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끝나지 않은 타미플루 약효 논란

bluefox61 2014. 4. 18. 15:28

 

 

 지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당시 사실상 유일한 치료제로 인정돼 사재기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스위스 로슈 사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가 효력 면에서 일반 진통 해열제와 비교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임상 분석 결과가 발표돼 전세계 의약계와  보건계가 충격에 빠졌다. 타미플루와 비슷한 항바이러스제인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의 리렌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에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보건당국은당혹해하고 있다. 2009년 실종플루가 대유행하자 각국 정부는 WHO의 권고에 따라 막대한 혈세를 들여 타미플루를 사들여 비축했다. 미국 경우 13억 달러(약 1조 3500억 원), 영국은 5억 파운드(약 8736억 원)를 타미플루 구입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유효기간이 지나면서 전량 폐기해야될 판에, 약효마저 일반 진통 해열제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국 정부는 세금만 낭비한 셈이 됐다. 각국이 2009년 개발된 신종플루 백신을 대량 구매해놓았다가 유통기한 종료로 폐기처분한 비용까지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 치료 예방제에 허비한  혈세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WHO 역시 다국적 제약사들의 영향력에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론이 다시 불거질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로슈는 "보고서 결론을 인정할 수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타미플루 효과없다= 영국 옥스포드에 본부를 둔 비영리 보건연구재단인 '코크란협력(Cochrane Collaboration)'은 지난 9일 발표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에서 "타미플루와 리렌자가 독감 증세를 완화하고 후유증을 줄인다는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같은 분석 결과는 코크란협력이 로슈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을 상대로 수년 간 공개를 요구해 어렵게 받아낸 임상 자료들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결과보다 신뢰성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고서는 약 2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 타미플루 경우 위약에 비해 성인환자의 독감 증상을 7일에서 6.3일로 줄여, 불과 약 21시간 정도 빨리 회복시키는 효과를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어린이 환자 경우는 5.8일로 단축시켰다. 리렌자 경우도 성인의 독감 증상을 6.6일에서 6일로, 약 0.6일 줄이는 효과를 내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정도의 효과는 일반 진통해열제인 파라세타몰을 복용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폐렴 등 합병증에도 "눈에 띄는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구토, 두통, 정신질환 등 합병증은 많이 나타났다. 타미플루 덕분에 신종플루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시간을 벌 수있었다는 제약사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근거없다"고 일축했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칼 헤네건 옥스포드대 의대 교수는 BBC, 가디언 등과 인터뷰에서 " (영국 정부가 타미플루 구입에 쓴) 5억 달러는 국민 건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입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공동저자인 톰 제퍼슨은 "제약사들이 수행한 임상시험은 다단계 부실로 얼룩져 있다"고 질타했다.피오나 고들리 BMJ의 편집장은 "규제기관들이 타미플루를 승인하는 데 있어서 투명한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며 " 한마디로 의약품의 규제절차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당국을 비난했다. 보고서는 WHO에 대해 타미플루를 필수의약품 목록에서 제외하고, 각국 정부도 타미플루 비축을 중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래도 효과있다= 코크란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타미플루가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여전히 적지 않다. 영국의 한 의사는 BBC와 인터뷰에서 " 어린이 환자의 독감 증세를 21시간이라도 줄여주는 것만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의학저널 랜싯에 타미플루 주성분인 뉴라미니다아제 관련 임상보고서를 발표했던 조너선 응우엔 반탐 노팅엄대 교수는 " 2009년 신종플루에 감염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타미플루가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보고됐다"며 "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타미플루가 사망률을 20% 감소시켰다"고 주장했다. 영국 임페리얼대 호흡기감염센터의 피터 오픈쇼 소장은 "지난 5년간 축적돼온 많은 긍정적 증거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이언스 미디어센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보다 잘 설계된 투명한 임상시험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지난 5년간 축적돼 온 엄청난 양의 긍정적 증거를 모두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논평했다. 가디언은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와 유럽식약청(EMA) 은 타미플루 효과에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EMA는 코크란 보고서가 발표된 후 성명을 통해 "우리는 타미플루와 관련된 기존의 평가를 지지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제약사의 투명한 정보 공개 필요성= 전문가들은 타미플루를 둘러싼 논쟁이 장기화되면서 의약계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우선 거대 제약사들이 신약의 임상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슈는 타미플루 임상결과를 명확히 공개하라는 의학계의 요구를 4년 넘게 거부하다가, 결국 지난해에야 코크란협력에 자료를 넘겼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보고서 저자들이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보고서는 숨겨진 데이터와의 거대한 투쟁결과"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과정때문이었다. 따라서 약품에 대해 공공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약사들이 모든 정보를 투명한 공개하고, 학계는 이를 토대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있어야 한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타미플루 논란은 세계보건기구(WHO)를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 2004년 WHO가 신종플루의 유일한 치료제로 타미플루를 지정한 뒤 신종플루가 대유행하자, 세계 각국에서 타미플루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로슈는 2009년 최소 30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하며 대호황을 누렸다.
 2010년 중반 신종플루가 어느정도 수그러들자마자, WHO는 과잉대응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의학저널(BMJ)은 신종플루 대처 가이드라인 작성에 참여했던 WHO 전문가들 중 일부가 제약사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는 등 이해관계에 연루된 사실을 폭로해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전문가들이 치료제와  백신의 대량구매를 촉구하는 WHO 권고안에 영향을 줘, 연관된 제약사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파장이 확산되자 독립기구인 국제보건규정검토위원회(IHRRC)가 구성돼 신종플루 대응조치의 타당성 평가에 나섰다. 그러나 29명 위원 중 2명이 WHO 가이드라인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중립성 의심을 받다가 결국 사임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의약계 일각에서는 WHO가 보건 관련 연구프로젝트에 돈을 대는 제약업계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거릿 챈 사무총장은 "WHO 의사결정에 상업적 이해관계가 절대 개입될 수없다"며 일축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0년 세계보건총회(WHA) 연설에서  WHO가 신종플루에 과잉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생각보다 문제가 없었지만 만약 악화됐다면 오늘날 우리는 훨씬 큰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보건장관인 로셀린 바셀로는 "신종플루 치료제와 백신이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했다"며 "이런 문제점에 대한 사전 교육 및 홍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WHO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