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 이야기

앤소니 밍겔라, 아서 클라크 세상과 작별하다

bluefox61 2008. 3. 19. 20:45

영국 문화계의 두 별이 떨어졌다. 한사람 18일 너무 이른 54세 나이에 눈을 감은 영화감독 앤서니 밍겔라이고, 또 한 사람은 이튿날인 19일 9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SF작가이자 예언자인 아서 C 클라크이다. 활동 분야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글과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앤소니 밍겔라


영국 영화계는 앤서니 밍겔라가 한창 왕성히 활동할 나이에 사망한 점에 큰 충격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대표작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주인공 알마쉬는 지독한 화상으로 오랜 고통을 겪다가 죽음을 맞았지만, 밍겔라의 죽음은 너무 급작스럽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 그러나 지난주 목부위의 종양제거 수술에 따른 후유증이 사망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BBC 드라마시리즈 ‘넘버원 레이디 형사 에이전시’를 완성한 상태였고, <루이스 드랙스의 9번째 삶>이란 영화를 준비중이었다. <어톤먼트>에서  노년의 브라이오니를 연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를 인터뷰하는 사회자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밍겔라 감독이다. 이 작품은 밍겔라가 연기한 최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셈이다.



 <리플리>등 밍겔라 영화 3편에 출연했던 쥬드 로는 애도 성명에서 “동료이자 친구였던 그의 죽음이 너무나 충격적인 슬프다”라고 밝혔으며, 고든 브라운 총리도 “영국최고의 예술가 중 한명이었던 밍겔라의 문화적 유산은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기네스 펠트로, 데이비드 퍼트넘, 시드니 폴락 등 영국과 미국의 많은 영화인들이 애도를 나타냈다. 


 밍겔라는 1954년 영국 남부 라이트섬에서 태어났다. 밍겔라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 이주민으로 아이스크림 공장을 운영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연극 및 TV 드라마 작가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90년 로맨틱 코미디 <트룰리,매들리, 디플리(Truly, Madly, Deeply)>란 영화데뷔했다. 

3년 뒤 매트 딜런 주연의 <미스터 원더풀>로 미국영화계에 진출한 그는 97년 마이클 온디체의 베스트셀러 소설 <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9개부문을 휩쓸었다. 이어 <리플리><콜드마운틴>을 발표했으며 2006년 주드 로와 줄리에트 비노슈 주연의 <브레이킹 & 엔터링>을 내놓았다. 2001년부터 지난 3월초까지 영국영화진흥위원회(BFI) 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2005년 영국 국립오페라단의 ‘나비부인’연출을 맡을 정도로 음악에도 매우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서 C 클라크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클라크는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함께 20세기 과학소설을 이끌어온 3대 거장이다. 

쥘 베른이 로켓과 해저탐험을 상상했듯이 , 클라크는 아폴로가 발사되기 20여년전인 1945년 통신위성시스템의 아이디어를 창안했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HAL)을 예견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클라크는 1917년 12월 16일 영국 소머세트의 마인헤드라는 작은 해변마을의 농부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암석과 해양생물 관찰을 즐겨했던 그는 35년부터 영국행성간협회라는 단체에 가입해 우주여행에 관한 자신의 관심을 키워나갔으며, 1945년 영국공군레이더담당 교육장교를 거쳐 런던 킹스칼리지를 졸업한 본격적인 과학전문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라마시리즈><스페이스 오딧세이 시리즈><유년기의 끝><도시와 별> <낙원의 샘 >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전세계 40여개 언어로 번역출간됐다. 클라크는 1973년 , 1979년 사이언스픽션의 최고 영예인 휴고상과 네뷸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세기의 수많은 과학자 ,탐험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우주를 꿈꿨고, 그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인류 최초로 지구궤도비행에 성공했던 구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과 미국 아폴로의 닐 암스트롱이다. 

그가 생애 대부분을 보낸 스리랑카 콜롬보 자택 서재에는 이들과 고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벽에 걸려있다고 한다. 클라크는 평생 자신은 ‘대중들을 위한 과학 대변인’으로 여겼었고, 자신의 책을 읽고 자란 많은 어린이들이 훗날 우주 과학계의 일꾼이 됐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영화화<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로 영화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있던 큐브릭은  1964년 뉴욕에서 클라크를 만났다. 

과학과 인간의 본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두 사람은 ‘진짜 멋진 SF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고, 클라크가 1951년 잡지에 발표했던 단편 ‘센티널’을 선택했다. ‘센티널’은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달에서 거대한 비석 같은 구조물이 발견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클라크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장편소설을 썼으며, 큐브릭은 4년뒤인 1968년 당시로는 대단히 선구적인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지난해 12월 16일 클라크는 90세 생일을 맞으면서 ‘죽기전에 꼭 이루고픈 세가지 소원’을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닷컴에 발표했었다. 


“내게 세 가지 소원이 허락된다면 그 첫째는 외계 생명체 존재의 증거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우주에서 우리가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항상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ET로부터의 연락이나 이들이 존재한다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두번째 소원은 환경보호를 위해 ‘기름’을 덜 쓰는 일이며, 두번째는 스리랑카가 정치적 안정을 찾는 일이다.”


클라크의 육신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스타 차일드’로 지구에 돌아올지로 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