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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지만 구태의연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에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첫 느낌이 바로 그랬다.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결론은 과연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자정이 넘긴 시간까지 이불 속에서 이어폰으로 몰래 라디오 방송을 듣곤 하던 시절의 감성을 새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요즘 청소년들이야 라디오를 듣어도 ‘콩’이니 ,‘단팥’이니, ‘미니’ 프로그램으로 다운로드해 듣고 보는(보는 라디오!) 세대지만,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화려하게 발달해도 라디오의 제 맛은 사람사는 이야기이며, 각박한 세상살이의 맛 역시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과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란 것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마치 추운 날씨에 향긋한 커피가 아니라 뜨끈한 어묵국물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느낌이랄까. 후줄근하지만 편안하고, 촌스럽지만 정겹고, 발랄하진 않지만 사랑스럽다.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역시 함께 늙어가는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다. 이제는 한물간 록스타 최건(박중훈)은 미사리 카페에서 돈다발을 휘두르며 자신을 모욕하는 손님을 패다가 경찰서 철창 신세가 된다. 하긴 그가 경찰서 문을 들락거린 적이 한두번은  아니다. 그럴때마다 20여년동안 그 곁에서 온갖 뒤치닥거리를 다해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여기저기 무마하러 다니느라 죽을 맛이다. 



돈도 명예도 잃어버린 최건과 박민수에게 방송국 국장은 강원도 영월의 지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진행해보라는 제안을 한다. 영월로 가는 길, 최건은 “매니저 잘못 만나서 여기까지 몰락했다”고 툴툴거리지만 그런 매니저가 없으면 담배하나 사서 피울 줄 모르는 인간이 바로 그다. 박민수가 잠시라도 곁을 비울라치면 최건은 그의 등짝에 대고 소리친다. “형, 어디가!” 그러면서도 허름한 여관방에서 박민수가 말썽만 피우는 자신에게  “같이 죽어버리자”고 하자, 이렇게 얄밉게 쏘아부치며 돌아 누워버린다. “ 죽을래면 혼자 죽어, 같이 죽으면 사람들이 우리 사귄 줄 알아.”  

<라디오 스타>는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또는 인간관계를 그리워하는 판타지 영화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물맑고 산좋은 강원도 영월의 지역라디오라지만, 방송을 타고 커피배달 아가씨의 가출 사연이나 집나간 아버지를 찾는 어린 소년의 애절한 호소가 청취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인터넷 ‘다시듣기’를 통해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설정은 현실화하기엔 너무 이상적이다. 그래선지 출세보다 정, 중심보다 변방에 눈길을 주는 영화의 마음씀씀이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칠수와 만수><투캅스><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박중훈과 안성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최고의 궁합을 과시한다. 박중훈은 철딱서니없는 중년의 록커 ,안성기는 생존을 위해 온갖 궂은일도 마다않는 바다 같은 넓은 가슴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딱 어울린다. 사실 <라디오 스타>는 인기의 정점에서 이제는 한발짝 물러난 두 배우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서 남자들간의 진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신의를  그려내는데 솜씨를 발휘해온 이준익감독의 장점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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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fox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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