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푸틴의 러시안 룰렛

bluefox61 2014. 3. 6. 11:07

 

 

지난 2010년 늦가을 독일 출장길에 조지아 기자 두 명을 만난 적이 있다. 멀리 극동에서 온 기자에게 두 사람이 제일 먼저 궁금해 한 것은 자기네 나라 이름 표기였다. 자국 정부가 공식 국명을 그루지야에서 조지아로 바꿨는데 알고 있냐는것이었다. 2년 전 전쟁을 치르며 철천지 원수가 된 러시아 말 대신 영어로 불러 달라는게 당시 조지아 정부의 입장이었다. 조지아어 식 표기는 '사카르트벨로'이다.  "물론 알고 있다. 한국에선 벌써 조지아라고 부른다"고 했더니,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번째 질문은 역시나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조지아 기자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도발한 국가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냐"는 돌직구를 날렸다."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진압한다면서 군대를 동원하고 국경에서 러시아 군을 공격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무리수가 전쟁의 도화선이 아니냐"는 것이 기자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조지아 기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분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남오세티야의 친러 분리주의를 조장하고 조지아와의 국경 지대에서 교묘하게 충돌을 유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권 언론들이 피상적 보도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였는데도, 조지아와 한국 기자 중 누구도 그의 이름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던게 생각난다.

 지난 4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데자뷔(기시감)를 느낀다"며 푸틴을 맹비난했다. 푸틴이 조지아를 침공했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군사적으로 장악했고,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아직도 상당수의 러시아 군을 주둔시키며 제멋대로 독립국가로 인정한 방식대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또는 친러 동부지역의 분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카슈빌리는 당시에도 소극적이었던 서방 각국이 이번에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2008년 조지아 전쟁을 되돌아보면,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푸틴이 취할 방향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한다. 이른바 푸틴의 '조지아 모델'이다. 당시 푸틴은 갈등관계였던 조지아가 남오세티야 내 러시아 계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침공을 단행했고, 단시간 내에 조지아 국토의 절반을 장악한 뒤 약 1주일만에 국제사회의 중재를 받아들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물론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우크라이나가 가진 지정학적 의미는 조지아와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크다. 무력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와 서방 양쪽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가 초래할게 뻔하다. 그만큼 군사 카드를 섣불리 꺼내들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2008년 당시 잘나가던 러시아 경제와 지금은 상당히 다르다. 전쟁이 난다면, 우크라이나와 서방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없다. 


 무력충돌의 위기가 다소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러시아''유라시아경제공동체의 꿈'에 사로잡혀 있는 푸틴이 단기간이나마 크림 반도에서 전쟁을 감행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이후에는 남오세티야 식으로 크림 반도의 준 독립국 지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도 있다. 사카슈빌리의 지적대로 크림 반도 다음 차례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 될지도 모른다.

 

 푸틴의 '러시안 룰렛'은 과연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 탄창에 들어 있는 한 개의 탄환이 언제 어디를 향해 발사될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