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독일 정부 대 미술계 ..정면충돌

bluefox61 2015. 7. 24. 05:46

독일 미술계와 정부가 현대미술품 해외판매 제한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수백년된 골동품뿐만 아니라 저명한 생존작가의 작품까지도 ‘국보’로 간주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술계에서는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며 법 제정을 반드시 막겠다는 입장이다. 수집가들은 소장품들을 유럽의 다른 국가로 옮기느라 벌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화랑업자들이 공동명의로 문화부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독일 미술계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노르트라인베스팔렌 주정부가 쾰른에 새 국영카지노를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앤디 워홀 작품 2점을 뉴욕 크리스티 경매시장에 내놓아 매각한 일이었다. 주정부 소유였던 두 작품은 가수이자 영화배우였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트리플 엘비스(1963년작)’와 영화 배우 말론 브랜도의 청년시절 이미지를 4번 반복해서 묘사한 ‘4명의 말론(1966년작)’으로, 경매에서 예상가를 크게 웃돈  8190만달러(약 944억 원)와 6960만달러에 각각 팔렸다.


당시 문화부는 주정부가 아무런 사전고지도 없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을 해외에 매각했다는 사실에 발끈했고,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 법 제정을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모니카 그뤼터스 문화장관은 최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너차이퉁(FAZ)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적으로 가치있는 문화 자산이 당국도 모르는 사이에 해외로 팔려나가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젤리츠


독일 현지언론들과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문화부는 제작된지 50년이 넘은 15만 유로(약 1억 9000만원)이상 가치의 미술품을 해외매각할 경우 중앙 정부 또는 각 지방정부의 해당 기관에 미리 통보해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법을 추진 중이다. 해당 기관은 해외판매를 허가할지, 아니면 불허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국가의 소장가에게 팔 경우에도 법이 적용된다. NYT는 그뤼터 장관이 오는 8월쯤 이 법을 각료회의에 정식을 상정,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프랑스,영국은 현대미술품의 해외매각을 규제하는 법을 이미 가지고 있다. 독일 역시 미국 등 유럽 밖으로 미술품을 가지고 나가 판매 또는 대여할 경우엔 사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해외판매 금지 작품으로 이미 2000여점을 지정해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로의 판매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선 경우는 독일이 처음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문화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가장 발끈하고 나선 사람들은 저명화가들이다. 독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화가 중 한 명인 게오르그 바젤리츠(77)는 최근 드레스덴에 있는 국립 알버티눔현대미술관에 장기 대여했던 자신의 회화작품 9점과 조각상을 모두 회수버렸다. 정부가 작가의 작품판매권리를 억압하는데 대한 항의표시이다. 바젤리츠를 위해 미술관의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내줬던 알버티눔 측은 작품들이 철거되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지난 2012년 당시 생존화가의 작품으로는 최고경매기록을 세웠던 게르하르트 리히터(83) 역시 최근 드레스덴모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물론 그 누구도 내게 작품판매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권리가 없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1950년 사망한 독일 표현주의미술의 대가 막스 베크만의 후손들은 국립라이프치히현대미술관에 장기대여해준 작품들의 회수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일부 수집가들은 룩셈부르크 면세구역에 있는 시설로 서둘러 작품을 옮겨놓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뤼터스 장관은 FAZ와의 인터뷰에서 해외판매 규제 대상이 되는 작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독일 현대미술품 거래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주장했다. 또 규제 기준을 70년 이상으로 상향조정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나 화랑업자 300여명은 최근 그뤼터스 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정부는 제3제국(나치정부)과 공산정권이 유대계 소장가들의 작품을 강제몰수했던 만행을 연상케하는 발상을 당장 중단하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