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볼티모어의 비극

bluefox61 2015. 5. 1. 11:30

미국 볼티모어 폭동사태를 불러일으킨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가 평생 납중독에 시달려 고통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볼티모어는 물론 미 전역 흑인 빈민층의 열악한 거주환경과 ‘빈곤의 악순환’ 실태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납중독은 집중력 저하, 과잉행동장애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납중독 아동의 자퇴율이 비중독 아동에 비해 7배나 높으며, 범죄율은 6배나 높다는 통계도 있다. 출생 직후부터 납에 중독됐던 그레이 역시 집중력 저하로 인한 학업부진으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고,폭행과 마약 복용 등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며,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어 가난하게 살다가 결국 짧은 생을 마쳐야했다.
 

그레이가 태어나 자란 볼티모어의 샌드타운-윈체스터 지역은 납중독으로 악명높은 곳이다. 수십 년전 집주인들이 가난한 흑인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을 지으면서 값싼 첨가제인 납이 사용된 페인트로 집 안팎을 칠했기 때문이다.

 


30일 워싱턴포스트(WP)보도에 따르면, 1989년 8월 이 곳에서 태어난 그레이는 생후 9개월 때 이미 혈중 납 농도가 1데시리터당 10마이크로그램이었고, 생후 12개월 때는 30마이크로그램, 22개월 때에는 37마이크로그램이었다. 당시 납중독 기준은 20마이크로그램이었다. 현재 기준은 5마이크로그램이다. 그레이가 지난 2008년 집 주인을 상대로 제기한 피해 보상 소송기록에 따르면,그레이는 오래 전 칠해놓은 납페인트가 떨어져나가 바닥에 나뒹구는 집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해야만 했다.
 

‘아동 납중독 종식을 위한 연맹’의 루스 앤 노튼 대표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993년 볼티모어에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1만 3000명의 아동이 납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금은 3만 명으로 늘어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지난 2012년 한 조사에 따르면, 볼티모어 빈민가의 0~6세 어린이 중 납중독자 비율은 시 평균(약  1%)보다 7배나 많은 7%로 확인됐다.현지 변호사 사울 커펠만은 WP와의 인터뷰에서 " 지난 30여년 간 납중독 소송만 4000건을 맡았는데 의뢰자의 99.9%가 흑인이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 시와 메릴랜드 주 정부도 납중독의 심각성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주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납중독 피해자는 약 9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납중독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가난한 흑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납페인트를 벗겨내고 안전한 새 페인트로 칠할 돈이 없다는 점이다.


시 정부 역시 납 페인트 주택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주택단지를 개발할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뉴욕타임스는 30일 현지 르포기사에서 볼티모어 빈민가의 수많은 흑인들이 현재도 납중독증을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을 대물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은 이 지역 흑인 젊은이들의 건강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인도, 중국 대도시 젊은이들보다 더 나쁘며,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볼티모어 폭동은 빈민가 출신의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살해된 것을 계기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지난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서 죽인 백인 경찰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일어난 미주리주 퍼거슨 시위사태와 흡사하다.하지만 볼티모어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은 이번 폭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퍼거슨 식의 흑백 인종갈등보다 빈부 갈등으로 보고있다. 


볼티모어 지역에서 30여년간 활동해온 언론인 마이클 플레처는 28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퍼거슨과 달리 볼티모어는 시장, 시의회 의장,경찰청장, 수석 검사 등 핵심 공직자들이 모두 흑인이며, 3000여명의 경찰 중 절반이 흑인이고, 흑인 기독교 사회와 시민운동이 활발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볼티모어는 퍼거슨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수십년간 볼티모어가 미국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심각한 빈곤, 범죄, 절망에 빠져있었다는 점에서 "폭동사태는 시간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연방수사국(FBI),인구통계국 등에 따르면 프레이 그레이가 거주했던 볼티모어 빈민가 지역은 메릴랜드 주에서 교도소 복역인구 비율이 가장 높고,실업률이 시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으며, 중간 가계소득이 시 평균보다 1500달러 이상 적다. 헤로인에 중독된 주민 비율은 미 전국에서 가장 높다. 


가내 폭력발생률도 시 평균보다 50% 높고, 살해사건 발생률은 배이상 높다. 볼티모어에서 올해 발생한 살인사건 68건 중 대부분이 빈민가에서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8일 백악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볼티모어 사태에 대해 "가난과 마약, 공공투자의 부족 등이 볼티모어 주민과 경찰 간의 신뢰를 침해해왔다"면서 "일부 경찰도, 일부 지역도, 미국도 어느 정도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배경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미국이 "느리게 움직이는 위기(slow  rolling  crisis)"에 직면해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폭력시위자와 약탈범들에 대해  "범죄자이자 폭도"로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