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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그리스를 가다

bluefox61 2015. 7. 9. 07:45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굽듯이 , 느닷없이 4박 5일 그리스를 다녀왔습니다.

 

첫 인상은? 물론 국민투표를 앞두고 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래도 평온해 보였습니다.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온갖 물건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떨이판매하던, 우리의 IMF 체제 때와는 분명히 다르더군요. 그게 그리스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GREEK LIFE'는 위기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아테네에 왔으니 문화재 구경은 좀 하고 가야지요. 할 수밖에 없는게, 눈돌리면 사방이 고대 그리스 문화재더군요. 호텔에서 슬렁슬렁 걸어가면 파르테논 신전, 시장 거리 걷다 보면 나오는게 아고라, 택시타고 지나가다 보면 제우스 신전 ...뭐, 이러니까요. 참, 지나가다 뜩 나오는게 고대 올림픽 경기장... 이렇더군요.

 

아테네를 다녀오신 분도 많겠지만, 주마간산 식으로 본 아테네의 모습들을 올려 봅니다.

  

아테네의 한산한 뒷골목 풍경.

 

아테네에서 흔하게 볼 수있는 중소규모의 호텔.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어서, 호텔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완만한 언덕길. 흔하고 흔한 것이 대리석이라,  대리석으로 포장돼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입장권 판매소 앞에 있는 아레오 바고. 사도 바울이 올라가서 연설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 여기까지 오셨었네요. 그것도 여러번이나... 명판에 당시 연설한 내용이 적혀있는데, 그리스 어를 모르니 패스~~

 

아레오 바고에서 내려다 본 그리스 시내의 모습. 멀리 보이는 산들은 모두 나무가 없는 돌산입니다. 높은 건물은 고도제한과 화산때문에 거의 없습니다. 왼쪽 귀퉁이 왠지 범상치않은 신전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메라 렌즈를 좀 땡겨봅니다.

 

 

멀리 보이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신전. 파르테논보다 먼저 세워졌다는데 보존상태가 굉장히 좋아보이죠. 그 앞에 있는 공터 비슷한 것이 고대 아고라입니다.

 

 

 

매표소 앞에 널부러져있는 떠돌이 개. .. 관광객들도 별 신경안쓰고, 개도 관광객이 옆을 지나든 말든 무신경합니다. 그리스에서는 개도 '그릭 라이프'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바로 아래에 있는 헤로테스 아데쿠스 음악당. 관중석은 재건된 것이라고 하네요. 조수미도 여기서 공연한 적이 있답니다.

 

 

프로필라이아. 아크로폴리스 성역으로 들어가는 관문

 

문을 통과하면, 짜잔~ 파르테논 신전

 

방금 전 통과한 문을 안에서 바라다본 모습

 

에렉티온 신전. 아테네의 영웅 '에렉토니우스'의 이름을 딴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처럼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자태가 눈길을 끕니다. 도리아식이 가미된 이오니아 양식의 건축물로 '아테나 신실'과 '포세이돈 신실'을 갖추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곳중의 하나. 그 유명한 6명의 여신들이 기둥이 돼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모조품. 5개는 박물관에, 1개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하네요.. 돌려달라는 그리스의 오랜 호소를 영국은 외면하고 있죠.

 

 

파르테논 신전이 착시현상을 이용해 안정감을 주는 방식으로 건축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정말 위대한 민족일세 .

 

전망대에 휘날리는 그리스 국기.

 

지붕 꼭대기에 있는 조각상. 저기서 2500년동안 세상을 내려다 보았을 건장한 남신과 말님.

 

기둥 안쪽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안으로 홈이 파인부분과 돌출된 부분이 맞물리도록 돼 있나 봅니다.

 

신전의 대리석 벽. 대리석이 무른 돌이기는 하지만 참 깔끔하게 잘라 쌓았네요. 하긴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수천년전 피라미드와 신전을 지었지요.

 

국립아테네대 .지금은 기둥만 남은 신전의 본래 모습을 상상해볼수있네요.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돼있어요.

대학이라기보다는 왠지 '아테네 학당'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듯한 느낌...

 

대표적 쇼핑가인 플라카 지역의 모나스트라키 거리

 

모나스트라키 거리란 이름을 붙게 만든 그리스 정교회 교회(모나스트리)

 

인근의 로마시대 아고라.고대 아고라보다는 후대 것.

 

 

한산한 뒷골목을 걷다가 만난 이름 모를 예배당.

 

생전처음 보는 신기한 모양의 나무. 야자수도 아니고.. 너는 뭐냐? 참으로 요상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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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그리스를 가다>

 지난 7월 6일 오후 4시, 피부가 따가울정도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 1번지 신타그마 광장 인근의 한 건물 앞에서 난데없이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 기자가 한국 재무부도 아닌 그리스 재무부 건물 앞에서 뻗치기 취재라니. 건물 앞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기자들이 벌써 몇시간째 정문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오매불망 건물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 아니, 몇시간 전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으니 전 재무장관이다. 하루 전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61%가 채권단의 구제금융 조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시리자 정부 내 강경파 중의 강경파인 바루파키스의 사임은 충격적인 뉴스였다. 바루파키스는 유로존의 다른 회원국 장관들로부터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최대 장애물이란 비난까지 받아왔던 인물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만큼이나 논쟁적인 바루파키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리스는 물론 전 세계의 관심사가 돼왔다. 그랬던 인물이 국민투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을 심상치 않은 사건이다.
 
 바루파키스를 눈 앞에서 놓친 사연
 
 재무부 건물 앞에는 검은 오토바이 한 대와 자동차 한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경호원인 듯한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바루파키스가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루파키스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정문을 나서 오토바이에 올라타기 전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현장에 모인 모든 기자들의 관심사였다.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의 갈등설에 대해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바루파키스를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끼리 수다가 시작됐다. 페트로스란 이름의 인상좋은 그리스 기자가 내게 말을 붙였다. "너 ,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지.""한국 사람들도 그리스 국민투표에 관심이 있냐?" "너, 한국도 구제금융 받았던거 모르냐?" "아, 그래?""구제금융을 받는다는게 뭔지 한국국민들은 그리스 국민만큼이나 잘 알아. 그래서 그리스는 한국에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은 뉴스야. 국민투표 결과가 오늘 우리 신문 1면 톱인걸." 서글서글한 성격의 페트로스가 주변의 또다른  기자들에게도 말을 걸었다. 한 명은 스페인,또 한명은 아일랜드에서 왔단다. 구제금융사태를 겪은 그리스, 한국, 스페인, 아일랜드 기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앞에 쭈그리고 앉은 기자는 그리스에 대한 추가지원을 반대하는 독일 출신이다. 마이크를 손에 쥔 프랑스 F1 TV 기자는 방송사 기자답게 꽃미남이다.
 페트로스와 수다가 이어졌다. 바루파키스의 사임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 추가 구제금융 협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치인은 상대방과 유연한 자세로 대화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바루파키스는 좋은 경제학 교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정치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좀처럼 끝날 것같지 않은 그리스 경제위기를 어떻게 생각하는 질문에는 지극히 그리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 그리스에서는 비극을 코미디라고 불러. 인생도 그런 것 아니겠어. 그래서 이 비극적인 상황이 한 편의 코미디같은 느낌이야."
 한창 수다를 떠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바루파키스가 정문으로 나오지 않고 뒷문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가장 먼저 건물 뒷쪽으로 뛰어갔다. 아테네에서 뻗치기까지 했는데 바루파키스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직접 볼 수있는 기회를 놓칠수는 없다. 건물 뒤로 뛰어가니 , 이미 바루파키스는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있었다. 까치발을 해도 보이는 것은 바루파키스의 오토바이 헬멧 꼭대기 뿐. 아마도 건물 뒤편에 또다른 오토바이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야니(야니스의 애칭)’를 외치면서 한 마디만 해달라는 기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바루파키스는 끝까지 입을 꼭다문채 오토바이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비록 바루파키스의 마지막 일성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채권단을 향한 비판을 솔직하게 쏟아냈던 지금까지의 바루파키스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그리스 정국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있었다는게 뻗치기 취재의 성과라면 성과였다.
 
 ‘반대’는 곧 ‘자존심’이라는 그리스 국민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그리스 국민투표 취재를 위해 지난 7월 3일 12시간이 넘는 기나긴 비행 끝에 아테네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터키 항공기의 작은 창문을 밖을 내다보면서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그리스에서 제대로 취재가 이뤄질 수 있을지 불안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국은 여기에 이렇게 왔구나.’ 지난 2010년부터 5년넘는 시간을 그리스 경제위기를 추적하면 지내온 끝에 드디어 그 현장을 직접 보게 됐다는 가벼운 흥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리스 경제난이 결국엔 전 세계 기자들을 불러모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야 말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왔기 때문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로 들어서마자, 은행거래가 중단된 그리스의 현실이 실감됐다. 정부가 은행 인출액을 하루 60유로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을 무료화한 것이었다. 덕분에 공짜 지하철을 타게 됐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그리스에서의 첫 날밤을 시차때문인지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국민투표에 대한 그리스 보통 시민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사실  아테네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 중 채권단의 혹독한 구제금융 조건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민심은 ‘오히(반대)’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오히’표를 던지겠다는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그리스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난 5년동안 그리스 국민들을 극심한 고통 속에 몰아넣은 채권단에 "이제는 더 이상 안된다"는 의지를 전하기 위해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반대’의견이 압도적이고, 노년층은 ‘찬성’이 많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나이구분없이 ‘반대’표를 찍겠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50대 여성 연금생활자는 "이제는 채권단에 ‘싫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가 됐다"고 말했고,  70대 할아버지 역시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하면 그리스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겠지만, 더이상 (채권단에) 순종하지 않겠다"며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사람은 플라카 시장에서 만난 70대 마리아 할머니였다. 그는 낯선 외국 기자를 붙잡고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채 " 그리스는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국가"라면서 " 그동안 무조건 ‘예스’만 해오다가 국민들이 따귀를 맞았다"고 말했다. 채권단에 대한 ‘반대’가 곧 ‘애국’ ‘국가적 자존심’을 의미하게 된 상황에서, 국민투표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비극 속에서 이어지는 ‘그리스적 삶’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궁금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예상보다 평온해보이는 아테네 시민들의 일상이었다.이전보다 불경기라지만, 시내 카페에서는 차가운 와인과 가벼운 식사를 즐기려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있었다. 우리의 구제금융사태 때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바람에 온갖  물건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땡처리’표지판을 달고 팔렸던 그런 모습은 아테네에 없었다. 물론 거리의 ATM 기계 앞에서 60유로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선 모습이나, 쓰레기 통을 뒤지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적 쉽게 볼 수는 있었다. 거리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한 푼만 달라는 걸인을 세 명이나 만나기도 했다.이주민과 저소득층이 많이 모여다는 오모니아 지역에서는 배가 고픈탓인지, 아니면 약에 취한 탓인지 대낮에도 길바닥에 쓰러져 잠든 청년도 만났고, 쓰레기 통을 뒤져 누군가 먹다 버린 음식을 들고 먹는 젊은 여성을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그리스 인들은 가능한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그것이 ‘그리스적’인 삶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아테네에서 만난 한 노인이 이야기했듯이 "찬란한 태양, 푸른 하늘과 바다가 공짜인 한 ", 삶은 그래도 견딜만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