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한국인 유엔사무총장

bluefox61 2006. 9. 29. 14:08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28일 3차 예비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탄생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에서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 등 막판 변수들이 아직 남아있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7명의 후보들 중 반장관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유엔 쪽에서는 다음달 2일 4차투표로 사실상 새 사무총장의 선출을 매듭짓는다는 분위기여서, 역사적인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의 탄생 여부가 조만간 가려지게 됐다.


따라서 이제는 유엔사무총장 배출국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며, 한국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여론수렴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다면, 한국으로서는 크나큰 경사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최근 벨기에의 한 신문이 ‘반 장관의 당선은 한국엔 축복’이라고 보도한 것처럼, 세계 속에서 국가적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것이다. 최근 강경화씨가 유엔 인권 부고등판무관에 선임된데 이어 유엔 최고 책임자인 사무총장에 한국인이 당선된다면 국제기구에서 한국 전문가들의 활동영역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에게 큰 역할과 짐이 주어진다는 것은, 곧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해야할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한국의 지나친 대미의존외교다. 이라크 전쟁 전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은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강경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전세계 반전여론을 이끌었다. 그 때문에 아난 총장과 부시 행정부는 결별하게 됐다. 미국의 유엔 개혁 주장이 미운털 박힌 아난 총장 몰아내기와도 맥이 닿아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 점 때문에 일부 회원국들이 친미국가 출신의 사무총장에 대해 우려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한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과 주변국 침략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비판 결의안에 지금까지 한번도 찬성표를 던진 적이 없다. 중동은 물론 서유럽 다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우려할 때 한국정부는 친이스라엘 정책을 이어온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수그러들 기미가 없는 가운데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감행과 유사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을 때, 전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떠맡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입장과 한국의 대미관계 간에 어떤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레바논평화유지군 파병을 시사했다는 국내언론들의 보도에서 보듯, 앞으로 중동사태나 아프가니스탄 및 아프리카 등 지구촌 곳곳의 분쟁과 인도적 지원문제에 한국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적극 개입하게 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아난 사무총장은 지난 10년간의 활동을 회고하는 최근 유엔연설에서 사무총장직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으로 설명하면서 “어렵고 도전적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어깨에서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은 기분”이라는 그의 심정이 이해된다. 또 “우리의 공통된 미래에 대해 불굴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맡긴다”고 후임자에게 당부했다.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1등을 차지하기 위한 올림픽 게임이 아니다. 한국이 이만큼 잘살게 됐고, 국제무대에서 ‘파워’를 갖게 됐다고 자랑할 일만도 아니다. 이제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우리도 거대한 바위같은 짐을 나눠질 것이며, 한단계 더 성숙한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무거운 약속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