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등 영국 언론들이 4월 30일 북아일랜드 신페인당의 당수인 게리 애덤스의 체포를 일제히 톱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애덤스가 체포된 이유는 신페인당의 뿌리라고 할 수있는 '아일랜드해방군(IRA)'이 1972년에 저지른 , 한 30대 어머니의 납치와 살해사건에 연루돼있기 때문입니다.
게리 애덤스란 인물이 영국과 북아일랜드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의 체포와 살해혐의는 당연히 핫뉴스일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좀 수그러들었지만, 한때 영국과 북아일랜드는 그야말로 끔찍하게 서로 싸웠고, 그 와중에 숱한 사람들이 희생됐지요. 애덤스에 대한 법적 처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겨우 잠잠해진 북아일랜드가 다시 요동칠 수도 있습니다.
애덤스는 1997년 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스토몬트성(城)에서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전격 회동해 양측간의 피의 갈등을 종식시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만해도 영국총리와 신페인당 지도자간 회담은 1921년 당시 로이드 조지 총리와 아일랜드 공화군(IRA)창립자이자 신페인당 고위간부였던 마이클 콜린스와 회동한 이래 76년만의 일이었지요.
양자간 회담은 영국 잔류를 주장하는 신교도측과 아일랜드 통합을 모색하는 가톨릭 세력간 정치적 타협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가톨릭계 무장독립세력 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은 영국의 북아일랜드 통치 종식을 주장하면서 일련의 테러를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親)영국 강경파인 민주연합당(DUP)은 신페인당을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 대화자체를 거부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블레어와 애덤스의 20여분간의 짧은 만남은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블레어·애덤스 회동 이후 신교도와 가톨릭 진영간 평화협상은 급류를 타게됐고,양자회동 6개월후인 98년 4월10일, 블레어와 애덤스가 회동했던 스토몬트성에서는 북아일랜드 7개정파가 마침내 평화협정서에 서명 하는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400여년에 걸친 신구교간 반목과 30여년간의 유혈분쟁 종식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죠. 이어 12월2일 0시를 기해 북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통치권한을 공식 이양받기에 이릅니다.
영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애덤스는 IRA 지휘관으로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살던 진 맥콘빌(38)의 살인을 지시했는지에 대해 경찰 신문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맥콘빌 사건은 IRA의 주요 과거사 범죄 중 하나로. IRA는 1972년 아이 10명의 어머니였던 맥콘빌을 '영국 측 첩자'라면서 납치해 사살하고 시신은 해변에 암매장한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맥콘빌은 10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영국 군의 첩자라며 끌려나가 살해당하기까지 한 것이죠. 동네 주민이 맥콘빌이 다친 영국군인을 치료해준 것을 보고 IRA에 신고했고, 그게 첩자로까지 비화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IRA는 20년이 훨씬 넘은 1999년에야 맥콘빌의 죽음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지요. 북아일랜드 당국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맥콘빌은 영국의 스파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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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덤스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IRA와의 관계도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덤스가 맥콘빌 사건 당시 '정체불명'(The Unknowns)이라는 IRA 특수부대를 이끌면서 맥콘빌의 납치·살해·암매장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수십년 지난 후에까지도 법적 심판대에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IRA에 의해 실종된 사람들이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만큼, 이번 맥콘빌 사건 결과가 다른 사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듯합니다.
맥콘빌 사건이 40여년 만에 재조명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 생각나는 영화는 지난해 국내개봉됐던 제임스 마시 감독의 영국 영화 '섀도우 댄서' 입니다.
영화는 1973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시작됩니다. 여주인공 콜레트는 20년전인 어린 시절 남동생이 집 밖에 나갔다가 영국 군이 시위진압을 하며 쏜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을 경험했지요.
1993년 영국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를 감행하려다 실패한 한 여성이 영국 정보부 MI5에 끌려옵니다. 바로 콜레트이죠. 지난 20년 사이 그녀는 싱글맘이 됐는데, 먼저 떠나보낸 동생의 복수를 하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압력에 테러에 동원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조사하는 MI5 요원 맥으로 등장하는 클라이브 오웬은 아이를 명분으로 삼아 콜레트에게 영국의 정보원이 될 것을 강요합니다. 맥은 콜레트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 보고 싶으면 협조하라고, 특히 IRA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인 다른 형제들의 정보를 넘기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심하게 번민하는 콜레트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죠.
문제는 , 콜레트가 테러리스트가 되기엔, 그리고 첩자가 되기엔 너무나 연약한 그저 평범한 여자라는 점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콜레트는 , 아마도 잔인한 세월을 살아야했던 많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일 겁니다. 영화 속에서 새빨간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그녀의 위태로운 뒷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그 모습에서 진 맥콘빌이 겹쳐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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