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에볼라와 윤리적 딜레마

bluefox61 2014. 8. 13. 11:29

 할리우드 영화 '딥임팩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른바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대상자를 선별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가 내놓은 기준은 이렇다. 우선 전국민 중 80만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단, 50세 이상은 아예 추첨대상에서 제외된다. 20만명은 인류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학자, 군인, 행정가 중에서 뽑는다. 이 두 가지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생명은 평등하다는 진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선 힘이 없다.

 

<미국인 의사 켄트 브랜틀리 박사>


 서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에볼라 확산사태는 역대 최대 사망자 규모로 뿐만 아니라, 전례없이 난해한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외신 보도 시점부터 그렇다. 사실 일부 외신들은 지난 봄부터 서아프리카의 심상치않은 에볼라 확산 실태를 꾸준히 보도해왔다. 그러다가 에볼라 기사가 폭증한 결정적 계기는 라이베리아에서 활동해온 미국 국적의 백인 의사 켄트 브랜틀리가 에볼라에 감염돼 위독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부터였다. 물론 서아프리카 3국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대폭 증가하고, 비행기로 나이지리아에 입국한 라이베리아 관리가 사망하면서 에볼라의 전세계 확산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시점이기는 했다.하지만 돈도 명예도 버리고 아프리카 환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미국 백인의사의 감동스토리가 없었더라도, 에볼라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이 지금처럼 폭발했을 것인지는 솔직히 알 수없다.


 

 미국인 의사와 봉사자가 에볼라 치료제 시약 지맵을 맞고 회복됐다는 외신기사를 보자마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지맵의 존재조차 모른채 죽어간  수백명의 아프리카 환자들, 그들을 돌보다 에볼라에 감염돼 목숨을 잃은 수 십명의 아프리카 의사 , 간호사들이 가슴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미국 정부가 준 돈으로 치료제를 개발했으니, 미국인이 먼저 맞는게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가격차이가 존재하는게 현실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질문은 던질 수있다. 최대 치사율 90%에 이르는 에볼라 치료의 유일한 희망인 시약을 언제, 누구에게 투여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려야하는가.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에볼라 치료제 시약의 사용을 이례적으로 허용했지만, 미국 정부와 제약사들은 임상실험을 통해 성능과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볼라 치료제의 조기공급에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국에서 비밀리에 온갖 치료제 시약의 임상실험을 했던 거대제약사들의 비리를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미 정부와 에볼라 치료제 개발 회사들의 '신중한 자세'는 책임 모면과 이중적 태도로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에볼라 사태에서 보듯, 세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풀어내야할 윤리적 딜레마 역시 점점 더 난해해지고 있다. 쉽게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윤리적 딜레마는 사실 '정의'의 문제와 직결돼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꺼내 읽어봐야 겠다. 

 

 

 

 세계보건기구(WHO) 가 12일 임상실험을 하지 않은 에볼라 치료제 시약의 사용을 이례적으로 허용했지만, 미국인 환자 2명에게 효과를 나타낸 지맵 시약 생산량은 이미 완전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맵바이오제약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 서아프리카의 한 국가에 지맵 시약을 제공하면서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분량이 모두 소진됐다"고 발표했다. 지맵 신약은 지금까지 미국인 의사 켄트 브랜틀리와 봉사자 낸시 라이트볼, 그리고 12일 사망한 스페인 신부 미겔 파하레스 등 총 3명에게 투여됐다. 나이지리아의 루이스 브라운 공보장관은 " 미국식품안전국(FDA)를 접촉해 지맵시약을 받기로 했다"며 " 에볼라 감염환자 2명에게 이 시약을 투여하기 위해 이미 서면동의서를 받아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지맵을 투여받는 환자 2명은 모두 의사라고 보도했다. 라이베리아는 에볼라 환자를 돌보다 감염돼 사망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급증하면서 심각한 의료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에볼라에 감염돼 사망한 의료진은 최소 60명에 이른다.
 지맵과 관련한 각종 발표와 외신보도들을 종합해볼 때, 맵바이오제약사가 지금까지 생산해놓은 지맵 신약은 고작 5회 분량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맵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쥐의 항체를 접목한 담뱃잎을 성장시켜 추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생산기간이 최소 7∼8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맵 이외의 에볼라 치료제 시약의 분량이 어느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파델라 차이브 WHO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시약)공급량이 10여 회분도 안될 정도로 매우 소량"이라면서 "따라서 시약을 누구에게 투여할지, 시약을 사용하는게 과연 윤리적인지 등에 대한 토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약의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지맵 이외의 에볼라 치료제로는 캐나다 테크미라사의  TKM-에볼라 등 10여개가 있으며, 모두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캐나다 정부는 자국의 국립미생물연구소가 개발한 에볼라 백신 시약 800∼1000회 분량을 WHO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12일 공식발표했다. 이 백신 역시 아직 임상실험을 하지 않은 단계이다. 백신은 건강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사전예방하는 것이기때문에 이미 감염된 에볼라 환자와는 무관하다. 
 WHO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에볼라 감염환자는 11일 현재 총 1848명, 사망자는 1013명을 기록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3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기니비사우, 코트디부아르 등은 인접국인 기니 및 라이베리아로부터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이될 것을 우려해 12일 국경을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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