사교육정책에 울분을 나타냈다. 심지어 영조·정조가 조선시대 국왕이란 사실을 모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역사과목을 선택으로 정해놓은 국가가 전세계에서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역사철학이 부재한 국가의 국민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지 자괴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사과목이야 고교때 필수로 배운다 하더라도, 고교 3년과 대학 4년 내내 세계사를 한번도 배우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도록 만든 나라의 국민에게 올바른 동북아 역사 의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겠느냐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중국, 일본 역사왜곡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것이 역사교육 강화다. 하지만 이후 역사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얼마나 개선됐는지 등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나 검증노력은 없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무식해진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사실 책임이 없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과거 그토록 민족주의 역사교육을 주입받은 지금의 기성세대란 아이러니한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역사 없는 나라의 국민에겐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