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케리의 말실수 스캔들

bluefox61 2006. 11. 3. 14:08

요즘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존 케리(매사추세츠) 민주당 상원의원의 말실수가 연일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그는 최근 한 대학교 강연에서 “공부 열심히 해라. 숙제도 잘하고 똑똑해지려면 노력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라크에 처박혀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항의와 정치공세를 받고 있다. 그의 말 그대로라면, 이라크 전에 투입돼 싸우고 있는 미군병사들은 공부 못해서 그 고생을 하고 있다는 논리가 되는 셈이다. 당혹해진 케리는 ‘공부 열심히 안하고 똑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결국은 사람들을 이라크에 가게 만들고 고생시키게 된다. 부시 대통령에게 물어보라’란 원래 원고의 문장을 자신이 조금 잘못 읽는 바람에 오해를 사게 됐다며 백배 사죄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는 7일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진 케리의 말 한마디 때문에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다. 민주당 입장에선 의회 장악이란 다된 밥에 코 빠뜨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화당측은 완전히 한몫 잡았다는 분위기다. 케리의 발언은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싸잡아 모독한 것이며, 나아가 이라크 문제의 중대성을 민주당이 얼마나 잘못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 미국 방송, 신문 등 언론들이 ‘케리발언이 선거판세를 뒤흔들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연일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성이 아니라 심각한 사안이란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케리는 방송에 출연해 ‘설익은 농담’을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선거쟁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 모든 유세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중간선거 결과 당초 예상과 달리 민주당이 고전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경우, 케리의 당내 입지는 물론이고 당분간 정치활동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케리에게 “제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입다물고 있으라”며 눈총을 주고 있고, 뉴욕타임스는 “케리가 지난 2004년에 이어 또다시 민주당의 펀치백이 됐다”고 비꼬았다. 


그동안 말실수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인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문장의 앞뒤가 안맞는 비문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은 언젠가 “우리의 적들은 우리 국민을 해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라고 엉뚱하고도 끔찍한 말을 해서 비웃음을 한몸에 모으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희망적인 세계(hopeful world)’란 단어를 ‘희망적인 전쟁 (hopeful war)’라고 엉뚱하게 발언해 “과연 전쟁광답다”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말실수는 아니지만,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막바지때 전함에 승선해 병사들을 향해 “ (이라크전)임무가 완수됐다”고 성급하게 말했다가 지금까지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베트남전 당시 구정공세와 비슷하다” 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도 하다. 


이번 케리의 말실수는 2년전 총선때 국내 한 정치인이 “60, 70대 노인분들은 쉬시라”고 말했다가, 무릎꿇고 백배사죄했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특히나 정치인의 말이 갖는 무게와 영향력은 엄청나다. 사실 정치인의 말로 인해 국민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관한 한, 한국 국민들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제난과 북핵위기, 거기다 간첩사건까지 겹쳐져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온갖 말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때론 정치인의 말을 언론이 앞뒤 생략하고 중간만 뚝 잘라 보도하거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또는 곡해하는 바람에 국민불안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말이란 어떤 진심을 가지고 하느냐만큼, 기술적으로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한 법이다. 케리 발언 파문이 남의 나라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