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스코틀랜드와 영국, 운명의 날이 밝았다

bluefox61 2014. 9. 18. 11:30

 

 

 307년동안 유지돼온 영연방(그레이트브리튼)체제의 운명을 가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18일 오전 7시(한국시간 18일 오후 3시)부터 스코틀랜드 전역 5579개 투표소에서 시작된다.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16세 이상 유권자들은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가 돼야하는가'란 단 한 개의 문항에 대해 찬성과 반대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된다. 유권자 441만288명 중 무려 97%에 해당하는 428만 5223명이 유권자등록을 했기 때문에, 이번 주민투표는 스코틀랜드 선거 역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는 오후 10시에 끝나며, 개표 윤곽은 이튿날 오전 2시∼4시쯤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로이터, BBC,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독립찬성과 반대율의 격차가 근소한데다가 전례가 없는 투표인 만큼 명확한 개표결과는 19일 오전 6∼7시(한국시간 19일 오후 2∼3시)쯤이 돼야 알 수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표 개시를 몇시간 앞둔 17일 오후 발표된 최종 여론조사에서는 모두 분리독립 반대가 찬성을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소모리 조사에서는 독립반대 51%, 찬성 49%로 찬반 격차가 2%포인트에 불과했다.  패널베이스 조사의 경우 독립반대 52% 대 찬성 48%, 서베이션 조사는 독립반대 53% 대 찬성 47%로 나타났다. 1707년 잉글랜드에 합병됐던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여부는 투표율 50%를 넘을 경우, 표가 많은 쪽(simple majority) 이 승자가 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스코틀랜드 주민투표 이후 일정>
 ▶분리독립 가결 시
 19일 영국과 스코틀랜드 정부의 협상팀 구성 개시
 18개월동안 분리독립 조건 협상 (핵심이슈는 북해유전, 파운드화, 국방,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 등)
 2016년 3월 24일 스코틀랜드 독립 공식 선언

   2016년 5월 총선
 
 ▶분리독립 부결 시
 19일 영국 정부,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 계획 발표
 11월말까지 영국 정부, 정당,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간 자치권 확대 방안 논의
 2015년 1월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 법안 의회 상정 및 표결


 개표결과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 결정되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와 영국 정부는  18개월동안 이른바 '이혼조건'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양측은 최대 이슈인 북해유전 소유권 이전과 파운드화 사용 문제부터 조세, 국방, 유럽연합(EU) 회원국 지위,외교, 국가연금,분리독립시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갚아야하는 부채 230억 파운드(약39조 원) 등 수많은 이슈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우편체제, 전화번호, 자동차번호판, 인터넷 국가도메인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슈까지 합치면 양측이  합의할 사항은 산더미이다. 지난 1993년 1월 공식 분리를 선언했던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경우 약 30개의 조약과 200개가 넘는 법적 협약을 체결했고, 이후에도 10년넘게 추가 협상을 진행해야했다. 

 분리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2016년 3월 독립을 공식선언한다는 것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아 '질서있는(orderly) 분리독립'이 불가능해지면 폭력적인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반대로 분리독립이 부결될 경우, 영국 정부는 19일 스코틀랜드에 보다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계획을 공식발표하고, 11월말까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와 합의한 후 2015년 1월말쯤 관련법안을 의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방, 외교를 제외하고 스코틀랜드의 조세권, 정치적 자치권 등이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알렉스 새먼드 수반은 이에 대해 "독립을 원하는 스코틀랜드인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18일 투표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하원의원은 17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찬성 결과는 '정치적 아마겟돈(종말의 날)'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RIP(Rest In Peace,'명복을 빈다'은 뜻의 묘비명)?'란 제목의 최근호(13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이 좌절된다하더라도 영국의 국제적 위상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가디언은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를 계기로 영국 내에 잠자고 있던 민족주의가 폭발하면서 갈등이 격화될 수있다고 내다봤다.

 

 18일 스코틀랜드 주민투표 결과에 정치적 생명이 달려있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데이비드 캐머런(48) 영국 총리와 알렉스 새먼드(59)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다.
 좌불안석인 쪽은 아무래도 캐머런 총리다. 그는 17일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정말 떨어져나가게 될까봐 한 밤중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BBC, 가디언 등은 지난 2010년 집권한 보수·자민당 연정은 물론 캐머런의 정치 생명이 19일 아침에 판가름이 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투표 결과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이 결정돼도 캐머런 총리가 사퇴해야할 법적 책임은 없다. 하지만 한 하원의원은 17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분리독립 결과가 선언되면) 캐머런이 (총리직에서) 채 1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은 19일 오전 총리관저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새먼드 수반은 캐머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골수 민족주의자인 그는 2007년 총선과 2011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최고수반이 됐다. 특히 2011년 총선 당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공약으로 내세워 승리한 후 캐머런 영국 총리와 약 2년에 걸친 신경전 끝에 주민투표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정치적 도박꾼이자 수완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숙원을 성취할 경우, 2016년 5월 치러지는 총선에서 새먼드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하지만 부결돼도, 그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원래 스코틀랜드 총선은 1998년 제정된 스코틀랜드 선거법에 따라 4년에 한번씩 치러지도록 규정돼있다. 그런데 문제는 2010년 5월 영국(연방)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자민 연정 정권이 다음  총선 날짜를 2015년 5월로 정하면서 발생했다. 영국 총선은 통상 5년마다 한번씩 치러지면, 총리가 조기총선을 선언할때는 앞당겨 치러질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는 보수-자민연정의 총선일정에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2007년 이후부터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각각의 총선을 같은 기간에 치르지 않기로 합의했기때문이다. 갈등이 생기자, 양측은 협의를 거쳐 지난 2011년, 스코틀랜드의 다음 총선을 2016년 5월 5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하고, 관련법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가 통과시켰다)  영국 정부로부터 더 많은 정치적, 경제적 자치권을 얻어낼 수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논란과 혼란을일으켜놓고도 분리독립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자치정부 수반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을 수는 있다. 이번 투표에서 '독립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다음 총선에서 SNP와 새먼드에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17일 인디펜던트는 "새먼드 수반도 북해유전의 석유매장량, 복지재정 부담, 파운드화 사용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먼드 수반도 알고 있다"면서 " 새먼드도 속으로는 분리독립 부결을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