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지하드의 봄

bluefox61 2014. 6. 18. 11:30

 미군 철수 3년만에 이라크를 내전 상황에 몰아넣고 있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의외로 우리와 인연이 깊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이름 , 김선일 때문이다.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일하던 삼십대 초반 청년 김선일이 극단 수니파 무장조직 '자마아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일신교와 지하드)'에 피납된 후 처참하게 참수된 시신으로 바그다드 인근 도로에서 발견됐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도열해 서있는 무장조직원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살고 싶다"고 울부짓던 모습이 공개된지 불과 며칠만이었다. 당시 만해도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벌인 전쟁 쯤으로만 여겨졌던 이라크 전의 참상이 갑자기 우리 사회 한가운데로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이 조직의 지도자 아부 무사 알 자르카위는 어찌나 극단적이고 잔악했던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조차 통제 불가능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마아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2006년 자르카위 사망 이후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이름을 바꿨고, 2013년 다시  ISIL로 재편됐다. 현재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명)는 2003년 이라크 전 발발 당시 성직자로 일하다가 무장조직에 가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활동 시기로 봤을 때 그가 김선일 피살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을 수도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폭발한지 3년만에 중동·아프리카가 이번에는 '지하드의 봄'을 맞고 있다. ISIL이 이라크와 시리아를 통합한 이슬람 국가건설 목표를 향해 파죽지세로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고 있으며,리비아에서는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타피가 처형당한지 3년 만에 무장조직들 간의 유혈 권력투쟁으로 내전 위기가 고조된 틈을 타 지하드 조직들이 세력을 급속히 키워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보코하람,알 샤바브,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를 비롯해 지난해 1월 알제리 천연가스 시설을 점거하고 대규모 인질사태를 일으켰던 '마스크를 쓴 여단' 등 수많은 지하드 무장조직들이 준동하고 있다.지난 6일 파키스탄  카라치의 진나국제공항에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무장조직'파키스탄탈레반(TTP), 최근 보 버그달 미군 병장과 탈레반 전사들 간의 교환석방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한번 과시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남아시아 '지하드 파워'를 보여주는 조직들이다. 쿠데타 주역이 민선 대통령으로 변신한 이집트에서도 민주혁명의 좌절이 지하디즘의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2014년 '지하드의 봄'은 '아랍의 봄'의 좌절이자, 조지 W 부시에서 버락 오바마로 이어지는 21세기 중동정책의 실패다. 지난 2011년 말 가까스로 이라크로부터 몸을 빼냈던 미국은 또다시 이라크 수렁 속으로 끌려들어갈 판이고,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와 아프간에 군인들을 파병했던 우리나라에까지 그 불똥이 튈지 알 수없는 일이다. 김선일 사건이 벌어진지 꼭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라크 지하디즘의 공포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