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9.11 드라마 논란

bluefox61 2006. 9. 11. 20:28

9.11테러가 발생한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무능하고 방향잃은 대테러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 TV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편 때문에 미국 정계 안팎이 시끌하다.

문제의 드라마는 10, 11일 ABC TV를 통해 이틀간 전국방송되는  <9.11로 가는 길>(사진). 9.11테러를 소재로 한 사실상 최초의 TV 드라마란 점 때문에 제작단계와 방송 전부터 숱한 관심과 구설수를 불러일으켜왔던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FBI 반테러 전문가인 존 오닐(하비 카이텔)을 중심으로 9.11테러 전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해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잡기위한 일선 정보관계자들의 노력이 좌절되는 일련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그리고 있다.



제작진은 9.11테러 조사위원회가 방대한 보고서를 충실히 반영해 이 드라마를 만들었음을 강조하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판단착오로 정부관리들이 체포작전을 막판에 취소했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 새뮤얼 버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빈 라덴 체포를 사실상 포기해버림에 따라, 결국 9.11테러란 엄청난 사건을 초래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 주장이다. 

특히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을 겨냥한 테러 음모를 꾸미고 있는 동안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르윈스키 섹스스캔들을 무마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제대로 국정을 돌보지 못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9.11테러 5주년을 앞두고 방송되기 시작한 이 드라마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의 관료들은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근 한 연설에서 “9.11테러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기초로 했다고 주장할 것이라면 ABC는 최소한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전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버거 전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드라마는 마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들과 북부동맹(아프간 반군조직) 지도자들이 손잡고 빈라덴 체포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데 그런 작전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며 ‘완전한 창작’임을 강조했다. 

클린턴 재단 관계자들은 최근 ABC의 모기업인 디즈니의 로버트 아이거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보낸 편지에서 “국가적인 끔찍한 비극에 관해 미국민들을 오도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9.11로 가는 길>이 “역사를 허구로 다시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주의적 지식인들도 이 드라마가 9.11의 책임을 클린턴 행정부에게 돌림으로써 부시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주장을 일제히 제기하고 있다.


제작진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9.11테러 조사위원회의 보고서, 개인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만든 드라마이지 다큐는 아니다”라며 “9.11 자체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이번 드라마가 또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한 여유있는 자세를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극 보수주의 방송인으로 유명한 러쉬 림보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 드라마를 극찬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한편,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미국 방송사들은 다양한 관련 다큐멘터리 등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이중 무역센터 붕괴로 인한 뉴욕의 심각한 대기오염 실태를 고발한 <먼지로부터 먼지로(Dust to Dust)>가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선을 끌었다. 

선댄스채널을 통해 10일 방송된 이 작품은 테러 당시 쥴리아니 뉴욕시장과 환경보호국이 대기오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무역센터 붕괴 때문에 벤젠, 카드뮴, 납 등 무려 2500개 이상의 유해성분이 섞인 대기에 뉴욕 시민들이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폭로했다. 특히 테러 직후 제대로 된 안전장비없이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10일 PBS를 통해 방송된 <미국 재건하다; 그라운드 제로로 되돌아가기>도 캔사스주 시골마을에서 4층 이상의 건물은 본적없는 청소년들이 버스를 타고 그라운드 제로까지 여행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내용으로 시청자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