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70

네덜란드&벨기에에 가다-1. 고흐&국립박물관&마우리츠하위스...

2023년 초봄, 오랫동안 계획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보름동안 두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고색창연한 문화유적들은 물론이고 교과서와 화집에서만 보던 수많은 거장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있었습니다. 고흐와 렘브란트, 루벤스와 안토니 반다이크, 얀 판 에이크, 브뤼헐 부자,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등.... 제가 격하게 사랑하는 페르메이르 작품들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 특별전 티겟이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고, 르네 마그리트 작품들은 브뤼셀 국립미술관의 해당 전시관이 업그레이드를 위해 폐쇄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해 아쉽기 짝이 없었지요. 하지만, 두 화가 말고도 만나야 할 화가들은 너무너무 많아서 발길이 바빴네요. 암스테르담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 대부분이 첫 일..

영화 <교섭> 계기로 되돌아본 '아프간 한국인 피랍사태'

임순례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한 영화 은 많이 아쉬웠지만,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샘물교회 신도들의 피랍사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국제부 기자였던만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죠. 피랍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온국민들이 탈레반의 인질이 됐었지요. 기자로서, 아프간으로부터 전해지는 새로운 소식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들이 기억나네요. 이 사건은 국가적으로 큰 과제와 교훈을 남겼습니다. 허술했던 외교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계기가 됐죠. 우리의 외교력은 그때와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을까요? 당시에 쓴 글, 제가 재직했던 신문의 기사 몇가지 올려봅니다. ----------------- 아프간을 잊지 말라 문화일보입력 2008-08-30 08:34 지난해 8월..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윤선도의 보길도

보길도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멀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화순-구례-고흥-벌교-보성-완도를 거쳐 마지막이 보길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길도는 심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작은 섬의 느낌이 더 강했던 듯합니다. 그 곳에 가면 아름다운 해변과 윤선도의 원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갈 수는 없는 곳,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곳으로 상상하게 되는 섬이 바로 보길도인 듯합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들었지만 보길도를 이제사 찾은 이유입니다. 보길도는 누가 뭐라해도 '윤선도의 섬'이지요. 학교에서 윤선도를 어떻게 배웠던가...떠올려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국어시간에 배운 '어부사시사'이지요. 요즘도 학교에서 '어부사시사'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비들이 한자로 시조를 지을 때, 이 분은 보통사람..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벌교 보성 고흥

오래 전부터 벌교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꼬막 때문은 아니고, 벌교를 찾는 타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소설 때문이었지요(오래전 완독을 하지 못하고 숙제처럼 미뤄뒀던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워낙 늦되는 사람이어서인지, 핑계거리를 찾고 싶은 건지, 이제야 이 소설을 읽기에 적당한 나이가 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제게 벌교는 매우 낯선 이름이었는데, 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벌교는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 이었습니다. 벌교 출신의 천연염색가 한광석 씨가 서울에서 염색전시회를 열었을 때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만들어낸 쪽빛과 함께 사투리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출판과 언론, 그리고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뿌리깊은 나무'를 펴낸 한창기 발행인의 조카인 ..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화엄사 운주사 화순

구례 화엄사와 화순 운주사를 다시 찾아가고픈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만 있다가, 2022년 4월 봄날에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이 두 곳은 제 기억 속에서 유난히 감동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 이 곳을 찾았었는지 정확한 연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엄사 각황전의 그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아름다움과 운주사의 말로는 표현할 수없는 특별한 기운을 느꼈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서 위를 올려다 봤을 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각황전의 자태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운주사 대웅전 뒤편의 산길을 올라다가 문득 뒤돌아 보니, 마치 비를 피하려는 듯 커다란 바위 밑에 오종종 서있던 석불들의 모습! 이 두 장면은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제 머리 속에 사진처..

내가 몰랐던 역사 12-바코드는 어떻게 '유통혁명'을 일으켰나

“삑~” 1974년 6월 26일 오전 8시를 조금 지난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에 있는 마시 Marsh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기계음이 울려퍼졌다. 마트 직원 셰론 부캐넌 Sharon Buchanan이 ‘리글리스 주시 프루트 껌 Wrigley’s Juicy Fruit Gum’’ 10개들이 한 팩에 붙어있는 검은 줄무늬 스티커를 계산대 스캐너에 통과시킨 순간이었다. 한해 전 미국 슈퍼마켓특별위원회가 표준 바코드 Barcode인 세계상품코드(UPC)를 식료품업계 표준으로 승인한지 약 1년만에 드디어 매장에서 실제로 사용이 이뤄진 것이었다. 버나드 실버와 조지프 우드랜드가 바코드 개발을 시작한지 26년, 특허권을 얻은지 22년만이었다. 마시 슈퍼마켓에 울려 퍼진 ‘삑~’ 소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바코..

내가 몰랐던 역사 11-태초에 가짜뉴스가 있었다...길고 긴 그 역사

1782년 4월 22일, 프랑스 파리 외교가에 ‘서플리먼트 투 더 보스턴 인디펜던트 크로니클 Supplement to The Boston Independent Chronicle’란 신문이 뿌려졌다. 1면에 실린 기사는 가공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의 조지 3세 George III 국왕이 미국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인디언 원주민들을 내세워 양민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독립군인들이 최근 커다란 꾸러미들을 발견해 열어보니 무려 700명이 넘는 미국인 남녀와 어린이들, 심지어 아기들의 머릿가죽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기사는 보스턴에서 실제 발행되는 인디펜던트 크로니클 3월 12일자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싣는 형식으로 돼있다. 기사에 따르면, 뉴잉글랜드 독립군 소속의 새뮤..

내가 몰랐던 역사10-그림들은 어디로 갔나...세기의 박물관 도난사건들

1990년 3월 18일 일요일 오전 1시24분, 미국 보스턴 시내에 자리잡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Isabella Stewart Gardner 박물관 출입문의 벨이 울렸다. 이 날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많은 보스턴의 최대축제인 성패트릭 데이 Saint Patrick’s Day. 보스턴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전날부터 벌어진 온갖 행사와 파티들을 끝내고, 축일 당일날 열리는 화려한 퍼레이드를 기대하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이었다. 박물관의 야근 당직 경비원 중 한명인 리처드 애버스 Richard Abath는 인터폰으로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벨을 누른 사람은 경찰 정복을 입은 2명의 남자였다. 이들은 애버스에게 “박물관에서 모종의 소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문을 열 것을 요구했고..

내가 몰랐던 역사9-피임은 어떻게 발전했나

1950년 어느날 밤, 미국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굿윈 핀커스 Gregory Goodwin Pincus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한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의 이름은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 백발이 성성한 71세 나이의 생어는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악명’높은 여성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평생동안 여성의 피임권리를 주장하면서 숱한 고난 속에서도 산아제한운동을 펼쳐온 투사였다.핀커스도 만만치는 않았다. 코넬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그는 1934년 토끼의 난세포를 체외수정하는데 성공해 ‘프랑켄슈타인’이란 비난을 불러일으킨 전력이 있었다. 생어는 산아제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핀커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 수 있을까요?” 알약으로 피임할 수있는 방법을..

내가 몰랐던 역사8- 지브롤터, 300년 넘게 계속되는 英-西갈등

2014년 4월 2일, 페데리코 트리요 Federico Trillo 영국 주재 스페인 대사가 긴장한 외무부 청사에 들어섰다. 2011년 부임한 이후 영국 외무부에 불려나온게 벌써 네 번째이지만, 그의 얼굴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국 정부는 이베리아 반도 남단인 영국령 지브롤터 Gibraltar 갈등과 관련해 스페인 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스페인 해양조사선이 영국 영해를 ‘도발적으로 침입’해 영국의 주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4월 4일, 이번에는 스페인 해군 소속 초계함 한 척이 지브롤터 영해에 진입했다가 영국 해군의 경고를 받고 물러갔다. 영국과 스페인은 이번 사태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영국 외무부는 "해군은 영국령 지브롤터 영해에서 모든 불법 침입..