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유럽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반이민주의'

bluefox61 2014. 12. 12. 11:46

 

 

 지난 3일 스웨덴의 중도좌파 연정이 붕괴됐다. 극우 반이민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2015년도 정부 예산안을 부결시키면서,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소수 연정은 출범한지 불과 3개월만에 무너져버렸다.
 경제위기 이후 유럽에서 반이민주의가 득세하면서 각국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유럽에서 극우주의,인종주의가 확산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들어서는 반이민주의가 결합하면서 기성정치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5년 유럽 정치에서 반이민주의가 핫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영국이다. 내년 5월 총선이 치러지는 영국에서는 반이민주의를  핵심정책으로 내세운 극우 영국독립당(UKIP)이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1위를 차지한데 이어 크고작은 선거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11월 말, 영국독립당은 로체스터 선거구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했다. 영국독립당의 마크 레클러스 후보는 원래 보수당 소속 현직 하원의원이었지만, 보수당의 소극적인 이민정책을 반발하면서 탈당한 인물이다. 영국 정치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총선에서 영국독립당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독립당 쪽으로 기우는 표심을 잡기 위해 잇달아 이민규제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영국에 유입된 이민자 수는 26만 명을 돌파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17년간 영국에 유입된 비유럽 이주민을 위해 들어간 혈세가 1200억 파운드(약 164조원)가 들어갔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최근 들어 경제상황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이민자들과 일자리 경쟁을 벌어야 하는 영국 국민들에게는 분통터질 만한 일인 셈이다. 지난 11월 28일 캐머런 총리는  "영국에서 최소 4년을 거주해야 이민자들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민자들이 6개월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강제 출국시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당초 최대 6개월이던 유럽연합(EU) 이민자에 대한 실업·육아수당 지급 기간을 3개월로 축소할 방침이라며 "영국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인 셈이다. 캐머런 총리는 매년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도 대폭 감축할 계획으로 있다.

 


 유럽에서는 그나마 경제상황이 가장 양호한 독일에서도 반이민주의가 또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캐머런 영국 총리의 이민규제가 노동력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EU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최근들어 동부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이주민 배척을 부르짓는 시위가 확산되는 추세이다. 지난 10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이 시위는 독일에서 종종 볼 수있는  극우, 신나치 시위와는 차별화되고 있다. BBC 등에 따르면, 이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즉, 이슬람계 이주민의 과다한 유입으로 인해 독일적 가치와 제도가 위기에 직면해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수백명 수준이었던 시위는 최근들어 1만명 안팎으로 늘었으며,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뒤셀도르프, 뮌헨 등에서도 유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언론들은 전했다.
 독일은 EU회원국 중 이주민유입이 가장 많은 국가이다. 2012년에만 59만 2175명이 유입됐다. 시리아 등 비유럽권 이주민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주민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경계심이 높아지자, 보수 우파 정당인 기독교사회당(CSU)는 이민자에 대한 독일어 의무 사용 강화방안을 최근 내놓았다. 이민자들이 학교, 관공서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독일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제안’수준이지만, 집권 기독교민주당(CDU)의 자매정당인 CSU의 이같은 발상은 이민 문제에 대한 독일 정계 일각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반이민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마린 르펜 당수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최근 정계에 복귀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중운동연합(UMP) 당수를 넘어서는 인기를 누리며 2017년 대선 승리를 노리고 있다. 캐머런 정부가 영국독립당을 견제하기 위해 반이민주의적인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는 것처럼, UMP 역시 이민규제정책을 놓고 국민전선과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연합(EU) 탈퇴론과 반이민 정책을 내걸고 있는 북부연맹의 마테오 살비니 당수의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다. 북부연맹은 최근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에 패배하기는 했지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포르차(전진) 이탈리아’당보다 앞서는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내년 3월 스웨덴 조기총선에서도 소수연정을 붕괴시킨 주범인 스웨덴민주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높다.스웨덴민주당은 지난 9월 총선에서 직전 총선보다 두 배 많은 13%를 득표해 전체 349석 가운데 49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3당으로 떠올랐다.

 유럽 각국이 쏟아져들어오는 이주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주민은 ‘문제’거리가 아니라 ‘자산’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2014년도 국제이민’보고서에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이민자와 국가 모두) 윈-윈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가 성공사례로 제시한 국가는 바로 독일. OECD 통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독일에 정착한 이주민은 약 39만 9900명을 기록했다. 유럽연합(EU)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가 같은해 독일 내 이민자 인구를 59만 2175명으로 집계한 것보다는 적은 규모이다. OECD는 2007년만 해도 독일에 들어온 이주민 수가  23만2900명에 그쳤으나 5년 만에 71.7%가 늘어나 OECD를 포함한 주요 44개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풍부해진 노동력 덕분에 독일 경제가 혜택을 입었고, 장기적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서는 지적했다. 
 OECD에 따르면, 이주민들은 국가 재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7개 국가의 이주민 가구 소득과 지출을 분석한 결과, 22개 국가에서 이주민이 거주국가의 사회복지 재정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 컸다는 것이다. 반이민주의자들은 이주민이 국가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이민자들은 소비와 세금을 통해 정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하지만 ‘복지관광’ 규제는 이미 유럽 각국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11월  유럽사법재판소는 복지혜택을 노리고 부유한 EU 국가로 이주하는 ‘복지관광’에 철퇴를 내렸다. 독일에 거주하는 루마니아 여성이 실업급여 지급을 거부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부의 결정이 정당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소는 "경제적으로 불능상태에 놓인 EU 시민들이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나라로 이주할 경우 해당국은 복지혜택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EU 집행위원회도 "EU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서 회원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공짜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판결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